"키가 더 컸어?"
굽이 조금만 높은 걸 신어도 사람들은 귀신같이 알아챘다. 사실 늘 신던 플랫슈즈를 신어도 똑같은 말을 들었다. 한 마디씩 건네는 인사말일 뿐이지만 그렇게 매번 크다 보면 나는 진작 2미터가 넘는 인간이 되었을 걸. 장난스러운 마음과 함께 진지하게 고민해 본다. 나는 진짜 계속 자라고 있는 걸까.
남편을 만나고 나서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은, 자세에 따라 실제 키보다 작아 보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남편은 나보다 무려 10cm나 큰 사람이었지만 첫 만남에 그게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키가 작아도 멋있었던 남자로 인해 1cm의 소망마저 내려놓게 되어서였을까, 남편의 키가 크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조금도 흔들어놓지 못했다. 이전 같았으면 키가 크다는 사실만으로도 나의 눈길을 붙잡기에 충분했을 텐데 말이다.
어른들이 주선했기에 남편과의 만남은 내겐 그저 숙제였고 피하고 싶은 자리였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그다지 키가 커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남편에게 물어보니 직장에서 오랜 시간 쭈구리로 살았기 때문이라 했다. 비슷한 분위기의 직장에서 십 년 간 근무 중인 나도 이제야 그게 무슨 뜻인지 체감하는 중이다. 비굴하거나 아부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의식적으로 목과 등과 허리를 꼿꼿하게 펴지 않으면 쭈굴쭈굴 쭈구리로 늙어갈 수 있다는 걸.
조직생활에서는 공연히 눈에 띄지 않는 게 미덕이라지만 내가 가진 기본값에 대해서는 당당해기로 했다. 나를 구겨가면서까지 어디에 숨을 필요도 없고, 막상 펼쳐보니 겨우 여기까지 닿는 역량이라 해도 그게 나인 걸 어떡하나.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으니 서로의 특장점을 살려서 협력하는 수밖에. 그러려면 가장 기본적인 단계에서 내가 가진 것들을 부풀리지도, 축소하지도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라는 개념도 그저 나로서 존재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사람들은 내게 '너는 키도 큰데 왜 굽 있는 신발을 신냐'라고 물었다. 여자라면 알 것이다. 하이힐을 신었을 때의 느낌을. 다리의 각선미는 물론이고 힙업도 되고, 걸음걸이와 함께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3cm는 주로 멋없는 면접용 구두였고 그나마 좀 괜찮다 싶은 건 5cm 미들힐, 예쁜 구두는 죄다 7cm 이상의 하이힐이었다.
누군가는 내게 키가 크니 하이힐을 안 신어도 된다는 의미로 '하이힐을 씹어먹는다'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어떤 의미로 나는 하이힐을 씹어먹지 못했다. 나를 부담스러워하는 시선들이 부담스러워 하이힐에 '올라서지' 못했다. 남들이 뭐라 하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했더라면. 그래서 따라오는 시선마저 즐기는 법을 알았더라면. 마흔을 앞둔 지금에서야 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무난함을 추구하던 이십 대 시절에 만난 중년의 집사님이 생각난다. 긴 생머리, 미니스커트와 하이힐이 그녀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녀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그러면서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그녀의 젊은 시절이 나와 같았을까 하고. 사실은 나도 아직 젊고, 마음만 먹으면 가끔씩이라도 하이힐을 신고 다닐 수도 있지만, 어쩐지 꺼려지는 건 실용성과 가성비를 따지는 주부가 되었기 때문일까.
이 따위가 다 무슨 소용일까. 지금이라도 올라설 수 있는 용기가 중요한 것을. 과거의 회한에 잠기기엔 걸어갈 길이 아직 많이 남았다. 대부분의 날들은 발 편한 신발을 신고 분주하게 뛰어다닐 테고, 사람들을 대면하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적당한 굽의 신발을 신고 나가겠지만, 그저 나만의 길을 걸어갈 때도 있을 것이다. 그땐 하이힐을 천천히 씹어먹어야겠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듯이. 또각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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