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인생
인생 노잼 시기에는 운동을 하라고 누가 그랬던 것 같은데. 운동에 재미를 붙이라는 게 아니라 체력을 키우라는 의미로. 그 시기를 지나고 진짜 하고 싶어지는 게, 혹은 해야만 하는 게 생겼을 때를 대비하라는 말이었다.
흉흉한 일들이 많은 요즘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일상이 너무도 소중하기에, 인생 노잼 시기라고 말하는 것조차 마음이 거북하다. 다만 먹고 살아가는 생활을 유지하는 일들이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처럼 버거운 시기가 있을 뿐이다.
일주일에 세 번, 하루에 30분. 건강검진을 하러 갔을 때 의사가 말했던 최소 기준이라도 채우자고 나섰다. 다섯 바퀴 뛰고 한 바퀴 걷고 다시 다섯 바퀴 뛰고. 다음날엔 쉬지 않고 열 바퀴를 뛰었다. 그리고 아파트 계단 꼭대기에 세 번을 올랐다.
고작 십오 분 뛰고 쉬는 동안 내 몸에서 나온 열기에 증발해 버릴 것 같았다. 내 안엔 어떤 열정도 없는데 내 몸이 내뿜는 열기는 대단했다. 내가 마치 타오르는 태양이 된 것 같았다. 운동장 십오 분, 계단 십오 분. 딱 운동만으로 삼십 분을 채웠다.
이거면 됐다. 욕심부리지 말자. 욕심도 낼 타이밍이 있다. 지금 내 체력에 무리했다간 다신 나오기 싫을 걸. 이젠 나 자신을 달래 가며 사는 법을 선택하고 있다. 타협과는 다르다. 더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게 아니라, 시작하고 유지하도록 돕는 방법이다.
해야만 하는 것이 어디 한 두가지랴. 회사도 가야 하고 밥도 해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하고 아이들도 키워야 하고... 때로는 끼니를 챙겨 먹는 것조차 귀찮을 때가 있다. 그러나 살아있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당연한 것에는 감사함이 쉽게 생략된다. 여기에 더해 운동도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 해야만 하는 것이 되었다. 사십 대를 앞두고 이제야 피할 수 없는 숙명을 받아들였지만, 이 모든 것들이 의무가 되어버리는 순간 인간은 얼마나 가엾은 존재인가. 나라는 인간은.
쓰레기도 제때 치우지 않으면 벌레가 꼬이는데 스스로를 방치하지 않고 생활하는 것, 잘 살아보겠다며 이리저리 움직이는 발걸음을 어찌 응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나를 응원하지 않으면 누가 할까. 이렇게 글로 쓰지 못하는 삶의 매 순간에.
유잼을 외치며 설렘 속에 시작한 소설 쓰기도 이제는 의무가 되어버렸지만, 하루에 한 줄이라도 쓰자는 최소한의 기준을 따르고 있다. 최소한의 소설을 쓰기 위해 펼친 노트북에는 어느새 두줄, 세줄이 채워진다.
잘 살아보겠다는 움직임조차도 어리석은 나는 타인과 비교하고야 말지만, 그로 인해 더 나아갈 수 없음을 이제는 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어느새 한 바퀴가 되었을 때, 조용히 한 손가락씩 접어가며 격려하는 나만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다.
내가 얼마큼 뛸 수 있는가 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무얼까. 오늘 손가락을 몇 개 굽혔든, 혹은 아직 손가락 하나 접지 못했다 하더라도, 스스로에게 손가락질하지 않고 손뼉 쳐줄 수 있는 마음이 있는가 하는 것.
열정이 꺼져버린 인생 노잼의 시기에 최소한의 인생을 살더라도 슬프지 않음은, 인생이 뭐 그리 대단한가 싶기 때문이다. 대단하지 않은 일들을 당연하게 해내면서도 당연하지 않음을 아는 것. 그리하여 나와 타인에게 손뼉 쳐줄 수 있다면 살아가는 일이 조금은 덜 벅차지 않겠는가.
* 사진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