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사랑
찬혁의 무대를 보는데 충격을 받았다. 그건 일종의 쾌감이기도 했고 대개는 놀라움에 가까웠다. 이게 된다고? 하는 감탄 같은 것. 똑같은 옷을 입지 않은 코러스 가수들은 같은 노래를 부르면서도 제각각 즐기는 모습이었다. 드럼과 기타도 가수를 받쳐주는 세션이 아닌 함께 어우러지는 무대였다. 도드라지지 않는 찬혁의 목소리는 그 모든 하모니 사이를 미끄러지듯 통과해 내게 다가왔다. 마치 말을 건네는 것처럼.
무엇에 분노했었나 친구여
처음부터 그럴 만한 게 없었지
유감스럽게도 나의 친구여
도둑 든 상자를 찾는 꼴이었다네
진실로 사랑했던 내 친구여
왜 이리 좋았던 날에 슬퍼했었나
Where's the lala love
Vivid lala love
빛나는 눈으로 너는 말했지 Vivid lala love
기필코 있다 있다 있다 했던 Vivid lala love
- 이찬혁, <비비드라라러브>
청룡영화상 무대에 등장했던 자칭 '난쟁이 배우'인 김유남 배우를 비롯한 댄서들의 움직임도 인상적이었다. 모두가 즐기는 것 같은 그 무대는 낯설면서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잠시 천국을 맛본 것 같은 기분이랄까. 내가 아직 가보지 못한 천국은 이런 모습일까. 무대에서 자유함을 만끽하는 찬혁을 보며 생각했다. 내가 기필코 있다 있다 했던 그 선명한 사랑이, 어떤 모양으로든 존재하는 그곳이 바로 천국이라고.
<장례희망>이라는 곡으로 가상 장례식을 치르기 전 찬혁이 불렀던 <파노라마>의 가사처럼, '짧은 인생 쥐뿔도 없는 게' 파노라마처럼 스쳐갈 때 나는 어떨까. 그저 더 사랑하지 못했다는 게 사무치지 않을까. 그 대상이 어떤 사람이든 나의 삶이든 말이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며 한 번이라도 뜨거워본 적 있었냐던 어느 시인의 물음처럼, 내 안의 것들을 꺼내보지도 못한 채로 식어갔다는 게 억울할 것만 같다.
찬혁은 <멸종위기사랑>에서 한 사람당 하나의 사랑이 있다고 노래한다. 코러스에서 외치는 '사랑의/ 종말론'이라는 가사는 사랑해/정말로'라고 들리기도 하는데, 코러스를 했던 요비라는 가수는 찬혁에게 분명한 의도가 있었을 거라고 말했다. 자신도 노래를 부를 때 '사랑해, 정말로'라고 불렀다는 고백과 함께.
의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상관없다. 그렇게 들리니 그렇게 부르고, 그렇게 부르니 그렇게 들리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사랑의 종말론 속에서 사랑을 이끌어냈다는 게 중요하다. 멸종위기 앞에서 내가 가지고 있던 하나의 사랑을 급히 꺼내 보이며 외치도록 만드는 것. 그 또한 사랑이라고 믿는다. 찬혁의 무대는 그런 힘이 있다.
또한 너무나 절박한 상황 속에서 부르던 <Time, Stop!>은 그와 대비되는 유쾌한 모습으로 인해 희망을 품게 된다. 누군가는 지금 내가 딱 하루를 더 살아서 이 노래를, 그의 무대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것이다. 제발, 제발이라는 그 외침이 이토록 사랑스럽게 들릴 수 있다니. 간구와 진심은 어떤 모양이든 아름답구나. 그의 진심이 빚어낸 노래가 앞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길 바란다. 그에게 고여있는 사랑은 반드시 우리에게 흘러올 테니.
* 사진 출처: KBS 한국방송 유튜브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