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 낯선 남자로부터 전혀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 떨어지자 나영의 심장도 함께 떨어졌다. 가라앉은 심장을 다시 부여잡고선 나영이 간신히 물었다.
"누구... 세요?"
마음 같아선 당신 뭐야, 누군데 그러시죠? 저 아세요?라는 공격적이면서 사실은 방어적인 말들을 쏟아내고 싶었으나 나영은 이번에도 무방비 상태였다.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신방과라면 한국대학교에서의 전공이었으니 한국대학교 사람은 부정적인 기억 속에서 나를 소환했을 게 뻔하다고 나영은 확신하며, 혼란스럽고 두려운 길고양이의 눈빛으로 영훈을 노려보았다. 영훈은 그런 눈빛을 차분하게 받아내면서 나영과의 연결고리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담기동 생각 나? 너 신입생 때 대동제에서 내가 섭외했었는데. 네가 동아리 가입하고 나서 나는 얼마 안 있다 군대로 가버렸지만. 너도 자주는 안 나왔어도 내가 군대 가기 전까지 명단 관리하고 있어서 탈퇴는 안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뒤론 나도 동아리 활동을 안 해서 잘 모르겠다. 그래도 우리 회식도 한번 했었는데 못 알아보다니 좀 서운하다."
마음에 담고 싶은 걸 기록하는 동아리. 사진이든 글이든 어떤 방식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나영은 신방과 입학생답게 주로 신문 스크랩을 했는데 다른 사람들의 감성 충만한 기록들을 보고 내심 놀랐던 기억이 났다. 그 후로는 왠지 발걸음을 자주 하지 않았던 것도.
"처음엔 넌 줄 몰랐거든? 그런데 말하다 보니까 생각나더라. 내가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는 편이라서."
영훈이 여기까지 말하자 나영은 조금씩 삼키고 있던 숨을 한 번에 내쉬며 물었다.
"그러니까 저에 대한 선배의 기억은 거기까지라는 거죠?"
"여기까지인 것도 대단한 거 아닌가..."
영훈이 뭘 더 기억해야 하는 건가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멋쩍어하는 그의 표정을 살피며 나영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에 대한 쓸데없는 변명들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우영춘. 그는 아직 모르는 것 같았다. 나영이 왜 이런 차가운 표정을 달게 되었는지를. 우영훈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땐 이름처럼 훈훈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영춘이었다니. 본래 이름을 듣는 순간 나영은 아, 하며 검은 뿔테안경을 쓰고 다녔던 영춘을 떠올렸다. '봄 춘'자를 쓰던 동아리 모집책.
"사춘기의 '춘'자도 봄을 뜻하는 거라고 했잖아요. 사춘기는 봄을 생각하는 시기라고. 그 말을 왜 하나 싶었는데."
"사춘기를 벗어난 걸 축하한다는 의미였지. 그토록 바라고 생각하던 봄이 왔으니 새내기 시절을 마음껏 즐기라고. 봄이었잖아, 그때."
영훈이 특유의 포근한, 봄날같이 따스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런 깊은 뜻이 있었다니. 영춘의 바람과는 달리 혹독한 겨울이 되어버렸던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며 나영은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 사진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