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얼굴에 침 뱉는 사람

by 조이


워낙 짧은 인연이었다. 담기동은 동아리 설립 취지에 비해 오래가지 못했다고 했다. 각자의 마음에 담고 싶은 기록들의 범위는 방대했고, 그 의미를 하나하나 헤아리기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구성원 간 유대가 있어야 서로의 기록도 지속적으로 들여다보게 된다는 걸 모두가 간과한 결과였다.


담기동이 추구하던 활동은 그 시기에 한창 유행하던 인터넷 기록장인 싸이월드, 블로그로 대체되었고 오히려 내밀한 기록들은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서 자연스럽게 공유되었다. 그나마 자주 출석하던 멤버들은 시대의 흐름을 타겠다며 플랫폼을 활용해서 교류했는데, 동아리 활동으로 인정받지 못해서 지원금이 끊기자 자연스럽게 해체되었다고 했다.


"싸이월드... 선배도 하셨어요?"

"난 그런 거 몰라. 귀찮아서 지금도 SNS 안 하는데, 그때 그런 방향으로 가게 됐다고 해서 안 나갔지. 전역하고 나서 학점 만들고 취업 준비하느라 바쁘기도 했고... 넌?"

"전 학교를 아예 옮겼어요. 한영대학으로. 편입했거든요."

"아 그랬구나! 대단하네. 지금은 무슨 일 하고 있어?"

"기자 일 조금 하다가 때려치웠어요. 세상은 진실을 원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진실도 묻으려면 얼마든지 묻을 수 있는 게 보도국이었다. 일부의 진실만을 기재한, 혹은 편향된 기사를 자기 입맛에 맞게 활용하는 이들이 있었다. 어쩌면 기사란 소수의 그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국민은 알 권리가 있다며 나영이 기어이 팩트에 근거한 정정 기사를 내도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만 믿었다. 어디서 시작된지도 모르게 갑자기 형성된 여론은 쉽게 방향을 틀지 않았다. 차라리 식어갈 뿐이었다.


차라리 무관심을 원할 땐 득달같이 달려들어 한 마디씩 보태던 이들도 정작 관심이 필요할 땐 한 자락조차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러나 휩쓸리는 무리들보다도 견딜 수 없었던 건 모든 걸 다 알면서도 외면했던 내부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흐름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었는데. 나서줘야 할 때 뒤로 빠진 건 배신이나 다름없다고 나영은 경험으로 믿고 있었다.


"아 맞다. 일이 이렇게 됐으니 말해도 되겠네." 영훈이 고해성사를 하듯 읊기 시작했다.

"사실 아까 들어오다 나간 사람, 내 생각엔 오늘 만나기로 한 사람 같은데 이름이랑 얼굴이 매칭이 안되어서 확실치가 않아. 한국대학교 후배라고만 들었는데 혹시 윤이나라고 알아?"


역시나 기자의 감이 아직 살아있는 건지, 그저 여자의 직감이었던 건지 나영은 속으로 헛웃음이 났다. 윤이나가 들어오다가 나간 것도 자신을 먼저 발견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퍼즐을 맞추듯 척척 맞아떨어지는 상황에서도 사실관계는 꼭 확인해야 했다.


"왜 만나기로 했는데요?"

"음... 소개팅이긴 한데 왠지 찜찜해서. 대충 어떤 사람인지 알면 거절하는 데 참고가 될까 싶어서."

"아직 만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거절해요?"

"갑자기 일이 생겨서 다섯 시로 약속을 미루자더라고. 나도 김이 새 버려서 없던 만남으로 하고 싶은데, 신사가 그럴 수는 없지 않나."

"단벌 신사인가 보죠? 소개팅에 슈트까지 입고 나오시다니."

"내가 슈트빨이 좀 좋거든." 영훈이 재치 있게 받아치곤 실없는 말을 덧붙였다. "혹시 그래서 부담스러웠나? 왔다가 나갈 만큼?"

"...."

나영은 말없이 음료 속 얼음을 깨물었다.

"하여간 윤이나라는 사람 알아?"

"글쎄요. 그리고 어떤 사람인지는 선배가 직접 겪어보셔야죠."


첫눈엔 모를 수도 있었다. 윤이나는 워낙 이미지관리가 철저한 사람이니까. 게다가 소개팅이라니. 웬만한 남자들은 윤이나를 거부할 리 없었다. 나영이 편입을 하고 졸업을 한 뒤에도 윤이나의 소식은 건너 건너 들려왔다. 알고 싶지 않았지만 가십거리처럼 물어다 주는 동창들이나, 아닌 척하면서도 그녀의 소식에 귀 기울이며 혀를 차는 자신도 우습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선배도 그렇게 인생을 낭비하게 될까, 안타깝지만 그렇다 해도 나영이 길을 막을 이유는 없었다. 뒷말과 소문과 오해로 얼룩진 관계는 이미 끝난 지 오래였으니까. 게다가 나영은 이번에도 이 남자가 어떻게 나오는지 알고 싶어졌다.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은 마음 이전에 검증 단계를 거쳐야 했다. 웃는 얼굴이라고 다 같은 건 아니었다. 그 이면에 있는 진짜 얼굴을 볼 수 있을까, 이 사람은.


나영은 그것이 궁금했다. 우영훈이 윤이나의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을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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