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목격자

by 조이


지루한 일상이 지속되던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2학년에서 3학년으로 진급하는 사이에도 나영은 진로를 뚜렷하게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른들은 학생들에게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이 있다는 말들로 희망을 주곤 했는데, 몇 등급을 맞고 어느 대학을 갈 수 있는 가능성은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 같았다.


명확한 꿈이나 목표가 없어도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수능 성적표에는 과목별로 1등급부터 9등급까지 표기된다고 했다. 본격적으로 조금 더 높은 숫자를 획득하는 일, 그것만이 존재감을 분명히 하는 것이라 믿었다. 그 숫자들은 내 안의 가능성과 잠재력이라는 지니를 깨울 수 있는 주문의 조합 같은 거라고. 최고등급을 의미하는 숫자들의 조합이 높을수록 확률도 높아지는.


여고생들은 특유의 팬심으로 각자 선호하는 선생님들에게 나름의 방식으로 애정을 공세했다. 아직 미혼인 남자 선생님이 확실히 인기는 더 있었지만, 엄격한 태도로 학생들을 지도하던 기혼 선생님을 따르는 학생들도 꽤 많았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선생님께 잘 보이고 싶은 학생의 본능이자 순수한 존경심이었다.


나영의 2학년 담임선생님은 평범한 유부남이었고 인기가 있지도 않았다. 수업시간에 한 번씩 던지는 농담도 별로 웃기진 않았다. 그저 실없는 아재들이 할 법한 개그들이었다.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집에서 막내 취급을 당하는 나영의 입장에서 적당히 무심한 담임의 스타일은 나쁘지 않았다. 학생들에게 꼬박꼬박 존대를 해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야아, 저기 담임 차다. 우리보다 늦게 오네."


등굣길에 교정으로 진입하던 담임선생님의 차를 본 적 있었다. 나영은 차에 관심이 없어서 비슷한 색깔과 모양의 차들을 구별해내지 못했지만 담임선생님의 차만큼은 인상 깊었다. 전방과 후방 헤드라이트 모양이 선생님의 쭉 찢어지며 올라간 눈매와 꼭 닮았다고 신기해했다. 하관 운명설 같은 상관 운명설인 건가, 하고 친구와 킥킥댔을 만큼.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방학, 주간반에 이어 야간반 학원수업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날따라 날이 좋았다.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산책하듯 걷고 있을 때였다. 자동차 한 대가 공원 초입에 세워져 있었다. 익숙한 헤드라이트 모양, 불빛. 그것은 담임선생님의 차였다. 그리고 그 옆자리에서 내린 사람은 윤이나였다. 방학중이라 교복을 입고 있진 않았지만 나영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나영과 비슷한 키에 긴 생머리와 흰 얼굴을 가진 윤이나. 학기 초, 수업에 들어오는 선생님들마다 출석시간에 둘이 닮았다고 한 소리씩 했다. 가나다 순으로 출석 확인을 하다 보면 윤이나 먼저, 그리고 나중에 진나영을 부르다가 어? 너 아까 대답하지 않았니,라는 소리를 하기도 했다.


확연히 다른 점은 성격이었다. 나영은 좋고 싫음을 분명하게 표현했고 그 기준이 나름 논리적이라서, 쉬는 시간만 되면 제삼자의 시각으로 볼 때 어떤지 묻는 친구들의 상담이 쇄도하기도 했다. 반면 윤이나는 말수가 별로 없고 조용했다. 한 번도 큰 소리로 웃는 걸 본 적이 없었지만 입꼬리는 늘 올라가 있었다. 모나리자같이 조용한 미소를 머금은 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그런 표정으로.


그런 성격 차이와는 반대로 이목구비는 윤이나가 좀 더 뚜렷한 쪽이었다. 똑같은 교복을 입어도 유니크를 추구했던 나영은 누구와 닮았다는 사실도 별로인 데다 흐리멍덩한 윤이나는 되기 싫어서 학기 초부터 단발머리로 다녔다. 선배들이 투쟁으로 이루어놓은 두발자유화 시대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였지만, 겹치는 캐릭터는 의식적으로 피하게 되는 것처럼 사춘기 아이들 사이의 묘한 경계심이 있었던 것 같다고 나영은 훗날 생각했다. 어른이 되어가던 그 시기에, 어쩌면 좀 더 친해질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 때쯤 윤이나는 홀연히 사라졌다.


* 사진 출처: Unsplash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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