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어버릴 꽃이 피는 봄, 겨우 그것을 시샘하는 추위 때문에 온몸을 찡그린 채 등교했다. 본격적으로 고삼 수험생활이 시작되는 새 학기였다. 하이, 나영은 마주친 친구들에게 가볍게 손인사를 한 뒤 일단 익숙한 얼굴들이 있는 자리에 가서 앉았다. 딱히 불편한 아이도, 없으면 죽고 못 살 친구도 없어서 어느 반이 되든 애초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윤이나 전학 갔대."
"고삼인데? 왜 하필 지금?"
"몰라. 부모님 직장 따라갔다나 봐."
"걔 1학년 2학기 때 전학 오지 않았냐? 겨우 일 년 넘게 있다가 또 간 거야? 걔네 부모님도 너무하다."
"그러게. 그 학교에선 무슨 사고 쳐서 전학 온 줄 알겠네."
"에이 설마. 그럴 성격처럼 보이지도 않고."
그런데 윤이나가 사라진 건 좀 신경이 쓰였다. 겨우내 길어진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은 채 등교한 나영은 윤이나와 고삼 때도 같은 반이려나 잠시 생각했다. 그렇다면 고삼만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출석 부르다가 한동안 또 헷갈리겠군, 귀찮아지겠어. 윤이나도 여전히 머리가 길면 이번엔 앞머리라도 잘라볼까 이런 고민을 하면서.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친구들이 핑퐁처럼 하는 소리에 이리저리 귀를 기울이다 보니 윤이나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애초에 존재감이 큰 아이는 아니었다. 전학생인 것 치고도, 키가 크고 나영과 닮았다는 점을 감안하고서도. 오히려 나영보다도 이목구비가 뚜렷했는데도. 한참 전에 증발된 수증기 같은 존재감은 이미지보다도 가벼웠다.
윤이나는 말이 없었다. 누군가 말을 걸어도 그랬다. 원체 목소리가 작은 데다 입을 크게 벌리는 법이 없어서 치아 모양에 콤플렉스가 있는 걸까 생각할 정도였다. 윤이나는 사라졌다기보단 잊힌 것에 가까웠다. 대부분 사라졌기에 잊히는 거겠지만, 윤이나는 사라진 게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아무도 그 아이의 부재를 안타까워하지 않았다. 나영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큰 일을 앞둔 고삼들은 같은 반 아이들에게도, 다른 반 아이들에게도, 이미 전학 간 아이에게는 더더욱 크게 마음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아 맞다. 나 겨울방학 때 윤이나 봤는데." 나영이 패딩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입안에서 사탕을 굴리다 말했다.
"엥? 어디서?"
"공원에서."
담임선생님의 차에서 내리는 걸 봤다는 뒷말은 자체적으로 생략했다. 왠지 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영은 이런 촉이 좋아서 친구들 사이에서도 좀체 말실수를 하는 일이 없었다. 누구를 배려해서라기보단 의도치 않게 일이 꼬이는 게 싫었다. 아무리 사실이라고 해도 인과관계가 분명하지 않은 말이나 사건을 전했다간 부풀려질 게 뻔했다. 여고생들의 상상력이란 그런 것이었다. 할 일 없는 엄마와 그녀의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삶이 지루해서 남일에게 관심이 지나친 그들에겐 무슨 미끼를 주지 않는 게 가장 현명했다.
당시 나영은 나중에 윤이나와 친해지게 되면 그 일에 대해 슬그머니 물어봐야겠다 생각하면서도 심상하게 여겼으나,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을 만큼 본능적으로 감춰두었다. 그리고 다시는 꺼낼 필요가 없던 그 장면은 몇 년이 지난 뒤에야 생생하게 소환되었다.
* 사진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