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세계

by 조이


아주 그대로인 나영에 비해 윤이나는 많이 달라져있었다. 그런 모습에 나영은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대학 신입생들이 으레 그렇듯 성인이 되면서 억눌렸던 자아가 드러나는 변화로 받아들였다. 윤이나에 대해서도 잘 몰랐으니까, 원래 이런 아이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티가 끝났을 때 윤이나는 나영에게 같이 밥 먹으러 가자, 팔짱을 끼며 말했다. 어딘지 작위적인 느낌이 들었지만 그 아이에게서 풍겨오는 복숭아향이 좋았다. 고등학생 때 윤이나의 교우관계를 생각해 보면 불쑥 친해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한편으론 고맙기도 했다. 나영은 기꺼이 그녀와 붙어 걸으며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고삼 때 전학 갔다고 해서 놀랐어. 어디로 갔던 거야? 그곳에서 적응은 잘했어?" 나영이 학식에서 받아온 식판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아, 나 검정고시 봤어. 적응하기 어려울 것 같기도 했고... 그 당시에 건강도 안 좋았거든."

"어디가? 지금은 괜찮아?"

"응. 보다시피."

윤이나의 익숙한 엷은 미소에 나영은 안심하고 식사를 시작했다.


"맞다, 고삼 올라가는 겨울방학 때 너 봤었는데. 전학 가는 거 알았으면 그때 아는 척이라도 할걸."


"어디서?" 윤이나가 밥을 한 숟갈 뜨며 물었다.

"바람공원 후문 쪽에서. 담임선생님 차에서 내리던데? 그게 좀 의외라고 생각했었지."


나영의 말을 듣고선 윤이나는 두 번째로 국을 뜨다 말았다. 입술을 안쪽으로 말았다가 꿀꺽, 입 안의 밥을 삼킨 후에야 되물었다.


"내가? 네가 잘못 본 건 아니고?"


"아니고." 나영이 장난기 어린 눈을 똑바로 맞추며 말했다. "나 눈썰미 좋아. 사실 평소에도 널 좀 유심히 봤었거든. 선생님들마다 너랑 나랑 닮았다고 해서."


확신에 찬 나영의 대답에 이나는 잠시 생각하는 척하며 말을 이었다.


"음... 생각해 보니 집에 가는 길에 선생님이 날 알아보고 태워주셨던 적 있었는데. 그때 혹시 밤이었니?"


"응, 맞아. 나 학원 야간반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이었어. 우리 동네는 아니었지만."


"그래, 그럼 그때였나 보네. 밤에 다니면 위험하다고 잠깐 태워다 주셨어."


"그랬구나. 담임이 좀 자상한 면이 있었지."


"... 그런데 혹시 이 얘기를 다른 사람들한테도 했었니?"


"아니. 뭐 별일이라고."


"잘했네, 고마워. 괜히 오해 사는 거 싫어서. 선생님께도 민폐였을 것 같고."


이야기를 듣고 보니 오해 살 일이 뭐가 있나 싶었지만, 나영 역시도 미심쩍은 마음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다. 어쨌든 떠보는 것 같지 않게 자연스럽게 물었다고, 또 이렇게라도 역시 물어보길 잘했다고 나영은 속으로 은근히 뿌듯해했다. 세상에는 떠보지도 않고 삼켜버리는 인간들 천지였으니까. 소화도 제대로 못하고 뱉어버릴 거면서. 제대로 맛보지도 않고 먹어본 것처럼 넘겨짚는 허풍을 떨기보단, 이렇게라도 상대에게 말할 기회를 주는 게 훨씬 낫다고.


이날 이후로 나영은 이나에게 과거의 다른 것을 묻진 않았다. 이나도 나영과 지내는 동안 고등학생 시절을 단 한 번도 소환하지 않았다. 동창이라고 하기엔 둘 사이에 추억할 만한 게 없었고, 이제 완전히 다른 세계로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나영과 이나는 새로운 세계에서 만난 또 다른 세계였다. 다시 만났으나 처음부터 알아가야 하는.


그들은 낯선 세계에서 전혀 낯설지는 않은 서로를 의지하며 천천히 대학생활에 적응해나가고 있었다.


* 사진 출처: Unsplash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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