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싸움에 새우등일까

by 조이


정말 그럴 수도 있을까요, 이나의 질문엔 맥락이 없었다. 뭐가 어땠을 거란 말인가. 누가 그렇단 말인가. 너무나 많은 것이 생략된 질문이었다. 영훈은 그걸 왜 나한테 묻느냐는 표정으로 눈만 끔벅거렸다. 혼란을 감지하고 수습하려는 듯 이나가 말을 이었다.


"아... 사실은요, 제가 아까 카페에서 아는 사람을 봤거든요. 아주 오랜만이었는데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어요."


뜻밖에 등장한 제삼자의 존재가 불편한 듯 영훈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사실을 털어놓고 반응을 살피던 이나가 황급히 덧붙였다.


"참고로 남자는 아니고요, 여자예요. 옛날 친구..."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듯 이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영훈이 되물었다. "그 사람에게 이나 씨가 뭘 잘못한 게 있었나요?"


"... 오해가 있었죠."


"해명이 필요한 쪽은요?"


"......"


"이나 씨 쪽이군요. 해명이 필요하다면, 제가 전해드릴까요?"


"네?" 취조하는 듯한 물음에 대답을 가로채는 것도 모자라 앞서나간 영훈의 발언에 이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바로 그때, 영훈의 입에서 이나가 예상치 못했던 이름이 튀어나왔다.


"친구분의 이름이 혹시 진나영인가요?"


"... 나영이를 어떻게 아세요?"


곧추세운 몸을 뒤로 빼며 이나가 물었다. 이나의 얼굴에 잠시 스친 기색은 경계심보단 나영과의 접점을 발견한 놀라움에 가까웠다. 어쩌면 기대감일지도 몰랐다. 윤이나라는 이름을 거론했을 때 모른 척했던 나영의 얼굴과는 사뭇 대조적이라고 영훈은 생각했다.


영훈은 그 차갑던 얼굴을 떠올리고선 아차 싶었지만 이제 와서 모르는 척할 순 없었다. 나영에 대한 호기심만큼이나 그 간극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들 사이에 심판자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다. 괜한 오지랖을 부렸다간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이 될까 싶은 걱정도 앞섰다. 그러나 나영이 상처를 받았다면 사과를 받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을 수 있다면.


각자의 궁금증이 생겼다. 그것은 서로에 대한 것이라기보단 서로를 둘러싼 존재에 대한 것이었다. 잊고 있었던, 잃어버렸던 존재에 대한 열망이기도 했다. 의문을 품고 있기는 영훈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나의 의문을 풀어주기 위해 먼저 운을 뗐다.


"한국대학교 동아리 선배였어요, 제가. 이나 씨도 한국대학교 졸업하셨다고 들었는데, 오다가다 마주쳤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아, 그렇군요. 그럴 수도 있었겠네요. 그런데 나영이에게 제 이야기를 들으셨어요?"


이나는 뒤늦게 둘의 관계를 의심했다. 어느 정도로 친밀한 사이일까. 혹시 남녀관계로 발전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하니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런 삼각구도는 결코 이나가 원하는 그림이 아니었다. 예전에도 지금도.


"그러고 보니 아까 카페에 둘 다..."


"아, 나영이도 있었죠. 제가 부른 건 아닙니다."


영훈이 손사래를 쳤다. 나영과는 화장실을 가려다 우연히 마주쳤다고 둘러댔다. 사실은 다분히 의도적인 접근이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소개팅 상대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 필요한 대처였다고 영훈은 속으로 합리화했다. 여기서 더 예의를 차리려면 타이밍을 봐서 나영에 대한 호감을 밝혀야겠다고도 생각했다. 이미 오해로 멀어진 친구 사이에 이런 식으로 껴들고 싶진 않았다. 그렇다고 해결사 노릇을 한답시고 오지랖을 부려서도 안되었다. 그러나 영훈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말았다.


"아까 이나씨 기다리는 동안 나영이랑 마주쳐서 대화를 좀 했거든요. 나영이에게 이나 씨 만나러 간다고 했는데... 별 말은 안 하더라고요."


"저를 만난다고 말했다고요? 소개팅으로요?"


"네, 뭐... 같은 학과 출신이길래 물어봤죠. 만난 김에 마침."


영훈이 '마침'이라는 말을 강조하며 대화의 마침표를 찍었다. 가볍게 한 끼 먹고 헤어지려던 만남이 예상외의 방향으로 치닫고 있었다. 여기서 마칠 수는 없겠지, 뒤늦게 불길한 기운과 함께 화제를 돌리고 싶은 마음이 밀려왔지만 이나는 이 대화를 마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무엇인가 반짝, 하는 것이 이나의 눈에서 떨어졌다.


* 사진 출처: Unsplash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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