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고백

by 조이


영훈은 가벼운 엉덩이를 들고 황급히 티슈를 꺼내 이나에게 건넸다. 난데없는 여자의 눈물에 커다란 남자는 어쩔 줄을 몰랐다.


"아니 갑자기 왜... 무슨 일 있으세요?"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어야 할 것 같았지만 현재형으로 물을 수밖에 없었다. 이 관계에서 나영은 인연의 끈을 놓고 과거로 덮어둔 것 같았다면 이나는 그래 보이지가 않았다. 이나는 이 관계에 일종의 책임감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이 비록 죄책감일지라도.


"아니에요,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요. 저라는 사람이 나영이에게 어떤 존재로 기억될지 늘 자신이 없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언급되었다니 조금 속상하네요."


"이런 상황이라면..."


"나영이랑 어떤 사이예요?" 이나가 눈물을 마저 훔치며 물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동아리 활동 같이 했던..."


"나영이에 대한 마음이 어떻냐는 말이에요. 아니면 영훈 씨에 대한 나영이 마음이나... 사실 저는 그게 가장 중요한데, 본인 마음은 본인밖에 모르겠죠. 어쨌든 두 사람이 이성적인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나요?"


이나가 영훈의 말을 끊고 물었다. 이번엔 영훈이 취조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영훈은 이런 압박면접 같은 분위기가 싫지 않았다. 오히려 좋아, 잘됐어. 판을 깔아주다니 고맙군. 영훈이 속으로 생각하며 이나에게 은밀하게 고백했다.


"사실 이건 비밀입니다만..." 영훈이 조심스레 운을 띄웠다.


"제가 나영이에게 호감이 있었어요. 나영이 신입생 시절 한눈에 반했다고 봐야겠죠. 동아리 홍보부스에서 영입에 성공한 뒤 속으로 쾌재를 불렀거든요. 잘해보려고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 우환이 생겼어요. 정신 차릴 틈도 없이 수습하고 보니 제가 군대에 가 있더라고요."


이나는 영훈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었다. 나영의 마음이야 모르겠지만 영훈의 마음은 확실하게 알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쩐지 나영도 영훈을 마음에 들어 할 것만 같았다. 나영은 의뭉스러운 사람을 싫어했는데, 영훈은 그런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그랬다면 자신과 나영 사이를 오가며 저울질할 수도 있었으리라. 그럴 수도 있었을 거라 생각하니 끔찍해서, 솔직하게 말해주는 영훈에게 고마워지기까지 했다.


"전역한 뒤에는 정신없이 살았어요. 오로지 취업해야 한다는 목적으로 연애 같은 건 꿈도 못 꿨죠. 다행히 일찍 취업에 성공하고 이제는 조금 안정되어서 소개팅 제안도 받아들였고요."


영훈이 개인사를 말하다 말고 고개를 돌려 이나의 표정을 살폈다. 처음 만난 소개팅녀에게 하는 고백이 다른 여자에 대한 마음이라니. 조금은 멋쩍은 기분이 들었지만 진중하게 듣고 있는 이나의 모습에 안심이 되었다.


"이나 씨에겐 죄송한 말씀이지만... 아까 카페에서 나영이를 만나고 나서 다시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났어요. 소개팅 상대에게 할 말이 아닌 걸 알지만 물어보시니 솔직하게 대답하는 거예요."


"그랬군요. 저한테 죄송할 건 없어요. 오히려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고마워요." 이나는 두 사람 사이의 인연이 언젠간 연인으로 발전할 수도 있으리란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 이 자리에 나온 건 왜죠?"


"아까 들어왔다가 나가시는 걸 봤거든요. 저는 나영이 때문인 줄 모르고 오해했어요. 제가 그 앞에 앉아있었거든요. 그러고선 다시 약속을 잡으시길래 앞뒤가 안 맞다고 생각했죠. 뭔가 핑계를 대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 궁금해서 나와봤어요."


의외의 대답에 이나는 눈을 크게 뜨며 웃었다. 동시에 이 사람은 나영이의 마음에 들 확률이 99.9%라고 확신했다.


"하하, 나영이와 비슷한 구석이 있으시네요. 궁금한 건 직접 확인해야 한다는 주의였거든요."


한때는 나영과 연애상담까지 하는 사이였는데, 이 남자를 두고 우리는 또 어떤 말들을 나눌 수 있었을까. 예전 사이 같으면 당장이라도 연락해서 한바탕 썰을 풀만한 사건이었다. 이나는 나영과의 호시절을 생각하며 씁쓸한 미소를 삼켰다.


* 사진 출처: Unsplash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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