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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빛 Aug 22. 2019

3. 내가 산후조리원을 포기한 이유

산후조리원을 아이의 입장에서 본다면....

 산후조리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90년대라고 한다. 1998년에는 산후조리원 광고도 지면에 실렸다. 약 21년이 지난 후, 30년도 안 된 사이에 우리는 산후조리원이 출산 후 가야 하는 필수코스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계약을 하고 있다. 심지어 너무 고가의 산후조리원을 가는 연예인들 뉴스를 보며 괴리감이 든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외국에서도 한국의 산후조리를 연구하고 따라 한다니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출산을 앞두고 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에게 물었던 질문 중 하나가 "산후조리원은 어디로 예약했어?"였다. 나는 산후조리원 대신 산후조리사가 집으로 오는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너 2주간의 천국을 느끼지 못하면 안 돼. 어쩌려고 그래." 등등의 말이었다.


 다른 일도 그렇지만 아이를 가지면 선택의 연속이다. 출산을 앞두고 산후조리원을 가지 않겠다고 했을 때 너무 강한 만류를 받았다. 그리고 심지어 집으로 산후조리사님이 온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나름의 후기를 남겨보려한다.


 내가 산후조리사를 선택한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였다. 나는 2주 간의 천국 후에 지옥으로 오는 것이 싫었다. 그 간극이 크면 내가 더 힘들  같았다. 게다가 나는 산후 조리원을 2주 이용하면 써야 하는 200-300의 비용을 한 번에 쓰기가 싫어서도 있었다. 이 비용을 조금 더 현명하게 쓰고 싶었다. 나는 일을 해서인지 평소에도 내 돈을 쓸 때는 고민이 많다. 내가 한 달 힘들게 일해야 버는 돈을 2주에 쓰기 싫었다. 아마 그게 제일 큰 이유였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산후조리원의 비용이 너무 비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산후조리사가 집으로 오는데 약 3주간을 100만원 전후의 비용으로 계약을 했다. 그리고 나머지 돈으로 어플에서 청소해주시는 분들을 부를 생각이었고 밥을 할 여력이 안되면 반찬가게에서 반찬을 사서 먹으려고 했다. 산후조리를 할 때까지 그 어려움의 간극을 줄여나가고 싶었다. 산후조리는 2주가 아니라 실제로는 최소 6개월이 필요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기에 내 생각은 확고했다. 그리고 나는 6개월동안 차츰 내 일을 늘려가면서 산후조리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난 지금도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것은 처음처럼 돈 때문이 아니라 아이와 베이비 사인을 잘 주고받은 덕분에 내가 지옥을 맛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출산 후 겪은 일 때문이었다.


 나는 자연분만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 죄책감에 아이를 볼 수 있는 시간만 되면 미친 듯 창 안의 아이를 보러 갔다. 하루 정도 가서 보니 면회용 블라인드를 걷을 때 소리에 아이가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또 간호사들이 수다를 떨고 폰 만진 손으로 아이를 만지는 풍경을 보았다. (이런 병원이 있냐 싶겠지만 내가 출산한 병원은 그랬고 실제로 간호사의 질병으로 아이들이 아파 집단소송 중이기도 하다.) 수술 후 죽을 것 같았지만 모자동실을 신청했다. 젖 빠는 힘이 약해 분유를 못 먹는다는 아이는 분유와 모유를 주는 대로 먹었고 잠도 못 잔다더니 10시간이 넘게 통잠을 잤다. 그리고 아이가 배고플 때 보내는 사인을 배우고 기저귀가 불편할 때 보내는 사인을

배울 수 있었다.


 얼마 후 선배와 통화에서 선배의 둘째 이야기를 들었다. 병원에서 모자동실을 한 이유를 듣다가 자기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청력 검사는 꼭 받아보라고 했다. 선배는 둘째가 돌이 넘도록 아이가 너무 엄마에게 붙고 찡찡대서 화가 나고 힘든 하루를 살던 중 아이의 건강 검진을 받게 됐는데 둘째가 선천적으로 귀가 잘 안 들리는 구조였다고 했다. 그래서 잘 안 들리니까 무섭고 못 알아들어서 엄마를 찾은 것인데 내가 너무 화만 낸 것 같아 미안하다고...


 지금 와 보면 우리 아이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엄마와 연결되어 심장소리를 듣다가 그 소리는 사라지고 낯선 소리만 들리고 친구들의 울음소리만  들리지 않았을까? 신생아들은 눈도 잘 안 보이고 귀도 잘 안 들린다. 그래서 살기 위해 엄마를 찾는다. 그렇지만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백색 소음에 울음을 그치는 것도 익숙한 소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점차 흑백에서 컬러로 보이고 또 소리도 들리기 시작하면서 백색소음이 소용없어지고 양육자의 소리, 냄새, 모습에 익숙해진다. 집에 오신 산후조리사님은 나에게 목욕시키는 법, 모유수유 등을 가르쳐주시고 미역국도 끓여주셨다. 그 덕분에 3주간 아이와 나는 서로를 배울 수가 있었다.


 만약 퇴원 후 산후조리원을 갔으면 어땠을까. 어쩌면 나는 더 좋은 환경에서 편하게 지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이는 산후조리사 분과 익숙해질 때 그곳을 떠나 전혀 새로운 환경으로 이동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는 살기 위해 부모에게 매달린다. 그때 아이는 정말 살기 위해서 울고 부모를 힘들게 한다. 그래서 양육자는 이 매달리는 아이 때문에 죽을 것처럼 힘들다. 잠도 못 자고 해줘야 하는 일도 많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아이도 죽기 싫어서 발악하는 것이다. 울지 않으면 자기가 보살핌을 받지 못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본능으로 아니까.


 모두가 가는 산후조리원, 하지만 모두가 가는 것은 아니다. 선택이다. 누군가는 산후조리원에서 누군가는 집에서도 조리를 할 수 있다. 그 선택은 엄마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산후조리원을 왜 안 가냐고 물었던 사람들에게 나는 한 번쯤은 묻고 싶다. "산후조리원 꼭 가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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