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은빛 Sep 10. 2019

사주, 점술보다 중요한 것

점술가는 당신의 앞날을 모른다.

 글감 : 당신은 점술가이다. 어떤 인물의 미래를 예해보아라.


 늦은 밤 한 여자가 커튼을 젖히고 나의 방에 들어왔다. 여자는 나를 쳐다보고 앉아 감정이 없는 표정으로 사주, 관상, 손금 등 무엇이든 당신이 가장 자신 있는 것을 봐달라고 했다. 나에게 찾아가서 이렇게 눈 똑바로 뜨고 쳐다보는 사람을 보는 것이 도대체 얼마만인가. 사람들이 나를 찾아올 때는 보통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으로 나를 찾아온다. 초조해서 나에게 매달리며 자신의 미래를 묻는다. 그런데 이 여자는 그런 두려움이 없다. 아마 사주를 여러 번 보고 온 모양이다. 자신의 사주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 내가 사주를 끄적이며 적을 때 입모양으로 미리 단어를 말한다.

 사주를 보아하니 이 여자의 팔자는 기구하다. 운이 일찍 트이지 않아 지금까지 능력보다 결과가 안 나왔을 것이고 남자가 있었으면 그 남자는 이 여자의 운을 받아 성공을 했을 거고 그 남자가 떠나야 비로소 성공을 하는 그런 여자로서는 박복한 팔자. 세상에 역마살까지 있다.  

 하지만 이 여자의 사주와 달리 얼굴빛이 밝다. 아마 엄청난 고난이 있었을 텐데 그 고난 따위는 다 이겨낸 얼굴이다. 다시 얼굴을 찬찬히 훑어본다. 사주와 달리 눈도 아주 총명하다. 그리고 내가 할 말을 하기 전까지 앙다문 입술과 오똑한 코가 나를 향했을 때 나 역시 그 여자의 아우라에 물들다.


 그 여자가 나에게 과연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 전 사주쟁이들이 읊었던 미래가 아니라는 확답을 듣고 싶어서 온 것일까? 난 눈을 감고 여자의 미래를 찾아본다.  이 여자 멀지 않은 미래에 나를 다시 찾아온다. 그리고 당신이 말해준 말이 나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아니 내가 사주를 그대로 이야기해 주지 않은 모양이다. 내가 보통 다른 사람들에게 사주를 기계적으로 풀어주지만 이 여자는 여자가 가진 총명한 때문에 그 사주를 제대로 이야기해 주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내가 한 말을 천천히 따라가 본다.


 "당신은 사주를 볼 것이 아니라 당신의 머릿속에 미래를 그려 보아야 할 것 같네요. 당신의 사주에는  당신이 그리는 것을 이뤄낼 수 있는 능력과 운, 그리고 의지가 있군요. 당신은 분명 무엇이든 이뤄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당신의 머릿속엔 당신의 그림이 없습니다. 먼저 당신의 그림을 그리십시오. "


 그리고 눈을 떴다. 그리고 나는 꿈에서 본 대로 그 여자에게 예언을 해 주었다. 그 여자는 마치 듣고 싶었던 말을 들었다는 미소를 머금고 점술에 대한 값을 지불하고 일어났다. 아마 조만 저 여자가 감사 인사를 하러 오는 날이 올 것이다. 사람들은 사주가, 관상이, 손금이 자신의 인생을 좌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힘든 일이 생기면 나와 같은 사람들을 찾아다닌다. 당장 찾아야 할 것이 내가 아니라 본인의 의지임에도 불안감에 그것을 잊는다. 어리석게도 자신의 인생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그리고 문득 여자가 그린 삶은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진다. 그 궁금증을 뒤로 하고 나를 찾아올 여자의 이야기를 기다려본다.


 이 글은 공대생의 심야 서재 108일 글쓰기에 참여하며 쓴 글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고전을 읽기 시작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