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한 여자가 커튼을 젖히고 나의 방에 들어왔다. 여자는 나를 쳐다보고 앉아 감정이 없는 표정으로 사주, 관상, 손금 등 무엇이든 당신이 가장 자신 있는 것을 봐달라고 했다. 나에게 찾아가서 이렇게 눈 똑바로 뜨고 쳐다보는 사람을 보는 것이 도대체 얼마만인가. 사람들이 나를 찾아올 때는 보통 형언할 수 없는 두려움으로 나를 찾아온다. 초조해서 나에게 매달리며 자신의 미래를 묻는다. 그런데 이 여자는 그런 두려움이 없다. 아마 사주를 여러 번 보고 온 모양이다. 자신의 사주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 내가 사주를 끄적이며 적을 때 입모양으로 미리 단어를 말한다.
사주를 보아하니 이 여자의 팔자는 기구하다. 운이 일찍 트이지 않아 지금까지 능력보다 결과가 안 나왔을 것이고 남자가 있었으면 그 남자는 이 여자의 운을 받아 성공을 했을 거고 그 남자가 떠나야 비로소 성공을 하는 그런 여자로서는 박복한 팔자. 세상에 역마살까지 있다.
하지만 이 여자의 사주와 달리 얼굴빛이 밝다. 아마 엄청난 고난이 있었을 텐데 그 고난 따위는 다 이겨낸 얼굴이다. 다시 얼굴을 찬찬히 훑어본다. 사주와 달리 눈도 아주 총명하다. 그리고 내가 할 말을 하기 전까지 앙다문 입술과 오똑한 코가 나를 향했을 때 나 역시 그 여자의 아우라에 물들었다.
그 여자가 나에게 과연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 전 사주쟁이들이 읊었던 미래가 아니라는 확답을 듣고 싶어서 온 것일까? 난 눈을 감고 여자의 미래를 찾아본다. 이 여자는 멀지 않은 미래에 나를 다시 찾아온다. 그리고 당신이 말해준 말이 나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아니 내가 사주를 그대로 이야기해 주지 않은 모양이다. 내가 보통 다른 사람들에게 사주를 기계적으로 풀어주지만 이 여자는 여자가 가진 총명한 때문에 그 사주를 제대로 이야기해 주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내가 한 말을 천천히 따라가 본다.
"당신은 사주를 볼 것이 아니라 당신의 머릿속에 미래를 그려 보아야 할 것 같네요. 당신의 사주에는 당신이 그리는 것을 이뤄낼 수 있는 능력과 운, 그리고 의지가 있군요. 당신은 분명 무엇이든 이뤄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당신의 머릿속엔 당신의 그림이 없습니다. 먼저 당신의 그림을 그리십시오. "
그리고 눈을 떴다. 그리고 나는 꿈에서 본 대로 그 여자에게 예언을 해 주었다. 그 여자는 마치 듣고 싶었던 말을 들었다는 미소를 머금고 점술에 대한 값을 지불하고 일어났다. 아마 조만 저 여자가 감사 인사를 하러 오는 날이 올 것이다. 사람들은 사주가, 관상이, 손금이 자신의 인생을 좌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힘든 일이 생기면 나와 같은 사람들을 찾아다닌다. 당장 찾아야 할 것이 내가 아니라 본인의 의지임에도 불안감에 그것을 잊는다. 어리석게도 자신의 인생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그리고 문득 여자가 그린 삶은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진다. 그 궁금증을 뒤로 하고 곧 나를 찾아올 여자의 이야기를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