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절물휴양림에 갔잖아. 아이와 함께 걷고 아이를 기다리고 하는 모습에서 여유를 느낄 수 있었어. 일을 하면서 항상 마감에 쫓기며 다급한 네가 아니라 여유라는 것을 알고 사는 사람이었음을 보면서 문득 마음이 너는 이 여유를 얼마나 그리워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 내가 너를 얼마나 몰아붙였을까. 그 생각을 하니 정말 미안하더라고. 상황이 아니라 마음이 네가 원하는 것을 조금 차분히 돌아볼걸 그랬어. 여유가 생기니까 평소 못 보던 것들을 보게 되더라고.
내가 오늘 가장 놀란 것은 너의 도전정신이었어. 도전을 거의 하지 않아서 너는 이런 사람이 아닌 줄 알았는데 힘들어도 최소한의 목표를 이루려는 네가 참 자랑스럽게 느껴지더라. 그리고 멋있었어. 항상 나는 되는 일이 없어. 부족한 사람이야. 이렇게 생각했는데 마음이 네가 원하는 것을 하니까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용기도 생기더라고. 여행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이 작은 깨달음이 마음이 너와 나에게는 큰 울림이 되는 경험이었던 것 같아. 이 여행의 끝에는 우리가 더 건강한 관계로 성장하길 바라.
휴양림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자신에게 맞는 길을 향해 가고 있었다. 나는 길도 모르겠고 일단 아무렇게나 너무 짧지 않은 길을 택해서 걸었다. 아이가 가는 그 길을 따라가며 바람의 숨결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새들 각자의 목소리도 들었다. 아이가 멈춰서 궁금해하는 것들을 답해주고 나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아이가 보는 것도 신기하게 느껴졌다. 무작정 시간이 없다고 아이의 손을 당기고 화를 내던 내 모습이 지금 아이가 보는 모든 것들을 못 보게 했고 그 답을 해 줄 수 없게 했다. 내가 깊은 숨을 내 쉬는 것의 기쁨도 모르고 살았다. 아 내가 이런 여유를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이었구나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절물 오름 밑으로 가니 더 이상 유모차를 끌 수 없는 길이 나왔다. 나는 유모차를 표지판 옆에 고이 접어 두고 루트를 보며 이 오름의 한 바퀴를 도는 1시간 코스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아이는 이전처럼 걷지 않았다. 이미 많은 체력을 썼으니 주저앉았다.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안고 무작정 위로 올라갔다. 제1전망대가 800미터 앞이라는데 나는 8킬로처럼 느껴졌다. 아이의 무게는 13kg. 포기하고 싶을 때 물도 마시고 달콤한 젤리도 먹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안쓰러운 표정도 우려의 한 마디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냥 나이고 싶었다. 마음이 가고 싶다고 했다. 중간에 내려가기 싫다고. 나는 그렇게 걷고 걸어 어렵게 제1전망대에 올랐다.
지금까지의 고통이 싹 사라지는 한적한 풍경이었다. 중간에 포기했으면 못 보았을 그런 풍경. 그 위에서 나는 너무 행복이라는 감정이 밀려왔다. 도전의 기쁨. 내 기쁨을 아는지 아이도 한껏 행복하게 웃어주었다. 그리고 정상에서의 몇 배 더 달콤한 젤리도 함께 먹었다.
처음 도전한 오름을 순례하는 코스는 결국 실패했다. 하지만 제1전망대까지 가는 아주 작은 성취를 이뤘다. 이 찬 바람 가운데서도 등줄기에 땀이 차지만 나는 이 아름다운 광경을 보았기에 내려가는 길이 아쉽지 않았다. 그 과정이 참 멋졌기에. 나도 아이도 포기하지 않았기에. 나는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였고 나를 조금 더 알게 되었다. 모두 완벽하거나 모두 잘할 필요는 없다. 내가 갈 수 있는 곳까지 갔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