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쁨의 강물 Apr 29. 2022

#2. 설레임 이후 현타 : 회사는 이런 곳인가요?

나의 유일한 경쟁자는 어제의 나다. 눈을 뜨면 어제 살았던 삶보다 더 가슴 벅차고 열정적인 하루를 살려고 노력한다. 연습실에 들어서며 어제 한 연습보다 더 강도 높은 연습을 한 번, 1분이라도 더 하기로 마음먹는다.
어제를 넘어선 오늘을 사는 것, 이것이 내 삶의 모토다.    - 강수진 <나는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


[ 알지 못함을 알지 못하다 ]

1월에 그룹 입사로 몇 개월을 이제까지 학교에서 받았던 교육과는 전혀 다른 회사의 경영 철학, 마인드셋, 스킬 교육, 회로 HW 설계 기본, CAD 설계 툴 사용법, 문서 작성 툴의 사용법 등을 소개받았다. 무엇인지도 모르는 막연한 설레임으로 가득해서 입사 동기들과 깔깔거리며 웃고 지낼 때마다 선배들이 와서 우리의 밝은 표정을 신기해하는 것이 어떤 종류의 부러움인지 몰랐다. 생산라인 1개월 실습 기간 동안 새벽 5시에 집에서 나와 전철 첫차를 타고 출근해야 하는데 어느 날은 회사 근처로 이사를 오려고 이삿짐을 싸느라 그만 늦잠을 잤다. 어쩔 수 없이 인사팀 선배와 통화한 후 휴가를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그 다음날 출근한 나를 생산 라인 조장이 왜 그리 심하게 째려보았는지, 여사원들이 라인 조장을 욕을 하며 무서워하면서도  바로 코앞에서는 언니, 언니 하면서 이것저것 챙겨주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알 듯하면서도 잘 몰랐다. 쉬는 시간에 생산직 여사원이 나의 급여가 얼마인지 천연덕스럽게 물어보는 건 왜 인지, 나를 남자 입사 동기와 떨어뜨려서 부품을 분류하는 일을 시키는 이유는 무엇인지, 쉬는 시간에 남자 동기와 이야기하거나 함께 점심을 먹으러 걸어가고 있으면 많은 여사원들이 굳이 우리 둘 사이를 지나가면서 나에게 톡 쏘는 말을 하며 왜 그렇게 미워했는지를 알지 못했다.


그뿐 아니라 직장인은 모두 정장을 입고 사무실에서 일하는 줄 알고는 공대를 졸업한 여사원이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다양한 색으로 예쁜 정장만 세 벌을 샀었다. 그리고는 매일 아침마다 회사 정문을 통과한 출근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건물 안의 탈의실에 들러 분홍색 셔츠와 베이지색 바지의 근무복으로 갈아입고는 하루 종일을 지냈다. 근무복으로 갈아입지 않거나 약간이라도 개성을 드러내는 것이 근무복을 의무로 입어야 하는 생산직 사원들에게는 위화감이 조성된다는 것도 당연히 몰랐다. 더구나 회사가 몇 개월 동안 다양한 교육을 시행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지도 못하는 교육기간에 월급을 주는 이유조차도, 상사의 역할과 위치는 무엇인지도 궁금했다. 회식 자리에서는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등 상황별 처신에 관심도 없었지만 전혀 배우지도 못해서 글자를 보고도 읽지 못하는 문맹인과 같았다. 그래서 첫 회식 때는 신입은 무조건 회식 마지막까지 참석해야만 하는 줄 알고 동기 몇 명과 3차까지 눈치 없이 순진한 눈빛으로 구석에 앉아 있었다. 마치 외계인이 지구에 내려와 모든 것에 적응이 되지 않아서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반복해서 연출하는 듯했다. 직장에서 만나는 알지 못하는 낯선 미지의 세계는 당분간 내 주변을 여전히 알지 못하는 세계라는 형태로 내 주변을 맴돌며 궁금증만을 자극했다.  


[ 사회생활이 나에게 보낸 첫 번째 신호탄 ]

“이 대리, 맨날 그렇게 빈둥거리면서 아직까지 그 일은 왜 못하고 그러고 있는 거야?”

이제 갓 개발실 전체 OJT가 끝나고 부서 배치된 지 얼마 안 되었다. 출근해서부터 몇 시간째 무슨 말인지도 모르지만 책상 위에 놓인 업무 매뉴얼만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어리바리 신입사원의 졸음에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큰 목소리였다.


모두가 조용한 오전 시간에 높은 파티션 너머로 몇 번의 슬리퍼 끌리는 소리가 나더니 호탕한 웃음과 함께 들리는 말이었다. 전문대를 졸업했지만 CAD 설계 업무는 개발실에서 최고였던 나의 사수인 김 대리님이 얼마 전까지 미국에서 개발 프로젝트를 한 후 돌아와서 서버 개발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이 대리님에게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건넨 말이었다. 머릿속에 두 개의 문장이 스쳐 지나갔다.


‘이 대리님, 민망하게 저런 말을 왜 저렇게 크게 하는 거지?’

‘저 두 사람은 친해서 서로 허물없이 편하게 저런 말도 하면서 지내는 사이인가 보구나.’

그리고는 바닥을 끌던 그 슬리퍼 소리가 점점 내 쪽으로 가까워지고 커지면서 바로 내 의자 뒤에서 멈췄다. “바로 조금 전에 그룹장님이 오전 회의를 다녀와서는 자리에 오셨더라고. 그래서 내가 이 대리가 요즘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큰 소리로 알 수 있도록 얘기해줬지. 하하하 이런 게 다 사회생활 아니겠어?”

김 대리님은 나에게 마치 무언가 커다란 미션을 성공적으로 마친 동네 꼬마와 같이 자랑스러운 표정과 얼굴 가득히 웃음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추운 겨울 아침에 샤워기 밸브에서 갑자기 쏟아진 찬물처럼 짧은 공포감에 깜짝 놀랐고, 그 느낌이 나의 온몸을 감싸자마자 차가운 소름에 머리가 텅 비게 되고, 머리카락은 쭈뼛 서더니 석고상 같이 내 몸이 굳어 버렸다.

 ‘회사는 정글과 같다더니만 바로 이렇게 무서운 곳이었구나.’


지금까지 나는 가족, 교회, 학교 선배, 동아리 등 누군가의 돌봄이 풍성한 세계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 나를 전율케 했던 이 장면은 마치 거인이 엄지와 검지로 나의 목덜미를 위로 번쩍 들어 올린 후 바로 옆에 있는 내가 싸우고 정복해야 할 회사라는 세계의 담장 너머로 순간 이동시켜서 여기가 바로 어떤 곳인지를 보게 해 주었던 첫 번째 순간이었다. 나를 놀라게 했던 이 순간의 경험은 이제 내가 더 이상 온실 속의 화초로 살 수 있는 무대는 끝이 났으며,  야생의 잡초로 살아가야 한다는 엄중한 깨달음을 던져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은 내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짓밟히면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꽃을 피어내는 길가의 민들레와 같이 인생의 또 다른 무대에서 삶을 살아냄의 시작을 알리는 작은 신호탄과 같았다.


스쳐 지나가는 짧은 순간의 장면은 하나의 프레임으로 몇 년 동안을 머물렀었다. 이 진실의 탈을 쓴 거짓은 직장이라는 사회에서 원하는 위치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만 한다거나 내가 이룬 작은 업적을 누구에서든 빼앗겨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줬다. 도리어 회사에서의 나의 존재감을 높이려면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약간은 크게 부풀려야 하며, 또 상사가 모르는 경쟁자의 작은 실수는 어떤 방법으로든 상사가 알 수 있도록 친절하게 하는 것이 경쟁에서 이기는 자연스러운 방법이라고 알려줬다. 그래서 직장이라는 곳은 ‘하수들이 가진 뒤통수 치는 노하우’가 통하는 곳인 줄 오해를 했다. 온실 속에서 터득한 화초가 자라는 법과는 다르게 모진 비바람과 눈보라도 맞으며 주어진 상황에서 버티고 견디는 야생초의 삶을 본격적으로 경험으로 배우게 되었다.


그것은 이제까지 내가 기대고 살아왔던 가치관의 반대편에서 조금씩 조금씩 벽을 갉아먹는 개미와 같이 조용히 나를 공격하고 또 공격해왔다. 그리고는 시름시름 나의 커다란 열정의 풍선에 작은 바늘구멍을 내고는 표시 나지 않게 힘을 빼내고는 그럭저럭 무감각하게 살도록만 했다. 원인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할뿐더러 때로는 ‘하수들의 노하우’ 조차도 제대로 적용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비난하기도 했다. 지지리도 명예나 운이 없으며, 내 방식으로는 회사에서는 성공으로 만족할 수도 없고, 그저 어느 누군가의 권력을 위하여 미련 곰탱이 노릇만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하며, 평생을 약자로 살아야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도 들었다.


‘직장 생활은 원래 힘든 것’이라고 보통 사람들이 내게 말해 주었던 작은 거짓은 내가 월급을 받기 위해서는 너무도 당연하게 지불해야 할 대가라고 속삭였다. 그러나, 이렇게 직장 생활을 배우고 인생을 배우는 것이 소중한 건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직장 속에서의 포커페이스와 적절한 아부는 승진에 필요한 충분조건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암묵적 가정을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면서 나 스스로를 벽 안에 점차 두껍게 가두었다. 점표 받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겼던 나무 사람 펀치넬로처럼.

‘직장생활, 그동안 내가 너를 오해해서 미안했다. 내가 정말 몰랐거든.’


[ 내 편이었던 사수가 원수가 되었다 ]

부서가 배치되어 커피가 담긴 머그잔을 한 손에 들고는 느릿느릿 산책하듯 파티션 사이사이를 S대의 자부심으로 걸어 다니시던 한량 같은 박 과장님과, 전문대를 졸업하고 괴팍한 성격에도 CAD 설계 업무만큼은 개발실에서 최고로 꼽혔던 김 대리님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지금의 파트는 원래 2명이 아니라 7명 정도였으며, 바로 몇 달 전에 서로 관계가 악화되어 싸우고, 역할에 대한 이권 대립 등의 이유로 뿔뿔이 흩어져서 지금의 상태가 되었단다. 인력이 필요했으나 이러한 정황을 이미 아는 개발실의 어느 누구도 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CAD가 무엇인지 단 1도 모르는 신입사원이 바로 그 업무를 해보겠다고 손을 들었으니 다른 동기들보다 제일 먼저 부서 배치가 정해졌다. 분명히 개발실장님 면담 때 ‘CAD를 하나도 모르지만 해보고 싶습니다.’라고 했던 대답으로 어떤 제약도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꼭 필요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새싹 신입사원은 그렇게 김 대리님께 개발실의 다른 동기들과 함께 수많은 전문 용어의 개념을 일일이 하나씩 하나씩 받아 적고, 또 받아 적어서 노트를 내용으로 꽉 채웠다. 하지만, 읽어보고 또 읽어봐도 도대체 알 수가 없는 OJT를 친절하게 사수 김 대리님의 몇 번씩 반복 설명을 들으면서 이해하려고 기억하려고 애쓰고 애썼다. 여하튼 나는 그 업무를 해야 할 사람이었기에 특별히 신경 써 주시고 너무나 고맙게도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이때 고3 수험생처럼 정리한 몇 권의 노트를 버린 것은 그로부터 15년이 훌쩍 지난 불과 몇 년 전이었다. CAD는 무슨 약자인지, PCB가 무엇이고 어떻게 생겼는지, PCB 내에 회로 신호선을 서로 연결해 주는 Via와 Pad는 무엇인지 아는 것은 쉽지 않았다. PCB의 적층 구조와 회로의 연결을 이해하고, 영어와 한글과 한자가 섞인 한 바닥의 전문용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포를 하나씩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며 설명을 듣는 듯했다.


그리고 그때 신규 과제의 PCB 설계를 베테랑 김 대리님이라면 단 4주 만에 뚝딱 끝낼 일을 OJT 마지막 숙제로 CAD 툴을 사용해서 내가 실제로 설계해야만 했다. 기간도 정해지지 않고 엉망으로 신호선을 연결하더라도 모두 다 연결하는 것이 목표였기에 거의 3개월 동안이나 회로도 40페이지의 디자인을 부품 배치를 하고 신호선을 연결하려고 매일매일 모니터 앞에 앉아서 마우스만 움직였다. 이 기간에는 낮에도 여러 색깔의 신호선을 연결하고, 밤마다 꿈에서도 똑같이 연결하고 연결했다. 보통 처음 당구 배우시는 분들이 자려고 누우면 천정에 당구 다이, 당구공, 큐가 보이는 것처럼 나도 거의 3개월 동안 온통 오색찬란한 신호선을 연결하는 것만 눈에 아른거렸다. 처음에는 정해진 PCB 면적에 신호선이 지나갈 공간이 널널해서 몇 백 개씩 쑥쑥 줄었다. 그러나 막판으로 갈수록 겨우 하루에 5개를 가지고 연결했다 옮겼다 지웠다를 계속 반복하면서 씨름을 했다. 이런 나의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장 뿌듯해하신 분은 나의 사수였다. 하나의 Line을 연결하기 위해서는 베테랑 사수의 노하우가 절실히 필요했다. 힘들다고 어렵다고 호소할 때마다 얼굴에 환한 미소와 함께 그것은 너무 당연하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마침내 드디어 수백 개의 오류 결과에도 불구하고 [Unconnected Line : 0]라는 숫자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부품 안에 있는 소자를 서로 맞바꾸거나 같은 입력 핀을 서로 바꾸어서 신호선 연결을 쉽게 하는 로직(Logic) 파일 구성에 대하여 세미나를 하라고 박 과장님이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도 드디어 그 말로만 듣던 첫 번째 신입사원 세미나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영어로 된 매뉴얼 자료, 박 과장님이 주신 자료 등을 찾아서 첫 세미나 하는 날이 되었다. 회의실에는 달랑 박 과장님, 이 대리님 이렇게 3명이었지만 그래도 긴장이 되었다. 그럼에도 부품의 종류별로 각각 다르게 구성해야 하는 로직(Logic) 파일을 어떻게 코딩해야 하는지를 확실히 이해한 상태였기에 마음속으로 뿌듯했다.


그런데, 끝날 즈음에 ‘이제 잘했다. 수고했다.’라는 칭찬만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 이 대리님이 질문을 하셨다. ‘그 로직이 제대로 동작하는지 실제 제품 모델에서는 어떻게 아느냐고 실 사례를 근거로 이야기하라’는 것이었다. 아놔. 진짜 신입사원인 내가 실 사례를 어떻게 아냐고요. CAD 툴 영문 매뉴얼에 적혀 있는 로직을 분석했더니 이러면 배선 설계가 훨씬 쉬워진다, 기존 부품의 어떤 종류의 로직 파일은 그래서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그렇다. 기존 파일이 잘못 작성됐다는 그것이 사수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그건 이 대리님이 만든 파일이었다. 그저 매뉴얼에 있는 그대로 작성해야 설계가 쉽다고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수정해야 한다고 원칙을 얘기한 신입사원과 자신의 결과물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예민한  사수 사이에 계속 언쟁이 오고 갔다.


상식적이지 않은 딴지에 한마디도 지지 않고 실무 경험이 없는 내가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나중에 알려 드리겠다 이렇게 마무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계속 전형적인 꼰대와 같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가 막히고 화가 나고 열이 났다. 신입사원의 첫 세미나는 격려해주고 더욱 발전하도록 하는 자리가 아닌가. 그리고 바로 내 사수잖아. 사수는 후배가 똑 부러지게 잘하면 더 좋은 것 아닌가. 그리고, 지금 저 사람은 나랑 같은 편이 아니라 경쟁하고 있구나. 자기가 1등이었는데 자신의 부족함이 드러나는 이 순간을 용납하지 못하는구나 싶었다. 그래도 박 과장님이 중재를 하셔서 어찌어찌 마무리가 되었다. 오전 세미나를 그렇게 마치고 나는 점심도 먹지 않고 집으로 가버렸다. 물론 그날 오후 휴가는 계획되어 있었지만 말이다.


시간이 흘러서 내가 몰랐던 사실 중 하나를 그제야 알게 되었다. 보통은 기존 선배들이 모두 다 아는 내용을 신입사원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검증하려고 세미나를 시킨다. 하지만 정작 신입사원이 그 분야에 대해 그들보다 많이 안다고 판단되는 순간, 선배들은 좌절감을 넘어 시기와 질투심을 갖게 된다는 사실이다. 어느 누구도 자세하게 매뉴얼을 들여다보고 이래저래 자세히 살펴본 사람이 없었다는 점, 그래서 그 순간 가장 많이 알던 사람은 나, 신입사원이었다. 이런 사실을 알아차린 기존의 실무 전문가들은 도전받았던 것이다. 신입사원이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쌓아놓은 자기 영역의 지식을 비록 경험은 없더라도 더 많이 알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거나 세미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보였던 처절한 노력을 인정해주는 선배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보이지 않는 전쟁터 같은 일터에서는 이런 지식의 역전현상을 쉽게 받아들여지기는 쉽지 않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강함과 자신감을 드러내려면,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괴물을 맞닥뜨렸을 때 용기를 가지고 괴물을 죽이든 단순히 마주 보고 있든 말을 걸어 보든 그 과정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물임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자신을 묶고 있는 두려움에서 벗어나서 자유를 얻는 길로 가는 용기의 길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 149쪽, 캐럴 피어슨 지음)

작가의 이전글 #1. 오늘도 ‘나' 존재를 증명하려 애쓰는 ‘나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