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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행 Sep 16. 2020

당신에게 지하철은 어떤 의미입니까?

불법촬영 아저씨와 바른 청년 - 달콤씁쓸한 우리의 일상

"지옥 열차 티켓 주세요"
귀를 의심했다.
폭력적인 멘트와 어울리지 않는 서글서글한 웃음.
몇 년 전, 입사한 지 갓 몇 개월 된 새내기 역무원이 감당하기에는 무시무시한 멘트였다.

지금 같으면 가볍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을 테지만.
"네가 뭔데, 왜 나 무시해" 등 폭언과 글로 쓸 수 없는 욕설, 심하면 폭행까지 당하는 역무원들.
나름 치열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던 내 세상은 온실이었다.
처음부터 너무 부정적인 것만 썼지만 마음 따뜻해지는 일도 많다.
아이들이 손하트를 하며 "사랑합니다"라고 말해줄 때면 아직 살만한 세상이구나 느낀다.


4호선에서 근무할 때,

"사당행 사당행 열차입니다"라는 안내방송을

"사랑행 사랑행 열차입니다"라고 잘못 들은 적이 있다.

연애를 막 시작할 때여서 그런지 세상이 마냥 달달해 보였나 보다.
작가소개에 있는 지옥행과 사랑행이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에피소드가 차곡차곡 쌓이니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졌다.


우리에게 지하철은 어떤 의미일까.

2019년 기준 서울지하철 1~9호선에 하루 평균 746만 9180명이 탔고, 한해 27억 2625만 명이 이용했다.

이 중 지하철 승객이 가장 많이 탄 노선은 2호선으로 하루 평균 222만 4548만 명이 이용했다.

이 중에서도 강남의 하루 평균 이용객은 14만 1597명으로 단연 압도적이다.

이 구간을 이용하는 승객은 지하철을 지옥철이라 생각할 것이다.

역세권에 살지 않았던 학창시절에는 버스를 주로 이용해서 흔히 말하는 지옥철을 경험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요즘은 지옥철의 위력을 실감하는 중이다.

앞뒤사람과의 거리가 숨 막힐 정도로 좁아 움직일 수 없고, 괜히 불쾌하다.

코로나로 인해 이용객이 줄어 덜하지만 아직도 출퇴근 때에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킬 수 없을 정도로 붐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하철은 따뜻하다.

취준생이던 시절 장시간의 공부를 마치고 4호선을 타고 집에 돌아오는데, 옆에 50대 아저씨가 자꾸 몸을 밀착했다. 느낌이 이상해서 앞에 자리가 나자마자 옮겼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내 또래의 청년이 앉았다.

한참을 그렇게 가는 중 갑자기 내 옆으로 그 청년이 와서는 나를 콕콕 찌르며 핸드폰을 내밀었다.

그 순간 '아 오늘 꾸미지도 않고 옷도 별로인데 왜 연락처를 물어보는 거지?'라고 생각하며 조금은 새침하게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너무 창피하게도 핸드폰 화면에는 '앞에 아저씨가 그쪽 사진을 찍었어요'라고 적혀있었다.

창피함도 잠시 나는 그 아저씨에게 가서 물었다.

"제 사진 찍으셨어요?"

"이 아가씨가 무슨 소리야! 안 찍었어!"

그 아저씨는 태연하게 발뺌을 했고 나는 애써 도와준 그 청년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내 선에서 해결하려고 했다.

"아저씨 찍는 거 다 봤어요. 그럼 핸드폰 줘봐요."

"무슨 소리야? 이 아가씨가 어디서 사람을 범죄자로 몰아!"

핸드폰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아저씨와 한창 실랑이를 하는데 옆에 그 청년이 다가왔다.

"아저씨가 사진 찍는 거 제가 다 봤어요."

그제야 아저씨는 핸드폰을 보여줬고 그 사진첩에는 열차 내 의자에 앉아있는 너무도 평범한 내 모습이 담겨있었다.

"도대체 제 사진은 왜 찍은 거예요?"

"첫사랑이 생각나서 그랬어..."

"사과하세요"

"그.. 그래 아가씨 미안..."

그 범죄자는 이 한마디를 남기고 열차 문이 열리자 황급히 도망쳤다. 사진을 지웠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그 청년에게 거듭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몇 정거장 지나서 청년이 내렸고, 그제야 나는 손이 떨려오면서 울컥했다. 경황이 없어서 종점까지 가는 바람에 난생처음 당고개역에 갔고 부모님한테 전화했다.

엄마 목소리를 듣자마자 갑자기 울음이 쏟아졌다. 부모님이 데리러 오셔서 차를 타고 집에 갔고 나는 경찰서에 같이 못 간 게 분하다고 했다. 그러자 부모님은 그런 사람이랑 얽히면 괜히 신상 밝혀지고 좋지 않다고 사진 지운 것만으로도 용기 있고 잘한 행동이라고 하셨다.

부모님 세대는 경찰서에 가는 것을 많이 꺼려하시는 것 같았다.


다음날 같이 공부하는 스터디원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어떻게 그 상황에서 직접 사진을 지울 생각을 했냐고 대단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청년 착하다고 사례는 했냐고 했다.

아차 싶었다. 연락처를 물어봤어야 했는데..

그분이 아니었다면 나는 용기 내지 못했을 것이고, 사진도 못 지웠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 청년은 훈훈했다...

덧붙여 나는 그날 검은색 긴바지에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심지어 검은색 롱 카디건까지 걸치고 있었는데 도대체 왜 나를 찍었을까 궁금했다(불법촬영에 피해자의 잘못은 1도 없다).

한 스터디원은 그 아저씨에게 장례식장 페티시가 있는 거 아니냐며 농담을 던졌고, 다른 스터디원은 일상적인 사진 올린 후 댓글로 성적인 농담 하면서 즐기는 이상한 사이트가 있다고 알려줬다. 사진첩 사진 지웠어도 클라우드 같은 곳에 남아있을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말과 함께......

불법촬영은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겪고 나니 아직도 핸드폰 카메라가 내쪽으로 향해 있으면 의하게 되는 후유증이 남았다. 그날 나는 선과 악을 동시에 본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믿는다.

그런 선함이 모여 악함을 누르고 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P.S. 4호선에 근무하면서 그 청년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만나지 못했고, 다른 착한 남자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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