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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행 Oct 05. 2020

나의 유쾌한 사각팬티 체험기

체헐리즘 남자의치마 반대판 2

학창 시절부터 편한 속옷을 찾곤 했다.

와이어랑 후크 있는 브래지어를 입으면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잘 안 됐다.

무엇보다도 와이어와 후크 부분이 피부에 쓸려 붉은 선이 남기도 했다.

10년 전인 그때에도 시중에는 편한 브래이저가 많아서 찾는 게 어렵지 않았다.

요즘에는 더 많은 노와이어와 브라렛이 각 브랜드마다 다양하게 출시되어 있다.


내가 사각팬티를 입게 된 이유는 젠더리스 패션이 거부감 없는 MZ(밀레니얼·Z)세대 여서도 아니고

기존의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탈피해보고자 하는 신념 때문도 아니었다.

바로 남편의 권유 덕분이었다.


오랜 세월 삼각팬티가 불편했었다.

Y존을 압박하는 밴드로 인해 가려웠고 착색되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브래이저와 다르게 적극적으로 대안을 찾지 않았던 건 사각팬티는 생리대를 착용하기에 부적절해 보였고 시중에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나마 건강을 생각해서 면팬티 사는 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이번 여름은 긴 장마로 인해 습해서 Y존이 더 가려웠고 상처가 많이 나서 연고를 자주 발랐다.

자주 있던 일이라 난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남편은 걱정된다며 연고를 발라주며 내게 물었다.

"왜 사각팬티는 안 입어?"

"사각팬티? 여자용 사각팬티가 있나? 없을걸?"

"그런가? 혹시 모르니 한번 찾아봐"

반신반의한 상태로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사각팬티가 꽤나 많았다.

편한 브래이저보단 종류가 많진 않았지만 몇 개 유명한 상품이 있었고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걸로 골고루 주문했다. 심지어 생리대 착용이 가능하도록 개발한 제품도 있었다.

인터넷 주문을 하고 당장 입어보고 싶어서 오프라인 매장에 갔는데 찾기 어려웠다.

아직은 흔하지 않은 것이다.

 

사각팬티를 입은 지 두 달째인데 놀랍도록 많은 변화가 있었다.

1. Y존의 림프절을 압박하지 않아 다리가 덜 저리고 붓기가 완화되었다.

2. 통풍이 잘돼서 가려움과 피부질환이 개선되었다.

3. 생리통이 없어졌고 생리 양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부수적으로 더운 여름날 치마를 입었을 때 속바지를 껴입지 않아도 되고, 레깅스나 얇은 옷을 입을 때도 햄라인 팬티가 필요 없어져서 이중으로 속옷을 구매하고 챙겨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어진다.


특히 3번은 예상치도 못했던 변화이다.

내가 글을 쓰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1번과 2번은 예상 가능한 변화이고 내가 사각팬티를 구매하려던 목적이기도 하다.

3번은 그동안 병원에서도 해결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생리양이 많아서 일상생활이 불편했고 산부인과 검진 때 상담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의사 선생님은 대형 10개 이상을 몇 시간 안에 적실 정도가 아니라면 정상이라고 하셨다.

몇 시간 안에 대형 10개는 총을 맞은 것과 같은 출혈로 예상되므로 '나는 정상이구나'하고 넘어갔다.

생리통은 학창 시절에는 없는 편이다가 성인이 되고부터 생겼고, 하루 이틀 정도 통증약을 먹으면 되는 정도라서 '이 정도는 여자라면 겪어야 할 통증인가 보다'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두 번의 생리기간 동안 중학생으로 돌아간 것처럼 생리통이 없어졌고 생리 양도 확 줄었다.

여성이라면 공감할 생리혈 덩어리도 없어졌다.

첫째 달은 일시적인 현상인가 하고 의아했는데 두 번째 달에도 같으니 확신이 생겼다.

사각팬티 덕분인 것이다!

나만 이런가 궁금해서 포털사이트에 여자 사각팬티라고 검색해보니 오래전부터 사각팬티에 관한 기사가 있었다.


2017년 10월 21일 자 오마이뉴스에

"난생 처음 입은 '남성 팬티'... 이것은 신세계다

SNS에 입소문 난 남성 팬티 사서 입어봤더니... 여자 팬티도 편하게 만들면 안 될까?"

라는 뉴스가 있는 걸로 봐서는 꽤 오래전부터 입소문 난 것 같은데 SNS를 잘 안 해서 몰랐나 보다.


이렇게 변화가 좋으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색소침착도 없을 텐데 아쉬웠다.

결국 나도 고정관념 때문에 오랜 시간 내 몸을 혹사시키고 있었구나.. 내 몸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고정관념을 깨준 내 몸을 사랑하는 남편에게 감사했다.


몸이 편해지자 나는 이제 생리가 예전만큼 두렵지 않다.

그동안 내 인생의 20%의 지분을 차지해온 생리 날이 두렵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의 소중한 시간이 더 생기는 것과 같다.


혹시 나와 같은 고민을 하셨던 분들은 주저 말고 사각팬티를 한번 착용해보시라고 강력히 권하고 싶다.

그런 고민을 가진 여성의 가족이나 친구는 사각팬티를 권유해보시면 절을 받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권유한 남편은 본인이 1등 공신이라며 뿌듯해하고,

글을 쓰는 현재는 글 쓰는 내가 보기 좋고 기쁘다며, 설거지를 하면서 노래까지 부르고 있다.



https://brunch.co.kr/@joy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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