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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행 Oct 25. 2020

내가 사내부부를 할 줄이야

예측 불가한 삶이 더 흥미로울 수도

얼마 전 동기가 결혼을 한다며 연락을 했다. 청첩장 모임에 나가니 사내부부라고 했다.

소식은 이미 들었지만 사내부부가 이렇게 많다니 새삼 놀라웠다.

작년에 국정감사 관련 기사를 읽다가 신한은행의 사내 부부 비율이 8%가 넘는다는 자료를 보았다.

은행권의 사내부부 비율은 꽤나 높은 편인데 체감상 우리 회사의 비율도 높을 것 같다.

성비가 불균형했던 과거보다 현재가 훨씬 사내부부가 많아지는 추세이다.


사내부부의 장점

1. 인맥이 겹치고 서로의 일에 대해 공감할 수 있다.

2. 서로의 연봉을 잘 파악할 수 있다.

3. 맞벌이다.


사내부부의 단점

1. 인맥이 겹친다.

2. 연봉을 너무 잘 안다(들어오는 시기까지).

3. 사내부부라서 제외되는 수당이 많다(중복 수령 불가).


우리 부부는 아직까지 장점이 더 와 닿아서 사내부부 생활에 만족하는 중이다.

나는 입사 전부터 입사 2년 차까지 절대 사내 연애를 하지 않겠다고 꾸준히 말해왔다.

그래서 비밀로 연애를 하다가 결혼하기 몇 달 전 동기들에게 소식을 알렸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1. 사내 연애 안 한다며~?

2. 결혼 늦게 한다며~?

그렇다. 나는 허풍 아닌 허풍을 떨고 다녔다.

내 삶이 이렇게 내가 마음먹은 대로 안될 줄은 그때는 꿈에도 몰랐다.

대학생 때부터 나는 삶을 즐기겠다는 신념으로 30대 중반 이후에 결혼한다고 재차 말했고 그때는 결혼 구속처럼 느껴졌다. 주변에서 결혼에 대한 안 좋은 얘기도 많이 들었던 터라 더 굳어졌다.

하지만 결혼은 또 다른 삶일 뿐 구속이 아니다. 

이건 배우자와 얼마나 성향이 맞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내가 겪은 결혼생활은 오히려 더 자유롭고 흥미롭다.

아무래도 연애 초반에는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추위를 참아가며 예쁜 옷을 입고 렌즈도 필수로 착용하게 되는데, 요즘에는 꾸미고 싶은 날에만 꾸민다.

이런 사소한 이유 말고도 정신적으로도 자유롭다.

재미없는 소개팅에 나가서 억지로 대화를 안 해도 되고, 나와 더 잘 맞는 인연이 있지 않을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결혼을 통해 여러 사람과 얕은 인연을 맺는 것보다, 한 사람과 깊은 인연을 맺고 알아가는 것이 더 흥미롭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나자마자 다음날 또 만난 나와 남편은 2주 만에 5번을 만나고 사귀게 되었다.

하지만 첫 만남을 위한 여정이 훨씬 길었다.

나와 남편은 동기지만 모르는 사이었다. 그러다가 남편이 모임에서 내 얘기를 듣고는 동기에게 소개해 달라고 했다. 그때 내가 썸남이 있다고 들은 동기는 거절했다고 한다.

그렇게 끝날 것 같았던 우리인연은 우연한 계기로 다시 이어진다.

우연히 이 얘기를 들은 내가 동기에게 왜 소개 안 해줬냐고 다시 이어달라고 했다.

나도 모임에서 남편이 괜찮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던 터라 호감이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궁금해서 직원 검색도 해보았고 카톡 프로필도 몰래 봤었다(남편도 직원 검색을 해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이어지는가 싶었는데 그 시기에 남편이 전여친과 다시 만나보려 한다는 얘기를 전해왔다고 했다. 맙소사 이렇게 두 번이나 튕겨지는 걸 보니 인연이 아닌가 보다 하고 마음을 접고 유럽여행(여행이야기 링크)을 준비했다.


그러던 겨울어느 날,

전여친과 잘 안된 남편이 마지막으로 부탁한다며 동기한테 소개팅 주선을 부탁했고 그렇게 세 번 만에 만나게 되었다. 사내 소개팅에 부정적이었는데 막상 만나보니 인맥이 겹치고 서로의 일에 대해 공감대가 있어 대화가 술술 풀렸다. 그렇게 우리는 길고 긴 엇갈림 끝에 만났고 결혼까지 했다.


우리 회사가 100% 만족스러운 건 아니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남편을 만나게 해 줬다는 점이다.

취준생(정확히는 공시생) 시절 역 승강장의 행선 안내 게시기에 뜬 회사 공고를 보고 '아 여기도 신입사원을 뽑는구나'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지하철 회사에 관심이 없었던 내가, 역세권에 살지 않아 주로 버스를 이용하던 내가 지하철 회사에 입사한 것도 예측 불가한 일이었다.

처음 브런치를 시작할 때에는 타인의 이야기를 주로 쓰려고 했는데 이렇게 나의 이야기를 자세히 쓰고 있는 것도 예측 불가한 일이다.

나는 여행도 일도 휴식도 계획을 자세히 짜고 계획대로 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렇게 돌발스러운 상황들이 싫지만은 않은 건 아마 내가 행복하다는 거겠지.

앞으로의 인생도 얼마나 제멋대로일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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