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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행 Jan 05. 2021

2. 이미 태어난 아기들이 행복하게 잘 사는 나라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아기는 소중하다

이번에도 외면하려고 했다.

도가니를 보고 며칠간 악몽에 시달렸던 기억 때문에 아동 학대에 관한 기사는 웬만하면 피하게 된다.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정인아 미안해'를 보고 애써 외면하다가, 췌장이 완전히 절단됐지만 울지도 않았다는 방송을 보고 도저히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이왕 태어난 아기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순 없는 걸까.


청와대는 입양 사후관리에 만전을 기해 달라는 주문을 했고, 언론은 경찰의 아동학대 신고 방치를 사건 발생의 주요한 이유로 들고 있다.

그러나 법의부검 자료에 따르면 아동학대 가해자의 86.2%가 친부모였다. 입양 사후관리가 능사는 아니다. 경찰의 3차례에 걸친 신고 방치는 마땅히 비판받아야 하지만, 아동학대 신고는 꾸준히 늘어나는데 지역 아동보호기관의 인력과 예산은 턱없이 부족한 현 실정에서 경찰의 행정력 개선으로 아동학대 문제가 해결되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우리 사회는 출산 장려정책에 막대한 예산을 쓰지만, 이미 태어난 아이들에게는 한없이 냉담하다.

저출산 예산의 일부만이라도 이미 태어난 아이들을 위해 쓰면 좋을 텐데 실현이 될지 요원하다.

4년 전에도 1년 전에도 몇 개월 전에도 아동학대 사건이 크게 이슈가 될 때마다 개선이 시급하다며 여야가 앞다퉈 주장했지만, 해를 넘긴 아동학대 예방 법안만 90건이 넘는다.


그리고 이미 태어난 아이들에 대한 예산과 정책도 우리가 보통 이상적이라고 여기는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위한 것이 대부분이다. 13년 전 미국에서 문화적으로 가장 충격을 받았던 일은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 임신한 학생이 스무 명 정도 재학 중이라는 점이었다. 더욱 놀라웠던 점은 이미 출산한 학생이 유모차를 끌고 등교를 한 후 보육교사에게 아기를 맡기고 수업을 들었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미성년자의 출산을 장려하자는 것이 아니다. 낙태가 엄격히 금지된 우리나라에서 미성년자의 출산을 금기시하고 심지어 퇴학시켜버리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이다. 미국도 미성년자의 출산을 장려해서 이런 문화가 형성된 것은 아니다. 성교육 수업 과제로 아기 인형 키우기를 일주일 동안 수행하게 해서 부모가 되는 것에 대한 책임감과 피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세상에 태어난 아이는 우리 사회가 같이 보호해야 한다.


지금 현실에서는 아이가 아무리 부모에게 학대를 당해도 결국 돌아갈 곳은 부모밖에 없다.

이번 정인이 사례에서 보았듯이 우리 사회에서 친권은 천부적 권리처럼 여겨진다. 친권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일정 정도 제한을 할 필요가 있고, 이상적인 가정에서 태어난 아동만 지원할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아기가 사회적 안전망 속에서 자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곳에선 편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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