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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행 Dec 15. 2021

결혼/다단계/보험아님

그래도 꽤 잘살았나 보다 2

누구나 제목을 보고 웬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었을 것이다.

처음에 저 카톡을 보고 나도 스팸인 줄 알았으니까.


저번 달에 오랜만에 강릉에 놀러 갔다.

11월 말이라 확실히 겨울에 가까운 날씨였고 패딩을 입었지만 매서운 바닷바람에 몸이 덜덜 떨렸다.

그래도 날씨가 좋고 푸른 바다가 예뻐서 한참 구경한 뒤 안목거리 카페에 들어갔다.

추운 곳에 있다가 따뜻한 곳에 들어와 따땃한 차를 마시니 노곤고곤 잠이 왔다.

잠에 들려고 하는 찰나 카톡 알람이 떴다.

무지개색 엣지로 알람을 해놓았기에 한눈에 보였는데

결혼/다단계/보험아님ㅋㅋㅋㅋ

이라는 카톡이 잠을 달아나게 만들었다.


여행에서는 여행을 즐기려 일부러 카톡을 잘 안 하려고 노력했는데 이 카톡은 바로 읽었다.

보낸 이는 더 신기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한 번도 연락하지 않은 친구였다.

유달리 귀엽고 통통 튀어서 가끔씩 생각나는 친구였다.

나는 "대박!!!!!!!"이라며 답장을 했고 친구는 자신을 기억하냐고 물었다.

당연히 기억한다고 대답한 뒤 대화를 이어나갔다.

친구도 그날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에게 연락을 받았는데 기분이 정말 좋았고, 나에게 연락하고 싶어졌다고 했다. 2~3년 만에 연락한 친구는 있어도 10년 만에 연락한 친구는 처음이라 인생에서 처음 겪는 기분이었다.

기분이 붕붕 뜨며 비현실적이면서도 좋았다.

몇 시간 대화를 이어나가다 둘 다 결혼을 했고, 신혼집이 같은 동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만나자고 약속을 정했는데 바로 그 다음주로 잡게 되었다.

친구의 추진력에 감탄하면서 나는 그날만을 기다렸다.

약속 날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패딩을 입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거라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예쁘게 꾸미고 나가고 싶었지만 너무 추웠다.

퇴근길 지하철에 사람이 너무 많아 몇 대 보내고 타는 바람에 조금 늦게 도착한다고 카톡을 보냈는데 친구가 소개팅하는 것 마냥 떨린다고 했다. 나도 살짝 떨리긴 했다.

드디어 식당에 도착했고 친구를 보는 순간 서로 빵 터져서 웃었다.

친구는 성숙해졌지만 여전히 귀여운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오랜만에 만났지만 처음에만 조금 어색하고 금세 익숙해졌다.

친구는 체육 수업 자유시간 때 나와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는데 그때의 대화가 좋아서 가끔 기억을 하곤 했다고 한다. 내용은 기억 안 나지만 아마 수험생활과 학교에 관한 얘기가 아니었을까?

사실 나는 벤치에서 얘기를 나눈 장면 자체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 친구와 10대답게 활기차고 재밌는 시간을 보냈던 것은 명확히 기억한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미국에 교환학생을 1년 동안 다녀와 2학년 2학기로 복학했기 때문에 복학 전 걱정이 많았다. 아무래도 같은 학교로 복학하는 거라 반 친구들이 어려워할 것 같았다. 그래서 빠른 년생인 것을 무기로 난 언니가 아니고 친구임을 강조하며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학창 시절에 1살 차이는 크게 다가오기에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친구가 반 정도 되었다. 이 친구도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친구 중에 한 명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언니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우리의 대화는 분명 달라졌다. 10대 때는 절대 하지 않았을 회사 얘기를 하고 신혼생활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달라지지 않은 것은 서로의 상황과 감정을 공유한다는 점이다.


몇 년 전부터 유명인사들의 학교폭력이 이슈가 되어서 이따금씩 내 학창 시절에 대해 생각해보곤 했었다.

내가 워낙 장난치는 것을 좋아해서 내 짓궂은 장난에 상처 받은 친구도 있을 것 같아 괜히 마음이 쓰였다.

내 기억에 폭력을 행사한 적은 없지만,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므로 놀림이나 장난에 상처를 받는 친구가 있었을지 모르니까 말이다.

이번 친구의 연락으로 내가 좋은 기억으로 남은 친구가 있다는 것에 크게 감동했다.

그리고 이 친구의 연락에 용기를 얻어 나도 코로나로 2년 동안 만나지 못한 고등학교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서 최근에 만났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서 AR, VR로 생생한 현실을 구현할 수 있다 해도 직접 대면하는 만남에 비할까 싶다.

나에게는 코로나19가 오히려 이런 감정을 더 소중하게 일깨워준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하루빨리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마음껏 만나는 시간이 찾아오길 바란다.


 

P.S. 당장 만나지 못하더라도 용기 내 연락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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