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감을 던진다. 벽마다 퍼진다. 내 몸에 번진다. 나는 스며든다. 바라나시의 빛 속으로!’
이것이 인도 ‘바라나시’에 대한 나의 첫 느낌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버스를 갈아타고 내디딘 첫 발, 내 눈에 색색깔의 집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중 과일가게가 있었다. 짙은 사랑의 빨간빛, 고향 할머니 품 같은 주황빛, 시큼한 짝사랑의 초록빛, 놀이터에서 놀던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르는 노란빛, 그 모든 과일들이 아침 강 물결에 일렁이는 반짝임처럼 눈이 부시게 펼쳐져 있었다. 빛이다. 이 도시는 내게 빛을 펼쳐놓은 빛 팔레트다.
골목골목 다양한 빛의 조합, 집집마다 칠해 놓은 빛들. 청록, 코발트블루, 연두, 초록, 노랑, 주황, 파랑, 분홍, 자주, 연보라…. 이것들이 대지의 황토색 바탕 위에 저마다의 신들처럼 제각각 빛나고 있었다. 모두 색으로 자신을 나타내고, 스스로 옆의 색들과 어울리고, 또 다 같이 빛났다. 스스로 존재하며 다 같이 어울리고 저마다들 떠나가는 곳.
내가 여기 왔다. 삶과 죽음이 함께한다는 이곳. 수많은 삶의 여행이 끝나고 시작한다는 곳. ‘빛의 도시’라는 ‘바라나시’. 죽은 뒤 화장한 재를 이 성스러운 갠지스강에 뿌리면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해탈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
갠지스강 위로 배를 타고 망자들이 들어온다. 배 주변에는 그 의 가족들이 주는 모이를 따라 수많은 새들이 따라오며 망자를 배웅한다. 그 새들은 한평생의 육신이 화장터의 불꽃으로 타올라 하늘로 올라가는 길을 가볍게 잘 인도해 줄 것이다. ‘아르띠 뿌자’, 강가에선 불로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신성한 의식을 한다. 화장터의 수많은 불꽃들과 사람들이 갠지스 강물에 비쳐 환상적이기까지 하다.
여행을 떠나기 전 인도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의 느낌을 나도 똑같이 느낄까 봐 두려웠다. 그들은 천으로만 싸여 있는 시신들이 배 위에 그대로 놓여져 이동하는 것과, 야외에서 화장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와서 보니 나는 너무나 담담하였다. 깜깜한 밤에 화장터의 불빛을 볼 때면 정말 따뜻하고 포근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생각해 본다. 나도 죽으면 다행스럽게도 참 따뜻하겠구나. 그리고 불로 태운다는 건 아주 순수하게 정화되는 것 같아 홀가분하게까지 생각되었다. 마치 긴 여행을 가기 전에 집안 정리를 하고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깨끗이 버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