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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숙 라라조이 Mar 31. 2021

인도는 어떤 무늬인가요

인도, 포르투갈 드로잉 여행기(2020.1,2월)

연꽃이 있었다. 천장에, 문에, 창살에, 벽에, 부처님 손에 그 문양들은 살아 있었다. 어디에나 꽃 피어 있었고 언제나 향기로운 듯했다. 연꽃 문양이 있는 곳에는 이따금 이슬람 양식의 격자무늬와 별이 함께 어우러지기도 했고, 자이나 양식의 빗살무늬도 슬며시 들어왔다가 또 힌두의 항아리를 품기도 하고 파란 날개의 물총새가 비껴 지나가기도 했다. 저녁이면 사람들은 낮에 나뭇가지를 박차고 비껴 날아간 파란색 날개의 물총새가 그려진 ‘kingfisher’라는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인도는 강이었다. 강에서 태어나고 강으로 돌아갔다. 인도에는 모든 것들이 갠지스 강물에 비쳐 떠내려가는 것 같았다. 아침에 산책 나간 오르차의 베트와 강가에는 긴 수염을 기르고 깊은 눈을 지닌 할아버지가 강물을 떠서 양치를 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손자인 듯한 작은 아이가 양동이에 강물을 가득가득 퍼서는 자신의 머리 위로 쏟아부었다. 그때 분수처럼 떨어져 내리는 물줄기 사이사이로 막 떠오른 태양의 빛 부스러기들이 공기방울처럼 퍼져 나갔다. 그것은 마치 하루를 시작하는 성스러운 의식처럼 강가를 환히 비추었다.


인도는 성이었다. 가는 곳마다 만나는 성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있었다. 오르차 마을에는 분델라 왕족이 무굴제국과 동맹을 맺어 지었다는 오르차성이 있다. 힌두 양식과 이슬람 양식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성이다. 어느 지점에서나 사선 방향으로 위를 쳐다보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성의 동글동글 뾰족뾰족한 첨탑들의 실루엣이 섬세한 레이스처럼 펼쳐져 있었다. 타지마할 북서쪽 야무나 강변에는 붉은 성이라 불리는 아그라성이 있다. 그 성의 꼭대기에 올라서면 아치 기둥 사이로 저 멀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는 타지마할이 흐릿하게 보인다. 애타게 그리워해도 다가갈 수 없고 멀리서 아련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슬픈 운명처럼. 인도의 수많은 성들은 그렇게 깊은 이야기들을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오르차성으로 가는 길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좌판과 가게들에 정신이 팔려 시장 광장 한쪽에서 드디어 질펀한 소똥을 밟았다. 오른쪽 발로. 그 어떤 소보다 나의 소가 방금 전 따뜻하게 배출해 낸 것 같았다. 어릴 적 어른들이 똥을 밟으면 행운이 온다고 했는데 꼭 그 행운 같았다.


호텔 잔디밭에서 우리가 그린 인도 풍경들로 드로잉 전시를 하며, 초록 풀밭에 청록색 비치 타월을 길게 깔고 각자의 방향대로 스케치를 하고 있었다. 그저 햇살에 따듯하게 누워만 있어도 천국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 관객은 한 인도 가족뿐이었는데 그 가족의 어린 딸은 우리를 따라 그림을 그리면서 무척 즐거워했다. 아이 아빠는 그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다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다. 풀밭에서 다 같이 한가로이 앉아서 얘기를 나누던 중 내 이름은 ‘Joy’인데 인도말로는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Khushi’

그 순간 인도 이름이 나에게로 왔다.


이제 나는 그림이나 글 끝에 ‘khushi’라고 쓰고, 내가 행운처럼 똥을 밟았던 곳 근처의 상점에서 산 인도 문양의 조각 도장을 찍어도 좋겠다. 그러면 그때마다 인도를 느낄 수 있겠지. 그리고 새로 태어난 기분도 들 것이다.


여행하며 나에게 새겨진 인도의 무늬들이 햇살 좋은 잔디밭에 색색으로 펼쳐지는 꿈을 꾼다.


그리워라 저 멀리 타지마할이 아련히 보이네 <인도, 아그라, 아그라성>

종이에 펜, 파스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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