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기차표를 끊을 때, 가방을 쌀 때, 비행기나 배의 항로를 고를 때, 고속버스에 올라설 때 나는 설렌다. 혼자든 함께든 상관없이 떠나가는 길은 나를 벅차오르게 한다. 나를 외로움에 팽개쳐 두는 것이 가능하기에 두근두근 눈치를 보며 떠나간다. 가는 길 위에 무엇이 놓여 있을지, 어떤 것들을 만나게 될지 모르기에 흥미롭다. 마치 흐느적거리는 나를 바람결에 맡겨놓고 그저 어디로 나부끼는지 지켜보기만 하는 것 같다.
가다가 만나는 우연한 것들이 마치 오천 년 전쯤부터 미리 예정되어 있던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러면 그 오천 년 전의 골목 언저리에서 한참을 머물 것이다. 바람 냄새 한 조각에라도 나의 기억이 되살아날까 하며 온 몸의 더듬이를 뻗으며 서 있을 테지.
돌아오고 싶지 않을 수도 있고, 돌아오고야 말 테다 하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이 우주에서 한 점으로 태어나서 뭐 그리도 땅의 소속감을 강하게 느낀단 말인가. 이곳이나 저곳이나 우리가 잠시 존재하기에는 아무 상관도 없을 것 같은데, 그 무서운 귀소본능은 또 갔던 길을 되돌아서서 꾸역꾸역 돌아오게 할 것이다.
돌아와서는 얌전히 집에 있을 것이다. 한동안.
그리고 내가 돌아온 이곳이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천국이라고 암시하겠지.
여행 가방에 담지 못했던 것들을
풍요롭게 누릴 것이다. 한동안.
그러다 걸리적거리는 물건들이 눈에 거슬리고
내 몸에 비늘이 켜켜이 쌓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것이다.
그때 나는 서랍에 넣어 두었던 작은 배낭 하나를 다시 꺼내
아주 적은 생존의 물건들만 넣고 일어서겠지.
언젠가는 두 다리로 일어서서 떠나지 못할 때가 올까 봐 자꾸자꾸 벌떡 일어서서 떠난다. 이 자리에서 어디로도 꼼짝없이 움직이지 못할까 봐 떠나간다. 이 자리의 존재를 확고히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이. 결국은 떠나지 않아도 떠나는 것 같은 날이 오면, 지금 이 자리가 너무도 그리워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