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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숙 라라조이 Apr 05. 2021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파두

인도, 포르투갈 드로잉 여행기(2020.1,2월)


암흑 속에서 울부짖는다.

바다로 간 남편은 오지 않는다.

나는 이곳에 살아 있는데,

이렇게 처절히 살아 있는데

남편은 돌아오지 않는다.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이 경계에 갇혀

그저 울부짖는다.

바다를 향해 토해 내는 피의 절규!

거센 파도소리에 묻혀 사라질 뿐이다.


이것이 포르투갈 민요인 파두(FADO)를 처음 접했을 때의 강렬했던 첫인상이다.


‘파두’는 항구도시인 리스본에서 생겨난 포르투갈의 전통 민요로, 그 옛날 바다로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이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애타게 불렀다고 한다.


리스본에서 길거리 버스킹이나 재즈바 같은 곳의 음악 공연이 보고 싶었다. 이런 내 마음이 통했는지 파두 공연을 보게 되었다.


처음으로 나온 두 남자 기타리스트의 연주는 첫소리부터 마음을 흔들었다. 두 남자 중 한 사람은 내 느낌에는 포르투갈 역사만큼이나 나이가 많은 듯 보였다. 처음엔 그 악기가 만돌린인 줄 알았다.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맑고, 때론 경쾌하고, 때론 구슬프게 연주되었다. 그것은 12줄의 포르투갈 기타라고 했다. 이름은 ‘기타라’라고 했던가. 나에겐 그 올드맨의 신들린 손가락 연주만 들렸고, 내 마음을 울렸다. 그의 오랜 역사만큼이나 깊은 연주.


그리고 이어 나온 파두를 부르는 가수의 목소리는 나를 홱 낚아채어 첫 파두에 대한 기억으로 끌고 갔다. 그 강렬함 속으로.


나이가 많은, 인생 다 산 것 같은 여인이 무대 한 편에 놓인 의 자에 철퍼덕 앉아 있다. 다리를 벌린 채 축 늘어져 앉아서 노래를 시작했다. 첫 음에 깜짝 놀랐다. 그 탁한 음성과 틀에 갇히지 않은 노랫가락이 노래 같지 않았다. 한을 토해 내는 것 같았고, 울부짖음 같았다. 마치 서양에서 처음 접한 나의 어린 시절 첫 판소리, 창을 들었을 때의 불편함과 비슷하였다.


그녀는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시를 읊는 것 같이. 슬프고도 처절한 시를 외쳤다. 언어를 몰라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 마음은 알아들은 것 같았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알겠어.’ 하고 대답할 뻔했다.


마음으로 부르는 시, ‘파두’.


나도 누군가의 눈빛에서, 몸짓에서,

한숨에서 그대로 잘 알아듣고 대답하고 싶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알겠어.”라고.



너의 이야기를 들어 줄게 <포르투갈 파두 공연의 악기 '기타라'>

종이에 펜



먼 나라의 바닷가에서 <포르투갈, 카스카이스 해변에서>

물감들인 도화지에 펜, 콩테, 파스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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