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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샐리 Aug 30. 2020

배워서 남 주자

배우는 자세와 배움의 목표를 생각해본 적 있나요?

다양한 감수성을 가진 아이로 자라나렴


외할아버지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게 한자를 가르치셨다.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인지 후인지 기억이 나질 않지만 나는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을 언제든 쓸 수 있었으며 천자문 노래를 부르며 동네를 누볐다. 한글을 빨리 떼게 되면서 엄마는 동화책을 빨리 떼고, 청소년 도서부터 시집까지 읽을 수 있도록 노력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의 일기장을 꺼내 읽으면 놀라울 정도로 두 분 덕분에 나는 어휘력과 문장력이 꽤 좋았다. 학교를 가기 전에 글에 관련된 것들을 많이 배워서였을까. 유년기에는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고집이 세고, 생각이 많았다.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엄마도 그걸 느끼셨는지 남들과 비슷하게 피아노 학원과 미술학원도 다니며 예술적인 감수성을 키울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셨다. 아쉽게도 엄마의 바람과는 다르게 오랫동안 배웠어도 흥미를 가지진 못했다. 피아노는 동일한 것을 여러 번 연습하는 것이 싫었고, 콩쿠르를 나가기 위해 한 곡을 반복해 연습하는 것도 불편했다. 그저 콩쿠르 대회에 나가서 예쁜 사진이 찍히는 게 좋았고, 연습할 때마다 손등을 때리는 선생님이 미웠다. 미술학원을 다닐 때는 한 가지 재료로 스케치북을 채우는 게 조금 지루하다고 생각했다. 스케치북에 크레파스와 물감을 섞어서 그림을 그리거나, 입체적인 어떤 사물을 붙여서 표현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 역시 미술 선생님은 달가워하질 않으셨다. 시, 도에서 주최하는 그림 그리기 대회에서는 늘 특별상을 받았고 시간이 지나며 흥미를 잃었다.


당시 엄마는 독서 클럽을 운영하고 계셨기에 독서 클럽을 하며 서너 살 위의 언니, 오빠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마련해주셨다. 교훈을 주는 책을 읽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논리적인 글을 쓰는 것을 반복했는데 나는 책 읽기 외에 논리적으로 말하기를 굉장히 어려워했다. 그래서 이야기하는 시간엔 괜히 화장실을 들락날락하고 글을 쓸 땐 글씨를 크게 썼다. 예쁘장한 외모에 목소리가 큰 편이었기에 웅변대회에 나가보자는 이야기를 권하셨지만 나는 늘 도망 다니기 일쑤였다.


뭔가를 배우는 것보다 주니어 네이버의 동물농장이 재밌었고, 온갖 플래시 게임이 재밌었다. 책 읽는 것도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어 쌓아만 놨다. 뒤에서 동생이 삼국지를 읽건 말건 나는 조용히 알아서 놀았다. 그럼에도 나는 책을 많이 읽었고, 이것저것 배우기도 했으며, 간간히 상도 받는 엄마의 자랑거리였기에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거 해볼래요, 해보고 싶어요


그렇게 나는 뭔가를 가르치기 정말 어려운 아이로 자리 잡아가고 있었다. 학교 공부는 잘했느냐 하면 교외 활동하는 것과 비슷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학의 정석 맨 앞만 들입다 공부하는 그런 아이였다. 빠르게 관심을 가지고, 빠르게 식는 것을 반복하며 자라났다. 이 세상은 배울 것이 천지였고 나는 세상의 어린아이로서 다양한 배움을 접해가고 있었다.


와중에 해외에 살고 계시던 이모는 뜬금없이 나를 연기자로 키워보자 엄마를 설득했다. 다만 끼가 없으니 끼를 만들 수 있는 계기를 만들자며 활발함을 키울 수 있도록 댄스학원을 보내보자 합의하셨다. 그래서 갑작스레 저녁 8시마다 댄스 학원에 갔다. 그때의 댄스는 테크노와 에어로빅이 큰 축이었고, 힙합이 막 떠오르던 때였다. 나는 방송댄스와 함께 힙합을 배우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거의 몇 년을 내다보신 건지, 하교 후 춤을 추러 가는 애들은 전교에 몇 명 되지도 않았는데 참 유별난 집안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춤을 추는 건 즐거웠다. 막내 포지션으로서 온갖 예쁨은 다 받았으니 어려울 것도 없었다. 고학년에 올라가면서 전문 자격증 반에 들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나이에 자격증을 따서 뭐하나 싶지만 대회나 무대를 뛰려면 필요했던 것 같다. 그래서 엄마한테 본격적으로 배워보겠노라, 200만 원을 투자해달라 조리고 또 졸랐다. 여담이지만 동생도 나와 같은 루트로 엄마에게 요청했으니 딸 2명을 모두 댄스학원에 등록해놓고, 둘 다 자격증을 따도록 해주신 부모님이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연습 일지를 쓰고 안무를 잊지 않도록 배운 건 연습장에 그리고 매일 연습실에 갔다. 자격증을 준비하며 나보다 춤을 잘 추는 어린 친구들을 대거 만났다. 똑같이 연습했지만 나는 틀리고, 그 친구들이 틀리지 않았을 때 너무나도 우울했다. 그동안 해왔던 노력이 모두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자격증을 따고 무대를 준비하게 되면서 더 그런 불안감이 커졌다. 학교도 빠지고 배워온 춤이었는데 센터에서 밀려날 때마다 주변에 같은 팀 친구들이 미워졌다. 집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중학교에 가게 되면서 학원은 그만두게 되었다. 엄마는 공부에 집중해야 해서 그만두라고 말씀하셨지만 사실 나는 엄마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어도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싶었다. 배워보고 싶다고 한 것도 나였고, 그만둔 것도 나였다. 나는 춤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정확히는 춤을 춰서 주목을 받는 걸 좋아했다는 걸 깨달았다.



배우는 것만큼 중요한 건 '배우는 자세'


누구나 그렇듯 중고등학교 때는 학업 외에 딱히 배울만한 거리가 없었다. 춤을 포기했다는 생각에 다른 취미를 가질 엄두도 못 냈다. 그냥 평범하게 다양한 학문을 배우며 내가 잘하는 게 무엇인지 찾아 문과를 갈지 이과를 갈지 선택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 학교에서의 나는 선생님 말씀을 굉장히 잘 드는 아이였지만 수업 중간에 무슨 상상력이 그렇게 펼쳐졌는지 통 수업에 집중을 하질 못했다. 


교과서는 책과 달리 술술 읽히지도 않았고, 모두 외워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을 많이 가졌다. 좋아하는 국어와 예체능 과목 외에는 크게 흥미를 가지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공부에 흥미를 잃었다. 300여 명 정도의 아이들 중 100~150등을 왔다 갔다 하는 아주 평범한 아이였다. 문, 이과는 고민할 것도 없이 문과를 택했다. 책 읽는 것과 감성적인 글쓰기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뭘 배운다는 것보다 내가 잘하는 것에 집중했다.


다행히도 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공부에 조금 더 흥미를 갖게 되었다. 나와는 달리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은 생각보다 자신의 지식을 나눠주는 것에 관대했다. 그 친구들은 빼곡하게 필기가 되어있는 교과서를 빌려주기도 하고, 모르는 수학 문제를 알려주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잘 모르는 영역은 직접 설명해주기도 했다. 한 친구는 가르쳐주면서 한 번 더 되새기게 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샌가 그 부분은 모두 마스터하게 된다며 더 많이 물어봐달라고 내게 말했다.


처음에는 그 친구들에게 끊임없이 물어보며 그 친구들을 그대로 따라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이 친구들과 나의 차이를 느끼게 됐다. 나는 왜 이 친구들처럼 내가 가진 것들을 나눠주지 못하고 나만 알고자 하는 걸까. 한 번도 내 것을 누군가에게 흔쾌히 준 적이 없어 찝찝한 마음이 들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나, 도덕 시간이 끝나면 다 같이 "배워서 남주자"라고 외친 뒤 박수를 치며 수업을 끝내시던 선생님이 계셨다. 그 선생님이 아이들을 야단칠 때 하셨던 말도 꽤 인상 깊게 남았는데 "너는 많이 알지만 헛똑똑이구나"를 반 전체가 외치게 하셨다. 나는 헛똑똑이가 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누군가를 시기하고 질투하며 내가 아는 것은 나만 알기 바라는 아이로 자랐다. 도덕 선생님이 꿈꾸셨던 대로 배워서 남주는 생활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배워서 남주자


고등학교를 거치며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배우는 자세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렇게 배워서 남주자는 생각을 새기며 20대를 맞이했건만 대학교 때도 배워서 남주는 일은 많지 않았다. 수많은 조별과제를 겪으며 더 내 손아귀에 움켜쥐는 것만 치열하게 생각했다. 복수전공을 하면서 나와 같이 복수전공을 하는 친구들에게 꽤 많이 베풀었지만 베풀수록 손해 보는 느낌이 들었다. 다들 "배워서 남주자"와 어긋나게 행동하는데 나도 비슷하게 행동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자기 합리화를 하며 누군가가 따라오지 못하면 내가 조금 더 잘할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어갔던 것 같다. 그 덕에 대외활동이든 학업이든 좋은 성과를 내긴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너는 많이 알지만 헛똑똑이구나"가 맺혔다. 그래도 표면으로 문제가 보이거나 하진 않았으니 그런대로 넘어갔다.


첫 회사에 들어갔는데 팀엔 모두 나 같은 사람들만 있었다. 심지어 들어오자마자 묵혀있던 팀 내 갈등이 폭발해 회사 소셜 담당자가 3명에서 1명으로 줄게 됐다. 그 1명이 입사한 지 1달 반 되었던 나였다. 다행히 나는 찾아보는 습관이 있어서 업무를 해나갈 수는 있었지만 초반 6개월은 너무 어려웠다. 일은 매일 해야 하는 것으로 리포트를 쓰듯 이런저런 자료들을 모아놓는 시간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새로운 사람들은 들어왔다가 강한 업무강도와 잡혀있지 않은 체계 때문에 순식간에 나갔다. 그 와중에 어쨌든 업무를 이어나가며 불안정한 상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싶었다.


영향력 없는 스태프 조직의 마케터 샐리는 1년 간 사내외로 소셜 관련 문의가 들어오면 컨설팅을 자처했고,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요즘 각 SNS에서 어떤 유행이 있는지 주간 리포트를 발행했다. 내가 아는 것을 다른 에디터들이 알고 있어야 서로 시너지가 났기 때문에 리포트는 퇴사하기 전까지 발행했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채널 론칭을 할 때 내가 상당 부분을 일조하거나 내가 아는 내용이 각 에디터들에게 도움이 되었을 때 큰 즐거움을 느꼈다. 첫 의도는 "내 업무가 편하려고" 였지만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배워서 남주는 행동"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남에게 공유하는 건 생각보다 뿌듯한 일이었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문서들이지만 그때는 갤러리가 온통 캡처일 정도로 정말 열정적이었다



이해하고 공유하는 건 정말 어려워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배우고 싶어 사이드 프로젝트를 계속 해오다가 공간을 운영할 기회가 생겼다. 그 공간에서 어떤 모임을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각자가 알고 있는 사실을 공유하는 사례 분석 및 공유 스터디를 열어보기로 했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요즘 뜨는 이야기'에 집중하여 여러 사람들의 견해를 나누는 자리를 콘셉트로 잡고 스터디를 시작했다.


내가 이 업계의 저명한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업력이 대단한 사람도 아니었던 지라 스터디에 참여할 사람들을 모으는 게 쉽지 않았다. 더 군마다 정말 '스터디'를 하는 모임이라고 하니 '함께 알자'는 취지와는 무색하게  사람들이 리포트를 공유해달라고 할 뿐 실제로 참석하겠다 한 사람이 많지 않았다. 문득 대학교 때 조별과제를 하며 느꼈던 시선들이 떠올랐고, 이 스터디를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깊이 고민했다.


결론적으로 스터디는 9회 차까지 진행했을 정도로 나쁘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자발적으로 참여해주신 분들 대다수가 계속해서 참석해주시는 게 참 고마웠는데 스터디가 끝나고 스터디의 피드백을 받을 때 "실무에서 보고 들은 걸 직접 말할 수 있어서 너무 좋은 시간이었다"라는 내용의 코멘트가 쏟아질 때 희열을 느꼈다. 그리고 배워서 남주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다니 새삼스레 놀라웠다. 특히 그런 이야기를 하신 분들이 전문성을 충분히 가지신 분들이었기에 매 회의 스터디가 끝날 때마다 겸손함을 가지게 됐다. 여러모로 좋은 배움이었다.



아는 선까지는 공유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동안 사회생활을 하면서 손윗사람만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손아랫사람이 내 생활에 등장하더니 급기야 나와 5~6살 차이 나는 사람들을 만날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배우는 것에 있어 겸손하자는 생각을 가졌었지만 완벽하게 다른 사고를 받아들이긴 어려웠다. 대화가 끝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받아들일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나눠보았는데 어떤 기준으로 나눠야 할지 도통 감이 오질 않았다. 하루 반나절이 지나고 나서 일단 듣는 연습을 하고 빠른 물살에 익숙해져 보기로 했다. 겸손함을 전제로 두고 행동하는 게 필요했다.


부모님 품에서 생활하면서 배워야 하는 것들은 10대가 끝날 때까지 배워왔지만 홀로 서는 방법은 20대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이때 배우는 자세와 배움의 의미를 곱씹지 않으면 정말 '홀로 서질 수' 있다. 겸손한 마음으로 어떤 것을 받아들이고, 받아들인 것을 공유할 때 그 사람이 더욱 빛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여러모로 부족한 사람이지만 아는 영역에 있어서는 주변 지인들과 최대한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내가 아는 게 많지 않을뿐더러 아는 것들이 정리가 되지 않아 뒤죽박죽이라는 문제가 있었는데 그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올여름부터 출퇴근길에 내가 아는 것과 보고 들은 것을 정리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어느덧 30번째 내용을 정리하고 있는데 정리를 할수록 그동안 체득해온 것들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지속하다 보면 나도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되겠지. 누군가 내게 도움을 요청한다면 혹은 나에게 뭔가를 배우고 싶어 한다면 아는 선까지는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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