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샐리 Sep 06. 2020

어느 날의 면접

20년의 여름, 면접을 보러 다니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몇 번의 면접을 봤을까. 첫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3곳 정도에 지원했고, 두 번째 회사에 가기 위해 4곳 정도, 세 번째 회사에 가기 위해 5곳 정도를 봤고, 네 번째 회사를 가기 위해 4곳을 봤으니 16곳의 회사와 긴 면담을 해왔던 것 같다. 어떤 면접은 잔뜩 긴장해서 임했고, 어떤 면접은 편히 가서 실컷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과는 천차만별이었지만 면접을 보며 이 회사와 내가 얼마나 잘 맞을 것인지, 내가 이 회사에서 무슨 일을 해낼 수 있을지, 그동안의 내 커리어와 이 직무가 얼마나 잘 맞는지에 대해 기민하게 확인하고, 잘 알지 못하는 회사의 사업 이야기를 들으며 새로운 산업군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동시에 이 회사에 가고 싶은지를 생각하며 회의실의 문을 닫았던 것 같다.


면접이 끝나면 왠지 모르는 공허함에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책 또는 칼럼을 읽거나 경력 기술서 등을 작성하며 내 인생을 돌아보는 일은 해보았지만, 한 번도 이야기를 나눠보지 못한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서 나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과연 내가 솔직했는가, 솔직하지 못했다면 왜 솔직하지 못했는가 등을 생각하다 보면 '내가 왜 퇴사를 결심했지' 또는 '내가 왜 이직을 결심했지' 하는 생각이 도달하게 된다. 그때부터 다음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코로나가 모든 사람들을 힘들게 했던 여름, 모두가 일자리가 없다고 난리였지만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회사에 들어온 지 1년 하고 1개월, 이 일을 선택한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회사를 다니면 다닐수록 밤늦게까지 일과 나에 대한 의구심이 지속되어 불면증으로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해보지 않은 일, 맞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려니 자존감이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경력 기술서를 다시금 작성해봤다. 그동안 내가 이 회사에서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성과를 냈는지 알 수 있는 근거자료였다. 한 달 여 시간에 걸쳐 정리를 끝냈을 때는 단 10줄이 남았다. 10줄 이상을 더 확보하느냐, 새로운 10줄을 채워가느냐의 기로에서 회사를 퇴사할 이유를 찾기보다 내 커리어와 나에 대해 궁금해할 사람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면접의 시작이었다.



어떤 회사에 출사표를 던져야 할까


면접을 보는 시기, 주관이 없으면 끝도 없이 힘들어지는 때가 온다. 예를 들어 내가 가고 싶은 곳들을 리스트업 해서 그 회사에 모두 서류를 넣는다고 했을 때, 그 가고 싶은 '곳'이 단순 '회사 차원'이라면 그 회사에서 원하는 직무와 내가 해온 직무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 경우 회사는 '도전하는 게 대단하다 패기로 한 번 붙여볼까'와 '얘는 대체 뭐람'으로 나뉘는데 서류를 넣는 데 있어 주관이 없다면 대체로 2번째 평가가 연속되었을 때 나락으로 빠진다. 그래서 그동안 내가 해온 일과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필요하다.


두 번째 회사를 정리하고 이직을 하고자 했을 때 나는 5년 차로서 어느 정도 일머리는 생겼고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래서 인하우스 디지털 마케터가-물론 올라운더로서 안 해본 것은 없었다- 오프라인 마케팅 대행사에도 서류를 내보고, 종합 광고대행사와 매체 운영 대행사에도 서류를 냈었다. 당연히 떨어지겠지 하며 서류를 냈지만 면접을 보고 그다음 면접까지 볼 기회가 생기니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어 나 혹시 이런 재능도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생각지도 못하게 마음을 졸였다. 결과는 당연히 불합격이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깊이 고민해보지 않고 '시도'를 했던 게 화근이었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정리해보지 않은 것도 한 몫했다. 그제야 나에 대해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까지 어떤 업무를 해왔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정리했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지만 해보지 않은 업무가 무엇일지 생각해보고 현 직장에서 그 업무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 저녁 7시까지의 워킹타임에는 기존의 업무를 했다면, 7시부터 새벽까지는 오프라인 행사를 기획했다. -당시 나는 왜 이렇게 오프라인에 목을 매고 있었을까- 그렇게 해서 이 일이 정말 하고 싶은지를 몸소 깨달았다. 그 기간을 거치며 탐색의 과정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경력 기술서와 자기소개서를 수도 없이 고쳐가며 나의 진짜 의도를 담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회사가 나를 보는 시선


면접에 줄줄이 떨어졌을 때 낙방한 내게 한 선배가 이 이야기를 해줬다.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뽑을 때 그 사람이 동그라미 건 세모 건 네모 건 별이건 상관없이 같은 색인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라면, 경력사원을 뽑을 때는 그 동일한 색의 도형을 하나의 실로 묶어 가운데 있는 구멍에 잘 들어맞는 사람일지를 본다는 말이었다. 한껏 풀이 죽은 나를 위로하기 위해 해 주신 말이라고 하더라도 너무 감명 깊었다.


처음 회사에 지원을 할 때는 회사는 어떤 사람을 원할 까에 대해 골똘히 고민했었다. 나는 지방대에서 평균 조금 넘는 성적을 가지고 있고, 대외활동을 정말 많이 했지만 인턴 경력은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대표라면 이런 사람을 뽑을까? 생각했을 때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 실무 경험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장 먼저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졸업을 1학기 이상 앞두고 여러 스타트업들에 먼저 서류를 제출했다. 실무경험 1-2년이 내 부족한 점을 채울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결과적으로 아주 좋은 선택이었고, 나는 다음 회사에 입사하기 한결 수월해졌다.


그렇게 처음 회사에 지원하던 마음을 까맣게 잊고 나에 대해서만 집중했으니 당연히 낙방을 할 수밖에. 회사에서 바라는 사람과 나의 업에 대해 함께 생각했다. 그래서 채용 공고의 우대사항과 필수 역량 부분은 눈여겨보며 '세상엔 이런 직업도 있구나'하며 익힐 수 있었다. 동시에 그동안 나를 긍정적으로 봐준 주변 사람들의 조력까지 더해져 계속해서 좋은 깃발을 손에 쥘 수 있었던 것 같다. 회사와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을 함께 느끼기 시작하니 면접에 대한 태도도 일방적인 정보 전달이 아닌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말이 술술 나오거나 진땀이 뻘뻘 흐르거나


면접을 보고 나면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선이 키워진다. 업무적으로 부족한 부분, 더 키워야 하는 부분, 나의 좋은 점을 어떻게 더 발현시킬지 등을 더 생각하고 개발하게 된다. 실제로 면접 이후에 회사에서 일들을 더 열심히 하게 된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면접을 갈 때 '내게 새로움을 가져다줄 수 있는 기회구나' 하는 생각에 최대한 긴장하지 않은 채로 가려고 노력했다. 그렇지만 그동안 내가 해왔던 업무와 회사에서 원하는 업무가 맞지 않을 때는 당연히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엔 '콘텐츠가 좋아 콘텐츠 회사에만 몸담고 싶다'라는 아집을 꺾고 조금 다양한 산업군으로 시선을 돌려보았다. 그동안 해왔던 일들을 토대로 지금까지 만든 내 스토리를 실제 성과로 보여줄 수 있는 곳이 있었으면 했다. 서류를 넣은 대부분의 곳들이 긍정적인 회신을 주셔서 감사하게도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글로벌 방송사, 글로벌 커머스 플랫폼, 여성 의류 플랫폼, 모빌리티 사업을 하는 회사를 다녀왔고 8번 정도의 면접을 보게 되었는데 반은 엄청나게 긴장했고, 반은 재밌게 보고 왔다.


면접 준비를 하느냐 마느냐와는 또 다른 차원의 노력이 필요했다. 그건 바로 대화의 수준이었다. 그 산업이나 직무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었지만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기엔 내 이야깃거리가 흥미롭지 않았다. 깊이감 있는 대화를 이끌어내기 어려웠던 서류는 면접을 어렵게 만들었다. 면접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의 발걸음이 무거웠다.



좋은 면접을 마치고 오는 날엔


이번에 여러 회사에 지원을 하며 인상이 깊게 남은 면접이 있었다. 첫 만남에 4시간 동안 회사의 내부 사정과 앞으로의 나아갈 점, 리더인 본인의 경험까지 소상히 들려주신 분이 계셨는데 그 분과 음식이 식어가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알고 싶어서 첫 대면 미팅을 길게 하게 되었다고 미안하다는 말과 너무 반가운 인연인데 언제부터 출근이 가능한지에 대해 물어보시며 첫 면접이 끝났다. 두 번째 면접은 정말 재미있게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무탈히 통과했다. 제 안주신 모든 조건이 좋았지만 여러 고민 끝에 회사에는 가지 않게 되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처음 미팅을 했던 분께 연락을 드리고 내 결정을 숨김없이 말씀드렸다. 그러고 나서 아래와 같은 연락을 받았는데 그 순간 '아 내가 굉장히 좋은 어른을 만날 기회를 놓쳤구나' 하는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컸다. 나중에 이렇게 회사에 대해 고민하는 후배에게 이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생각했다. 이렇게 좋은 면접은 집에 돌아오는 길 뿐만 아니라 마치는 과정까지 완벽했다.




면접은 나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방법


지금의 회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하고 있는 업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평하며 지내는 것보다 그럴 때마다 내 경력 기술서를 업데이트하며 마음을 다잡는 게 더 효과적이었다. 가뭄에 콩 나듯 한 번씩 치렀던 면접은 그런 내 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면접을 보고 나면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내 마음가짐, 생각 그리고 행동까지. 그렇게 나는 면접을 통해 겸손함과 성실함을 계속해서 다듬어나갈 수 있었다.


일에서만 면접이 있으랴. 앞으로 살면서 수많은 관문에서 면접을 볼 텐데 그때마다 면접에 실패했다고 낙담하기보다 면접을 통해 나를 살피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지만 이와는 별개로 면접이 완료됐을 때의 결정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안하고 고민이 많다. 내가 선택한 도전에 조금 더 어깨 펴고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이길 바라며 그간의 면접 경험을 되짚어본다.

작가의 이전글 배워서 남 주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