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퍼니 포인트 (1) 협업은 필수! 거절은 선택!
나는 회사에서 마케팅 기획 업무를 주로 하고 있다. 마케팅팀이 해야 하는 일은 회사나 조직의 크기에 따라 그 범위가 다르지만 변함없이 똑같이 적용되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협업'이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론칭하려면 기본적으로 내 기획을 가시화해줄 디자이너와 함께 업무를 진행하여야 하고, 기획을 토대로 서비스 기획자, 개발자와 협업을 하며 내 기획안을 실현시키기 위한 업무를 하게 된다. 이 뿐만 아니라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알리기 위해서는 영상 제작자, 홍보 담당자와의 협업도 거쳐야 하고 때에 따라 대행사와의 협업까지 모두 진행해야 하나의 프로젝트가 완성될 수 있다.
프로젝트를 리딩 하는 과정에서 멋진 일만 가득하면 정말 좋겠지만 조율이라는 큰 산을 넘기 위해서는 수많은 고통이 수반된다. 조율, 이 멋진 단어의 이면엔 치열한 슬랙 내의 다툼과 마음을 풀자며 함께 마시는 커피타임 등이 숨겨져 있다. 이때 감정을 쏟는 게 하수고, 에너지를 쏟는 게 고수다. 예전의 나는 감정과 에너지를 모두 쏟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엔 누군가 '이 일을 못하겠어요'라고 하는 게 너무나도 싫은 나머지 하루의 절반 이상을 의견 나눔이자 다툼으로 보낸 적도 있었다. 그저 내 프로젝트가 잘 되었으면 했고, 사람들이 열정이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조율에 자신이 없었던 나는 함께하는 사람들을 믿지 않기 시작했다. 해야 하는 일이 생겼을 때 조금 더 내가 끌어안으면 내 프로젝트가 더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일을 하나둘 씩 자진해서 맡았다. 동시에 협업하는 사람들이 조금 더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일을 하면 티가 나는 큼직한 일들을 뚝 떼어줬다. 그렇게 일을 해도 어쨌든 굴러가긴 했다. 막상 내가 하는 일은 스케줄링과 잔업들 뿐이었기 때문에 내 일에 대한 동기부여와 에너지가 점점 줄어들었다는 문제가 생기긴 했지만 어쨌든 프로젝트는 흘러갈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진행해야 하는 프로젝트 외에도 디자인팀에 맡기기 어려운 크고 작은 수정부터 인사팀에서 복잡해하는 인턴사원 채용과 온보딩도 담당했고 사업부가 진행하는 업무의 운영도 맡게 되었다. 처음엔 '내가 언제 또 이런 일들을 해보겠어'라는 마음으로 일에 대한 기쁨을 찾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없어도 이 프로젝트는 잘 진행되겠지, 내가 하는 일은 뭘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서는 다음에 어떻게 새롭게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보다 나는 과연 필요한 존재인가 대한 고민을 하느라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내 속은 곪아가고 있었지만 나와 협업을 해 본 사람들은 나와의 협업을 좋아했다. 무리하게 요청해도 다 들어준다는 특징이 생기니 이런저런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매일 작성하는 플래너에는 갑작스레 닥쳐온 일이 수두룩했고 업무 시간엔 요청 업무와 잔업을 하느라 실제로 해야 하는 큰 덩어리의 일들은 야근을 하며 진행하곤 했다. 플래너 한 바닥을 가득 채운 To do list 중 완료 체크한 게 몇 개인지 세며 퇴근했다. 체크는 많았지만 큰 업무들은 다음날, 그다음 날이 지나도 해결이 되지 않았다. To do list 사이에는 아래와 같은 문장들이 등장하게 됐다.
의욕에서 시작한 일이 숱한 업무 레이스 끝에 에너지와 자존감 방전을 만들어냈고, 번아웃에서 다시 의욕 상태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동기부여하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세 가지를 깨닫게 되었다.
나는 누군가의 눈밖에 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기에 거절을 잘하는 사람이 될 수도 없어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티를 내지 않고 내 일을 관리하는 법을 정리해야 했다. '학교에서도 시간표를 짜는데 회사에서도 시간표를 짜 보면 어떨까?' 이 생각에서 플래너에 적던 To do list를 정리했다. 기존에는 들어오는 일을 빼곡하게 적었다면 이번엔 순위를 조금 나눠보았다. 꼭 해야 하는 일과 갑작스레 하게 된 일 중 우선순위를 정해 업무를 진행하면서도 스스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구조로 플래너의 여백을 채웠다.
오늘 꼭 해야 하는 일은 급한 일부터 차례로 적고 캘린더에 타임 블락을 걸었다. 여기서 파란 삼각형 안에 있는 일을 다 해냈을 때 나에게 '오늘 하루 꽤 괜찮았군'이라고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네기로 했다. 조율의 과정에서 내게 넘어오게 되는 잔업은 급박함에 따라 삼각형 안에 넣기도, 빼기도 했다. 이렇게 플래너를 작성하다 보니 또 새롭게 3가지를 얻게 됐다.
나처럼 거절이 두려운 사람이 있다면 슬롯을 한 번 적어보며 하루를 시작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조금 더 즐겁고 효과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오늘의 포인트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