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샐리 Sep 13. 2020

거절을 잘 못해서 걱정이에요

컴퍼니 포인트 (1) 협업은 필수! 거절은 선택!

나는 회사에서 마케팅 기획 업무를 주로 하고 있다. 마케팅팀이 해야 하는 일은 회사나 조직의 크기에 따라 그 범위가 다르지만 변함없이 똑같이 적용되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협업'이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론칭하려면 기본적으로 내 기획을 가시화해줄 디자이너와 함께 업무를 진행하여야 하고, 기획을 토대로 서비스 기획자, 개발자와 협업을 하며 내 기획안을 실현시키기 위한 업무를 하게 된다. 이 뿐만 아니라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알리기 위해서는 영상 제작자, 홍보 담당자와의 협업도 거쳐야 하고 때에 따라 대행사와의 협업까지 모두 진행해야 하나의 프로젝트가 완성될 수 있다.


프로젝트를 리딩 하는 과정에서 멋진 일만 가득하면 정말 좋겠지만 조율이라는 큰 산을 넘기 위해서는 수많은 고통이 수반된다. 조율, 이 멋진 단어의 이면엔 치열한 슬랙 내의 다툼과 마음을 풀자며 함께 마시는 커피타임 등이 숨겨져 있다. 이때 감정을 쏟는 게 하수고, 에너지를 쏟는 게 고수다. 예전의 나는 감정과 에너지를 모두 쏟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엔 누군가 '이 일을 못하겠어요'라고 하는 게 너무나도 싫은 나머지 하루의 절반 이상을 의견 나눔이자 다툼으로 보낸 적도 있었다. 그저 내 프로젝트가 잘 되었으면 했고, 사람들이 열정이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했다. 


조율을 못하니 일을 떠맡는 수밖에


조율에 자신이 없었던 나는 함께하는 사람들을 믿지 않기 시작했다. 해야 하는 일이 생겼을 때 조금 더 내가 끌어안으면 내 프로젝트가 더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일을 하나둘 씩 자진해서 맡았다. 동시에 협업하는 사람들이 조금 더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일을 하면 티가 나는 큼직한 일들을 뚝 떼어줬다. 그렇게 일을 해도 어쨌든 굴러가긴 했다. 막상 내가 하는 일은 스케줄링과 잔업들 뿐이었기 때문에 내 일에 대한 동기부여와 에너지가 점점 줄어들었다는 문제가 생기긴 했지만 어쨌든 프로젝트는 흘러갈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진행해야 하는 프로젝트 외에도 디자인팀에 맡기기 어려운 크고 작은 수정부터 인사팀에서 복잡해하는 인턴사원 채용과 온보딩도 담당했고 사업부가 진행하는 업무의 운영도 맡게 되었다. 처음엔 '내가 언제 또 이런 일들을 해보겠어'라는 마음으로 일에 대한 기쁨을 찾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없어도 이 프로젝트는 잘 진행되겠지, 내가 하는 일은 뭘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서는 다음에 어떻게 새롭게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보다 나는 과연 필요한 존재인가 대한 고민을 하느라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내 속은 곪아가고 있었지만 나와 협업을 해 본 사람들은 나와의 협업을 좋아했다. 무리하게 요청해도 다 들어준다는 특징이 생기니 이런저런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매일 작성하는 플래너에는 갑작스레 닥쳐온 일이 수두룩했고 업무 시간엔 요청 업무와 잔업을 하느라 실제로 해야 하는 큰 덩어리의 일들은 야근을 하며 진행하곤 했다. 플래너 한 바닥을 가득 채운 To do list 중 완료 체크한 게 몇 개인지 세며 퇴근했다. 체크는 많았지만 큰 업무들은 다음날, 그다음 날이 지나도 해결이 되지 않았다. To do list 사이에는 아래와 같은 문장들이 등장하게 됐다.


할 일은 희망차게 파란색, 속마음은 빨간색 펜으로


의욕에서 시작한 일이 숱한 업무 레이스 끝에 에너지와 자존감 방전을 만들어냈고, 번아웃에서 다시 의욕 상태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동기부여하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세 가지를 깨닫게 되었다. 



나는 누군가의 눈밖에 나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기에 거절을 잘하는 사람이 될 수도 없어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티를 내지 않고 내 일을 관리하는 법을 정리해야 했다. '학교에서도 시간표를 짜는데 회사에서도 시간표를 짜 보면 어떨까?' 이 생각에서 플래너에 적던 To do list를 정리했다. 기존에는 들어오는 일을 빼곡하게 적었다면 이번엔 순위를 조금 나눠보았다. 꼭 해야 하는 일과 갑작스레 하게 된 일 중 우선순위를 정해 업무를 진행하면서도 스스로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구조로 플래너의 여백을 채웠다.


보통 아침에 출근하면 해야 할 일을 적었다


오늘 꼭 해야 하는 일은 급한 일부터 차례로 적고 캘린더에 타임 블락을 걸었다. 여기서 파란 삼각형 안에 있는 일을 다 해냈을 때 나에게 '오늘 하루 꽤 괜찮았군'이라고 심심한 위로의 말을 건네기로 했다. 조율의 과정에서 내게 넘어오게 되는 잔업은 급박함에 따라 삼각형 안에 넣기도, 빼기도 했다. 이렇게 플래너를 작성하다 보니 또 새롭게 3가지를 얻게 됐다.


나처럼 거절이 두려운 사람이 있다면 슬롯을 한 번 적어보며 하루를 시작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조금 더 즐겁고 효과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오늘의 포인트를 남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