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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한 번 하는 숙제

비오는 날엔 냉장고청소지.

by 예정

아침에 집을 나서는 길에 새소리들이 들려온다.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도로를 지나는 자동차 소리나 도시의 소음에는 자유롭겠지만

저 아름다운 새소리를 들을 수 없겠지.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 차올랐다.

너무 아름다운 것을 보면 눈물이 날 수도 있다는데..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이 박자와 리듬이 달라, 은은한 종소리 같기도 하고 경쾌한 합주 같기도 하다.

그저 신기하고도 좋아서 마음이 뭉클했다.


연일 비가 내려서 하천의 물소리가 크게 들린다.

비가 오는 날은 상대적으로 손님이 많지 않아서, 가게 문을 열고 청소하는 것도 여유롭게 한다.

재료준비를 해놓고도 여유시간이 생기니 냉장고 청소를 한다.

우리 매장 업소용 대형 냉장고는 주문 때마다 재료를 꺼냈다 넣었다, 열고 닫는 일이 잦아(주로 냉동고) 자주 성에가 낀다.

연식이 오래되어서 고무패킹이 망가지고 헐거워져서 문이 잘 안 닫힐 때도 있다.

한 달의 한 번 정도 청소를 하는데, 성에를 방치하면 온갖 용기 위에 눈이 내릴 정도라서 안 할 수가 없다.

매번 냉동실 안이 ‘설국’이 되면, 때가 되었다고.. 울며 겨자먹기처럼 청소할 일정을 잡곤 한다.

이번 주 수~금요일 매일 7대의 냉장고를 하나씩 맡아서 청소를 했다.

재료를 옮기고 비워서, 얼음을 녹이고, 내부를 씻고 닦아내고 말린 다음, 온도를 내려가길 기다렸다가 재료를 다시 정리해서 넣고..

번잡하고 고될 때도 있지만 청소한 후 냉동실의 능력이 향상된 것 같으면 뿌듯하고 보람되기는 하다.

오늘로써 모든 냉장고 청소를 끝내고 나니, 또 이번 달 숙제를 다한 기분이다. 조금은 홀가분하면서도 피곤해지는 상태.

하기 전까지는 하기 싫어서 뒤로 미루고 싶지만, 어차피 해야 할 일인걸. 마음먹고 시작하고 몸을 움직이면 된다.


집에 돌아가는 길, 비가 주룩주룩 쏟아졌다.

아침에 들은 새소리는 빗소리에 가려져 들리지 않지만,

찰방찰방 발걸음 따라 박수치는 물소리들이 나를 적신다.

오늘의 노동으로 고단해진 몸을 쉬게 할 집이 기다린다.

가면 또 밥하고, 치우고 집안일도 해야겠지만..

돌아갈 집, 함께하는 가족들이 있어서

살아갈 이유들이 참 많아서 감사하다고 고백하는 날이다.



제법 하트가 나온 카페라떼..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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