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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캄JoyCalm May 05. 2024

공금 사용에 대한 '까다로움'. 내가 너무 소심한 걸까

남의 돈을 쓰는 것에 대한 조심스러움

올해 공적인 조직에서 공금을 관리하는 소임을 맡게 되었다. 보수는 없다. 그냥 사명으로 수행하는 직책이다. 재정을 관리하는 입장이 되어보니 조직의 세세한 부분에 관여가 아닌 관여를 하게 된다. 조직이 운영되려면 비용 집행이 수행되는데 이때 명확한 사유가 있어야 하고 정당하게 사용한 영수증이 첨부되어야 한다. 하다못해 10원 100원 단위까지 밝혀서 비용이 올바르게 사용되었음을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한마디로 공금의 비용집행에 '까다로움'이라는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얼마 전에 어느 팀장님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기 위해 KTX예약을 요청해 왔다. 행사일정이 아직 20여 일 남았지만 국민들의 이동이 많은 날씨 좋은 5월이다 보니 인기 있는 이동시간 차표는 이미 '예약대기' 상태였다. 그런데 그 팀장님이 필요한 시간은 바로 그 '예약대기' 상태의 차표였고, 그는 '예약대기' 차표와 현재 좌석지정이 가능한 바로 다음시간 열차도 같이 구매해 놓기를 바랐다.


그런데 여기서 공금집행자로서의 고뇌(?)가 생겨났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차표 두 개를 발권하고, 필요하지 않은 것은 나중에 취소하면 되는 거였다. 사실, 개인적으로 차표를 예매할 때 그렇게 한다. 수수료가 얼마가 나가든 전~~ 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런데  공금은 달랐다. 차표 두 개를 구매했다가, 하나를 취소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취소 수수료 500원 정도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러면 수수료에 대한 영수증 처리를 해야 한다. 이것을 실제로 처리하는 사람은 <차표 두 번 결재-차표 하나  취소-수수료 지급-영수증 첨부-수수료에 대한 사유서 작성-내부 승인요청> 등을 진행해야 한다. 공금을 관리하고 있는 나로서는 실제 일을 진행하는 스태프의 추가적인 일손도 생각해야 하고 수수료 500원에 대한 이유도 고민해야 한다.

출처:Pixabay|Sergil Koviarov

회원들이 납입하는 3만 원 5만 원을 모아 운영되는 공적 조직은 대체로 년 초에는 비용집행을 위한 사업계획을 세우고, 회원들을 대표해서 내부 이사진들이 모여 그 사업과 예산이 합당함을 논의한다. 그리고 연말이 되면 회비가 정당하게 집행이 되었는지, 년간 살림이 어떠했는지 재무 보고를 한다. 나는 공금을 관리하는 자로서 투명하게 집행해야 하기에 비용사용 하나하나에 말 그대로 '신경을 쓴다'.  물론 소소한 비용지출을 과감히 허용해야 할 때도 있겠지만 오늘은 공금사용을 관리하는 입장에서 생각해본다.


이런 내가 너무 소심한 걸까... 하는 '자기-검열'도 일어난다. ㅠ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공금 사용은 이렇게 고민하면서 내 개인 돈을 쓸 때는 이렇게까지 까다로움을 적용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이 일어났다. 여러 기업에 명상교육을 수행하기 위해 지방으로 이동할 때가 많다. 이때 교통비를 개인 돈으로 지불하게 되는데, 100원 200원 수수료 '따위'는 생각하지 않는다. 때로는 예약-취소-예약-취소를 반복하다가 수수료가 2,000원을 넘길 때도 있다. 어떤 날에는 이동 시간 확정을 못해서 차표 두세 개 예약했다가 하나를 취소 못해서 5만 원을 그냥 날린 적도 있다. 말 그대로 생각 없이 막... 쓴다.


공금 사용에 대한 '까다로움'을 생각하다가 내 돈을 사용할 때도 공금처럼 '까다로움'의 기준을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돌아보게 된다.  공금처리를 위한 세부일을 처리하는 스태프의 일손에 대한 번거로움을 염려하듯이 나 개인적인 일처리에서 내 행동의 가성비도 돌아보게 된다. 공금을 다루듯 푼돈이라 여겼던 내 돈도 소중히 다루고 싶어졌다. 남의 돈을 조심스럽게 다루듯, 내 돈도 세밀하게 다루고 싶어졌다. 공금 처리를 수행하는 스태프의 일손의 번거로움을 염려하듯, 일을 할 때 집중을 가로막아 가성비 떨어뜨리는 불필요한 행동들을 소거하고 싶다는 마음이 크게 일어난다.  

출처:pixabay:Harry Strauss

아무튼 공금 관리는 까다롭고 어렵다... 때로는 내가 이것을 왜 하나...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좋아하지도 않고 익숙하지도 않은 일을 선택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기에 여기에서 배움을 길어 올리려고 '애를 쓴다'.  오늘의 배움은 공금사용에 대한 나의 예민함과 까다로움을 본 것과, 그것을 내 개인의 삶에 적용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거다. 이렇게 하는 것이 나 자신을 피곤하게 할지라도 뭔가  밥알을 꼭꼭 씹어 먹으며 사는 느낌이 들 것 같다. 돌이켜 보니, 20대에는 그렇게 살았었다. 촘촘하게 계획해서 돈을 쓰고,  꼼꼼하게 관리하고, 차곡히 모아 투자은행에서 투자해서 짭짤한 수익도 있었다. 그 자질을 30년 만에 다시 일으켜본다. 인생 중반을 넘기고 후반기를 맞이하는 지금, 20대에 가졌던 마음자질을 불러내어 새로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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