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 초보자의 비애
훈스 탁구장에서 탁구레슨을 시작한 지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아직도 자세를 배우느라 힘들다. 일단 정면을 향해 몸의 중심을 잡고 오른쪽으로 허리만 돌려 가볍게 탁구채를 쭉 밀어내듯 공을 친다.
1. 아랫배에 힘을 주고 무릎을 가볍게 구부린다.
2. 두 팔을 L 자로 만든 후 한데 모아 함께 움직인다.
3. 공을 맞추려고 하지 말고 쭉 밀어내듯이 친다.
4. 어깨에 힘을 뺀다.
우선 1번 아랫배에 힘주기부터 문제다. 그동안 내 배에는 힘이 들어갔던 적이 없었다. 2번 팔동작은 더 가관인 것이 두 팔은 공을 쫓아가면서 모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벌어지기 일쑤다. '두 팔 벌~~~ 려!'처럼.
3번은 마음을 비워야 가능한데 그게 힘들다. 날아오는 공만 보면 이놈의 공을 쳐서 넘기려는 의욕이 앞서 자세고 뭐고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다. 이중 가장 문제는 어깨에 자꾸 힘이 들어간다는 것인데...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힘주라는 아랫배에는 안 들어가는 힘이 왜 어깨에는 자꾸 들어가는지... 가벼운 탁구채를 그렇게 꽉 잡을 일인가. 온통 경직되어 있을 내 자세를 상상해 보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나는 원체가 춤동작을 배울 때도 체조 동작을 하듯 딱딱하게 움직였으니까. 뭔가 로봇 같달까.
몸에서 힘을 빼야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동작이 나올텐 데 말이다.
코치샘은 친절하다. 무려 수석코치~ㄷㄷㄷ. 나에게 재능낭비 하고 계시다. 20분 레슨 시간 동안 줄곧
'어깨에 힘 빼시고'
'두 팔을 모아 주시고'
'쭉 끝까지 밀어주세요'라는 말만 무한반복하게 만드는 나란 사람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지금은 연락이 끊어진 친구가 있다. 이름은 권수현. 공부도 잘하고 재능도 많은 친구였다. 특히 피아노를 정말 잘 쳤는데, 초등 5학년때 피아노학원에서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치는 모습에 그만 넋을 잃고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고1 때 우연히 같은 반에 같이 짝이 되어 친해졌다.
수현이는 키가 170이 넘었고 난 160이 안되는데 무려 10센티 이상의 키차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짝이 되었는지 너무나 신기한 일이다.
나의 모교는 삼성고등학교. 여기서 삼성은 세명의 성인이라는 뜻이므로 다른 오해는 없길 바란다~ㅎ
서울대학교에서 물리적 위치상 제일 가까운 고등학교였다. 덕분에 최루탄 냄새도 많이 맡았다. 선생님들의 70% 이상이 서울대 출신이셨다. 믿거나 말거나.
고1 담임선생님은 서울대 영교과를 졸업하시고 우리 학교에 막 부임하신 젊디 젊은 분이셨다. 새 학기 첫자리배치를 하면서 담임선생님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내놨다. 모두에게 종이를 나눠준 후 위에는 자신의 이름을, 밑에는 같이 앉고 싶은 친구의 이름을 적어내라고 하셨다. 서로가 서로의 이름을 쓴 경우는 100% 짝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짝이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최대한 원하는 사람과 짝이 될 수 있도록 배치해 보겠노라고 하셨다. 아이들은 서로 눈짓을 교환하기도 하고 고민하기도 하면서 이름을 적어 냈다. 당시 나는 친한 친구도 없고 해서 종이쪽지에 '아무나 상관없음'으로 적었다. 다음날 칠판에 그려진 자리배치도를 보고 나와 수현이가 짝지어진 것을 확인했다.
'으잉? 수현이가 내 이름을 적었나?' 바뀐 자리에 가 앉아 짝이 된 수현이에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엥? 난 귀숙이 네가 내 이름을 적었나 생각했는데?'
'.......'
알고 보니 수현이도 나와 똑같이, 종이쪽지에 '아무나 상관없음'으로 적어 냈던 것이다. 찌찌뽕. 이 찌찌뽕의 인연으로 우린 짝이 되었다.
그동안 키가 작고 눈이 안 좋았던 나는 거의 대부분 앞자리에 앉았다. 반면 키가 큰 수현이는 학창 시절 내내 뒷자리만을 앉아 왔었는데 내 덕분에 처음으로 앞쪽에 앉아 볼 수 있게 되었다며 좋아했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진 듯. 여하튼 이 특별한 친구에게 진지하게 물어본 적이 있다.
'너는 즉흥환상곡 같은 빠른 템포의 곡을 어쩜 그렇게 여유 있게 물 흐르듯 칠 수 있느냐'라고. 나는 그런 곡을 칠 때면 몇 마디도 채 치기 전에 손가락과 손목이 경련이 올 정도로 아프다'라고.
수현이의 답변은 간단했다.
'힘을 빼라'
어떻게? 질주하듯 내달려야 하는 음표들 속에서 언제, 어떻게 힘을 뺄 수 있냐고 되물었다. 그건 자기만의 스킬이라고 하더라. 적절한 타이밍에 틈틈이 손목을 쉬어주는 것. 그리하여 지속적으로 달릴 수 있는 힘을 비축하는 것이라고.
아~~~ 그것은 긴 시간 끊임없이 반복되는 연습과 훈련을 통해 터득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갈 길이 멀다. 우선 힘 빼고 다시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