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은 조귀숙이다. 얼핏 70대 그 이상의 연배로 추측되는 이름이다. 이는 '귀할 귀'자가 주는 올드함 때문인 듯하다.
어릴 때 나는 나의 외모와 성격 그리고 집안 환경까지 모두 순순히 받아들였으나 유독 이 이름에는 몸속 어딘가에서 뭔지 모를 거부 반응이 일었다.
위로 세명의 오빠는 가운데 '남'자 돌림으로 '남훈', '남석', '남렬'... 그리고 원래대로라면 '남희'가 내 이름이 될 뻔했다고. 그런데 엄마가 딸 이름은 자신이 짓고 싶다며 고집스레 지은 것이 '귀숙'이란다.
학창 시절에는 종합장에 갖고 싶은 새 이름을 짓는 놀이로 시간을 보내곤 했다. 특히 외자를 선호했으나 성이 '조'여서 마음에 드는 이름 짓기가 어렵다고 툴툴대기도 했다. 미래의 아이 이름도 지어보고 싶었으나 아이의 성별도 모르고 미래 남편의 성을 몰라 조금 고민하다 그만두었다.
만약 성을 고를 수 있다면 이름을 붙이기에 이상적인 성은 '정'씨나 '한'씨 그리고 '이'씨라고 생각했다. 개인 취향~ㅎ 결국 내 남편의 성은? 두둥~ '박'씨였던 것이었다. 돌림자는 '균'이었고 남편 삼 형제의 이름은 '승균', '봉균', '세균'... 그중 막내 세균은 늘 '바이러스'라며 놀림감이 되었다고 한다. '네가 세균이면 네 형은 대장균이냐?'라는 소리도 들었다고~ㅎ
아이의 작명을 부탁드리는 것으로 시아버지의 권위를 세워드리려 했던 남편 나름의 처세 덕분에 첫 아이는 '박종범'이라는 이름자를 갖게 되었다. 아이는 자신의 이름에 큰 불만을 갖진 않았다. 다행이었다. 지금은 자신의 영어 이름을 이니셜을 따서 'JB'로 만들어 사용 중이다.
이제 대망의 둘째, 딸의 이름. 절대 양보할 수 없는 한 판 싸움까지 치러낼 준비를 맘속으로 단단히 했다. 허무하게도 딸의 이름은 너무나 쉽게 내가 원하는 대로, 주체적으로 지을 수 있었다. 중성적이면서 외자에 '성'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이름. 하여~~~ '박진'. 지금도 딸은 자신의 이름을 너무너무 좋아한다. 영어 이름으로 램프의 요정 지니(Genie)도 염두에 두었었는데 정작 아이는 'JIN'을 사용하더라.
진이가 초등 1학년때 방과 후 수업으로 동시 쓰기를 했는데 담당 선생님이 페미니스트셨던 건지 굳이 아이들의 이름을 아빠의 성옆에 엄마의 성을 넣어 사용하게 하셨다. 좀 특이한 4자 이름들이 만들어졌는데...
울 아이의 이름은 '박조진'이 되었다. 선생님이 보시기에도 좀 욕 같기도 하고 좋지 않은 의미가 연상되었는지 성과 이름을 띄어서 '박조 진'으로 쓰라 하셨다고 한다. 좋은 시도였으나 이렇듯 예외의 결과도 발생한다.
가족과 함께 미국 버지니아에서 거주할 때 근처 커뮤니티 센터로 영어회화를 배우러 다녔다. 나도 영어 이름이 필요하게 되었고 남편은 '그레이스'(Grace)를 추천했다. 별생각 없이 동의하고 내 이름을 그레이스라고 소개했는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수업 중에 낸시(Nancy) 선생님이 계속 'Grace'~ 'Grace'~~ 'Grace'~~~를 불렀는데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는...
나는 선생님이 나를 부르는지 몰랐다.
이미 자신의 이름을 망각해 버린 '조귀숙'만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고~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