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에 대하여

by Joyce C

아빠가 돌아가신 후 장례식까지 그 중심에는 오빠들이 있었고 나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비켜서 있었다.
나이 들어 종종 장례식장에 갈 일이 생겼는데 그때마다 떠오르는 어릴 적 기억이 있다.
'아빠, 죽으면 꼭 장례식을 치러야 해요? 난 내가 죽으면 조용히 하늘나라 갔으면 좋겠어요. 무덤도 방문객도 다 필요 없어요.'
'하하, 이 녀석아~ 장례식은 죽은 사람이 아닌 산 사람을 위로하려고 치르는 거다.'

또 다른 기억 하나.
20년 전, 남편 육사 동기의 조모상 부고를 받았다. 아이들도 어리고, 장례식장까지 거리도 멀고 해서 남편만 몇몇 연락이 닿은 동기와 함께 다녀왔다.
직접 운전을 해서 장례식장까지 가는 동안에 상을 당한 동기로부터 두 번의 재촉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야~ 어디까지 왔어...? 지금 내 사촌 동생 쪽 문상객은 벌써 많이들 왔는데 내 쪽은 아직 아무도 없어서 쫌 그런데... 빨리 와라.~'
문상객으로도 비교하고 경쟁하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지면서 뭔가 괴이한 기분이 들었다.

하와이에 거주할 때 남편의 또 다른 육사 중대 동기가 모친상을 당했다. 12명 정도의 중대 동기생들끼리 그동안 월 2만 원씩 회비도 모으고 년 1회 모임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아무도 장례식장을 찾지 않아 그 동기가 단단히 삐져서 이후 모임에도 잘 참석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귀국한 후에 다시 그 동기가 부친상을 당했다고 알려 왔을 때 우리 부부는 무려 3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운전해서 다녀왔다.
누군가에게는 조문을 받는 것이 이토록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문제구나 싶었다.

그리고 아이유 주연의 명작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극 중 아이유의 할머니 장례식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첫째 형 상훈은 미래의, 언젠가는 닥칠 어머니의 장례식을 계속 걱정한다. 아들 셋 중 누구 하나라도 잘난 놈이 있어야 장례식 때 '어머니 가는 길이 외롭지 않을 거'라며... 이건 무슨 의미인가? 이미 죽은 사람이 외로움을 느낀다고? 그런 이상한 생각 때문에 '순장'이라는 악습이 있었던 건 아닐까? 심지어 살아 계신 어머니를 앞에 두고 마음속으로 장례식을 준비하면서 극 중 동생인 '아저씨 동훈'에게는 절대 사표 쓰지 말고 버티라고 종용하는 장면은 엽기적이기까지 했다. 결국 첫째 형 상훈의 버킷 리스트 같은 장례식은 자신의 어머니가 아닌 아이유 할머니의 장례를 치러주며 성사된다.
아저씨 동훈의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나 너희 할머니 장례식에 갈 거고, 너 우리 엄마 장례식에 와'
인간적으로 진정한 관계 맺음은 집안의 장례식에 서로 참석하는 것으로 인정받는다는 의미일까?
(잘 모르겠다. 아시는 분은 댓글로 남겨주시길...)

그러나... 난 아빠의 죽음을 식구를 제외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내 지인 중 '나의 아빠'를 기억하는 이는 없고, 그들의 조문이나 부의금이 내게 위로가 되지 못함을 안 까닭이다.
장례식이 끝나고 난 뒤 난 종범이와 진이에게 당부했다.
'미래에... 나의 죽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라고...
홈장례든, 무빈소장례든, 디지털 추모든 상관없이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조용히 떠나고 싶다고 말이다.
나의 삶과 마찬가지로 죽음의 방식 또한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싶다. 하지만 죽음에 다다르기까지, 혹 죽음 그 이후에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곁에 조력자가 필요함을 안다. 사는 동안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으니 이 정도 부탁은 들어주리라 믿는다.
죽은 마당에 누구의 기준에 맞춰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살면서 남에게 보이기 위한 관례와 형식 따위의 격식을 차리는 일은 지긋지긋하게 해 왔다. 하물며 죽은 마당에 아직 더 갖추고 맞추어야 할 것들이 무에 남아 있겠는가.

살아남은 자들에게 진정한 위로는 떠난 자와의 함께한 추억 속에서 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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