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Long 이야기
2009년...
처음 미국 버지니아에 도착해서 적응하기까지 Ms. Long을 빼놓고는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을 정도로 단기간에 그녀는 나의 일상에 큰 지분을 갖게 되었다.
나이는 나보다 20살 정도 많으신... 막내 이모님 뻘 되는 한국분이셨다.
그녀는 같은 아파트 바로 아래층에 사셨는데... 가끔 베란다에서 피우는 담배 연기가 올라와 고충이었던 것을 제외하고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만 했던 우리 가족에게는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용산 미군부대 PX에서 근무하던 시절에 파병 미군인이었던 Papa Davy (모두들 그렇게 불렀다.)를 만나 불같은 사랑에 빠졌고 결혼 후 미국으로 건너갔다.
Papa Davy는 본인 성(Long) 답게 키가 거의 190cm 가까이 되는 큰 키의 백인으로 무뚝뚝한 성격을 지닌 반면, Ms.Long 은 160cm가 채 안 되는 작은 키에 전형적 한국 아줌마의 편안한 인상을 주는 분이셨다.
두 분 사이에는 장성한 딸 에나벨리와 독립해서 살고 있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두 분은 당시 외손자 둘을 돌보며 살고 계셨는데... 7살 '케일른'과 4살 '일라이'다.
두 아이 모두 딸(에나벨리)의 아들들이었고 각각 아빠는 달랐다. 그래서인가. 7살 케일른과 4살 일라이는 형제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외모도 성격도 완전 딴판이었다.
케일른은 갈색머리에 갈색 눈동자를 지닌 제법 똑똑하고 눈치 빠른 명랑한 아이였고,
일라이는 천사의 외모 즉 밝은 금발에 파란 눈을 하고서 하는 짓은 귀여운 악마 같은... 키우기 어려운 아이였다.
나는 가끔씩 일라이와 놀아 주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하는 말마다 4살 어린애 입에서는 나오기 힘든 거칠고 더러운 욕을 나에게 해왔던 것이다.
'Go to jail~'
'Get the hell out~!'
천사같이 웃으며 내뱉는 말이 그런 욕인 줄도 모르고 나는 바보같이 웃으며 선의를 갖고 친절하게 '작은 악마'를 돌봤다. 일라이의 '욕 사건'은 오직 바른말 고운 말만 할 줄 아는... 교과서로만 배운 내 영어의 한계를 보여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라이는 집에서 Papa Davy와 함께 있을 때면 줄곧 미국 레슬링 경기를 시청해 왔던 것이다.
어느 날 Ms. Long이 부추 만두를 해 먹자고 초대를 했다. 그날 나는 40년 차 부부의 찐 현실을 엿보았다. 내 눈에 보인 그 부부의 모습은 서로를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부딪치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아니다. Papa Davy는 아예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부추 만두를 만드는 과정에서 부추를 쫑쫑 다질 때 그가 집안으로 들어왔는데... 손님으로 와 있는 내게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얼굴에 인상을 쓰며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도 않고 이렇게 말했다.
'Ew, what is that awful, stinging smell?'
(윽, 이 지독하고 톡 쏘는 냄새는 뭐야?)
부추에도 냄새가 있었던가? 한국인인 나는 맡지 못하는 부추 냄새가 그에게는 'awful' 하고 'stinging'한 냄새였던 것이다. 지금도 나는 부추 관련 연관 검색어로 Papa Davy가 떠오르곤 한다.
Ms. Long은 말했다. 이상하게도 사람이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어린 시절의 입맛을 찾아가더라고...
그래서 자신은 더욱더 한국적인 음식을, 자신의 남편은 미국 음식을 찾아 먹게 된다고...
그날도 나와 그녀는 부추 만두를 만들어 먹고, 그녀의 남편을 위해서는 따로 스테이크를 구웠다. 늘 두 가지의 요리를 해야 하니 번거롭지만 어쩔 수 없다며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미국 버지니아에서 거주한 지 1년도 안되어서 깨달은 것이 있다. 한국여자는 미국인과 결혼해서 미국에서 살아도 '희생'이 디폴트 값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독박' 육아는 기본에 요리와 청소까지... 살림 전반을 책임진다. 하다 하다 나중엔 자녀의 아이를 키워주는 보모 역할까지 기꺼이 맡는다.
근처 한인이 운영하는 미용실에 머리를 하러 갔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미용실에 계신 한국인 할머니들이 모두 손녀든 손자든 어린아이 하나씩을 데리고 온 것이었다. 어린아이들의 외형이 한국 아이들과 달랐을 뿐... 순간 이곳이 한국인지 미국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Ms.Long에게 부부싸움은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았다. 물론 그녀는 영어를 잘하지만 영어로 말다툼을 하는 것은 불리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감정이 격해지면 이상하게 영어가 술술 나오더라고.'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딸 에나벨리가 사춘기 시절에는 말다툼 중에 자기 방에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려서 Ms. Long이 억지로 그 방문을 열려고 하니 바로 경찰을 부르더란다.
'미국식이네' 하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에 거듭 두 번의 임신과 출산을 하고서는 친정 엄마인 자신에게 두 아이의 양육을 맡긴 채 자신은 커리어를 위해 군입대를 했다고.
그건 '한국식이네...'
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약은 처세인가... 그때그때 마다 자기 유리한대로 '미국식'과 '한국식'을 오가며 취사 선택하는 책임감 없는 딸... 에나벨리는 내가 귀국한 이후에 또다시 세 번째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Ms. Long 은 어둡지만 담담한 어조로 평생 잊지 못할 말을 내게 남긴다.
'사랑은 정신병이야~ 그렇지 않고서야 내 나라, 내 가족, 내 친구들을 떠나 남편 말고는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이곳에 올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