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사모님 이야기
그렇게 별사모님의 쇼핑은 순조로운 듯했다. 그분은 [세인트 존]이라는 브랜드를 특히나 좋아하셨다.
그곳의 트위드 재킷이 맘에 드셨는지 만져보고 입어보고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비춰보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사실 난 몸집이 좀 있으신 분이 트위드 재킷을... 그것도 밝은 분홍색의... 입고 있는 모습을 보면 아기 돼지가 연상되곤 한다.
그 옷이 꽤나 가격이 나가서 망설였던 건지, 무슨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구입을 결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그날엔 중요한 저녁 일정이 잡혀있었기에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었다. 한국인 입양아 출신으로 미군 장성(미별)이 되신, 입지전적 인물인 미별님의 자택 저녁 식사에 초청받은 것이다. 별사모님은 그 재킷에 아쉬운 눈길을 던졌고 우리 일행 은 그제야 쇼핑 타임을 끝내고 미별님의 자택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미별님은 어릴 때 입양되신 탓에 한국말은 전혀 못하는 100% 미국인이셨고, 몇 명의 통역이 붙었지만 뭔지 모르게 대화는 겉도는 듯했다.
별사모님은 미별님댁에서 정성껏 차린 음식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때 나는 보았다. 사모님이 옆자리에 앉은 자신의 남편 별님의 다리를 툭툭 치는 것을.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속삭포처럼 말하는 것을.
그리고 나는 듣고야 말았다.
'빨리 가야 해. 알라모아나 쇼핑 타운이 9시에 문을 닫는단 말이야. 이제 그만 가면 안돼? 아까 사려다 못 산 옷이 있다고.'
뭣이 중헌데... 애써 귀한 시간과 자리를 만들어 초대해 주신 미별님께 내가 다 죄송스러웠다.
무례함을 감수하고 일어선 우리 일행은 차(8인승)를 타고 다시 쇼핑 타운으로 향했다. 날은 어두워져 있었고 차창밖에 불빛을 보며 무념무상의 상태로 있었는데...
차 앞쪽에 앉아 있던 젊은 남자 비서실장이 내게로 몸을 기울여 조용히 물었다.
'혹시 아까 별사모님이 쇼핑 중 방문하셨던 [세인트 존] 매장을 찾아가실 수 있으신가요?'
이런... 내 머릿속은 새하애 졌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아니요!'
방향도, 위치도, 심지어 몇 층에 자리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 난 알아주는 길치였다. 대형 쇼핑 타운은 갈 때마다 매번 새로웠다. 현재 살고 있는 평택에도 차로 5분 거리에 스타필드가 있는데 갈 때마다 길을 잃고 헤매기 일쑤다.
'큰 일이네요' 어쩌지.... 무관 사모님이라도 계셨으면 좋았을 텐데... 그분은 낮동안에 쇼핑 타임을 마치고 다른 일정 때문에 먼저 가셨다.
불안에 잠식되어 있는 사이에 차는 어느새 알라모아나 쇼핑 타운으로 들어섰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면서 별사모님께 조심스럽게 일실직고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운을 뗐다.
'저기... 사모님... 제가... 사실은...'
여기서 반전.
뭐지? 별사모님은 빠른 걸음을 옮겨 이미 저만치 가고 있었고, 일행들은 그 뒤를 전속력으로 뒤쫓았다.
내가 보기에 별사모님은 50대 후반의 제법 살집이 있는 무거워 뵈는 몸매에 민첩성과는 거리가 먼 스타일이었다. 그런 그분이 엄청난 속도로 앞서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무리들.
별사모님에게서는... 마치 바다에서 성체가 된 연어가 산란기에 수천 킬로미터를 이동해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거침없이 거슬러 올라가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주차장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바꿔 가다가 몇 계단 내려간다. 여러 매장들을 지나쳐 걷다가 메이시스 (Macy's) 안으로 들어가 통과하듯 반대편으로 나와 2층으로 올라가서 쭉 가다 보니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세인트 존] 매장이었다.
와~~~ 이곳에 처음 와 본 분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길 찾기 실력에 입이 떡 벌어졌다.
여기서 이야기는 끝이 아니고... 계속된다.
이번엔 제대로 그 트위드 재킷을 구입할 줄 알았다면 오산이다~ㅎ 그렇다면 알. 아. 맞. 춰. 보시라~
그날 별사모님이 재킷 구입을 미룰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바로바로... 무관부 면세 혜택 대상으로서 할인가로 구매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결국 며칠 후 무관부 직원까지 동원되어서 면세 할인을 받고서야 별님부부는 한국으로 돌아가셨고 우리 모두는 일상을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