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한다 & 사랑한다

좋아하는 꽃은 꺾고, 사랑하는 꽃은 물을 준다.

by Joyce C

인스타에서 "좋아하는 꽃은 꺾고, 사랑하는 꽃은 물을 준다"는 글귀를 읽고 좋아한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봤다.
이 짧은 문장은 '좋아함'과 '사랑함'의 본질적인 차이를 단숨에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종종 '좋아함'과 '사랑함'을 같은 마음의 결로 착각하곤 한다. 그러나 그 둘은 닮은 듯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누군가를 좋아할 때, 그 사람의 존재가 내 기분을 북돋우고 삶에 활력을 준다. 그래서 더 가까이 두고 싶고, 내 안에 담아두고 싶어진다. 마치 활짝 핀 꽃을 꺾어 책상 위에 올려두듯이.
그러나 그 꽃은 처음에는 향기롭고 아름답지만 오래지 않아 곧 시들고 생기를 잃고 만다. 좋아함은 자주 소유의 욕망과 맞닿아 있다. 내가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고, 만지고 싶을 때 만질 수 있는 안전한 거리에 두고 싶어 하다가, 그 욕망을 채우려다가, 결국 꽃을 꺾게 된다.
꽃을 꺾는다는 것은 결국 상대의 자율성을 부정하는 위험한 태도다. 내가 좋아하기 때문에 그 꽃을 내 공간에 데려오고, 내 방식으로 감상하고 싶다는.
하지만 꺾인 순간, 꽃은 더 이상 자율적으로 자라날 수 없다.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자녀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고, 나의 기대와 불안을 충족시키는 도구로 삼으려 할 때, 우리는 자녀의 자율성을 해치게 된다.
이것은 무시무시한 폭력과 다를 바 없다.

반면에 사랑은 조금 다르다.
사랑은 내가 그 꽃을 눈앞에 두지 못하더라도 그 꽃이 햇살과 바람을 맞으며 스스로 자유롭게, 그리고 오래도록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꽃이 피어나는 자리에서 가만히 지켜보고 물을 주며 누군가의 손에 함부로 꺾기지 않기를 소망한다.
사랑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조용히 이해하려는 태도다.
내 안에 가두려 하지 않고, 그가 자신만의 빛을 찾아가도록 응원하는 일이다.
꽃이 어떻게 자라고 싶은 지를 날마다 세심하게 살피고 지원한다. 사랑은 바로 이 '지원하는 마음'에서 피어난다.
내가 아닌 꽃을 그 중심에 두고
꽃이 피어나는 속도를 기다려 주면서
그 향기가 멀리 퍼져가는 모습을 기뻐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전남편은 사랑한다는 말을 앞세워 함부로 꽃을 꺾었다. 나를, 자녀를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 와야만 안심을 했다. 무조건 곁에 두고 자신의 기준에 맞춰주길 바랐다.
그놈의 '도리'니 '효도'니 '교육'이니 따위의 같잖은 말로 한껏 포장하려 했지만, 실상 그 안에는 추악한 소유의 욕심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또한 그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꺾인 꽃은 언젠가 시든다'는 것.
많은 관계가 갈등을 야기하고 상처로 끝나는 이유는 서로의 자율성을 충분히 존중하지 못함에 있다.
내 방식대로 상대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진정한 사랑은 상대가 스스로의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고 지지하는 일이다.

아니, 어쩌면 진짜 사랑이란 내가 가진 두려움을 이겨내는 일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멀어질까 봐, ' '내 것이 아니게 될까 봐'하는 두려움 말이다.
이제 움켜쥐려는 손을 펴자.
나의 꽃이 있는 자리에서 자유롭게 피어있길 바라면서.
이제 나는 묻고 싶다. 알고 싶다.
누군가를 향해 뻗는 손이 있다면 그것이 꺾으려는 손인지, 물을 주려는 손인지.
이 질문에 솔직하게 답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랑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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