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 바꿔 신기 1

별사모님 이야기

by Joyce C

군인 와이프들은 일반 회사원의 와이프들과는 확연히 다른, 일종의 그들만의 역할을 부여받는다. 사실상 이건 말도 안 되는 그들만의 리그이며 없어져야만 할 폐습이다. 장군 부인은 본인이 장군인 것처럼 행동하고 남편을 등에 업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신혼 무렵 철원에서는 '장교 부인 정신 교육'도 받았다.
1시간 넘게 받은 교육 내용은 '남편의 부대 상황이나 훈련등과 관련한 정보는 모두 기밀에 해당하므로 이에 대해 묻지도, 알려고 하지도 마라'가 핵심이었다. '오~~~ 그 정도야 자신 있지~!'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대대장 사모님의 호출하에 군인 부인들이 모여서 나누는 얘기는 나로서는 도통 이해하기 힘든 부대 관련 이야기들 투성이었다.
'아니~ 군인 남편이 소속된 부대 일에 관심 끄라며~~!'
나는 어느새 이런 모순적 집단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2015년 8월 남편이 하와이 연락장교로 선발되어 우리 가족은 또다시 출국한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영어로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않은 나에게는 꽤나 힘든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막 외고 1-1학기를 마친 아들과 중2-1학기를 마친 딸아이에겐 한국의 지옥과도 같은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 탈출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임엔 틀림없었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하와이카이에 자리 잡고 생활이 안정되어 갈 즈음 군인 부인으로서의 임무가 부여되었다.
한국에서 높으신 분(군장성), 일명 별님 부부가 하와이를 방문하는데... 무려 5박 6일의 방문 기간 동안 별사모님 쪽을 맡아 일정(접견, 참관, 여행 및 쇼핑 일체)을 책임 관리 해야 하는 사람 중에 하나가 되었다.
소문에 의하면 그 별사모님은 특히나 의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나 뭐라나... 센스 없는 나는, 총괄에 해당하는 무관 사모님이 전체를 컨트롤하시는 상황에서 시키는 것만 하며 따라다니는 것도 버벅댔다.
식사 후 껌을 드려야 하는 상황에서 멍 때리고 있다가...

무관 사모님 : (속삭이듯이) 아까 준비해 둔 껌을 지금 별사모님께 드리세요~
나 : 앗... 차에 두고 내렸어요~^^;;
별사모님이 화장실에 가실 때도
무관사모님 : 어서 따라가세요~
나 : 전 화장실이 급하지 않은 데요~?
무관사모님 : 가서 가방을 들어 드리고 손 씻으신 후에 닦으시도록 타월을 준비해서 기다리세요~
나 : 앗~! 넵....^^:;

아~~~ 의전이란 이런 거구나... 일명 무수리가 되어 상전을 모시는 것.
그런데 의전의 대상이 별님의 배우자와 가족에게 확대 적용 되는 것과 남편이 군인이라는 이유로 나 같은 사람까지 동원되어 의전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은 못내 이상하고 씁쓸했다.
그래도 존재감 미미했던 무수리 중 한 명인 내가 대박을 치며 성공적인 의전에 기여한 썰을 푼다.

먼저 한국에서 별님 부부가 오셔서 가장 먼저 소화해야 하는 첫날의 일정은 미국 측 의장대 사열 행사 후에 미 측 군사모님들과 한 측 군사모님들 간에 리셉션(환영행사)과 다과회였다. 통역관의 문제였는지 별사모님의 비사교적 성격 탓인지 분위기는 어색하고 무거웠다. 무관 사모님이 분위기를 풀어 보려고 노력하셨지만 역부족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별사모님의 관심은 온통 행사 후에 있을 알라모아나 쇼핑 타운에서의 '쇼핑 타임'에 가 있었다. 이윽고 지루한 환영식 일정을 모두 소화한 후에 이어질 도파민 터지는 쇼핑 타임에 대한 기대를 한가득 품고 편한 신발로 갈아 신으려고 의전차 문을 열려던 별사모님은 생각지 못한 벽에 부딪치고 만다. 신고 있던 불편한 의전용 구두를 벗은 후에 갈아 신으려고 미리 편한 운동화를 준비해서 미군 의전차에 두고 내렸는데... 이 놈의 미군 운전병은 온데간데없고 차문까지 잠겨 있었던 것. 응급 상황이었다. 호출되어 달려온 남편이 운전병을 찾는 동시에 차문을 열려고 온갖 곳에 전화를 해대고 난리였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여기서 별사모님은 괴물이 된다. 폭발해 버린 별사모님은 별님께 거친 소리를 퍼부어대고 분위기는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여차저차 다른 차에 탑승 후 꿈에 그리던 쇼핑타운으로 가면서도 별사모님의 기분은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 무거운 침묵만이 차 안을 메우고 있었다. 운전석 옆자리에서 가만히 내 신발을 내려다보던 나는 '유레카'를 외친다.

그날 아침.
하루 종일 서 있을 것이 예상되어 굽이 낮은 가볍고 편한 스케쳐스 로퍼를 골라 신었다. 물론 옷은 제법 격식 있는 원피스로 갖춰 입었다. 행사장으로 출발하기 전에 만난 무관 사모님은 의상 디자인을 전공하신 분답게 센스있는 옷차림으로 등장하셨다. 그분의 시선이 내 머리에서부터 재빨리 훑다가 발끝의 신발에서 멈췄다. 약간 눈살을 찌푸리듯 눈썹이 올라갔다.
'오늘 행사자리에 맞지 않는 신발 같은데... 다른 신발로 갈아 신는 게 어때요~?'
'에이~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요~? 특별히 착장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요 뭐. 어서 출발하시죠.'

차 안에 앉아 가만히 내 신발을 내려다보던 중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용감하게, 과감하게 침묵을 깨뜨리며 별사모님께 말을 붙였다.
'사모님, 신발 사이즈가 어떻게 되세요~ 괜찮으시면 저와 신발을 바꿔 신는 것은 어떠세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제안이 작은 동요를 일으켰다.
결과는 대성공.
즉각적인 분위기 반전.
나의 신발은 극적 전환점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그것은 별사모님의 마음을 풀어 다시 쇼핑 욕구에 불을 지핀 것이다.
덕분에 나는 별사모님의 불편하지만 멋진 명품 구두를 신고 함께 쇼핑을 했다는 이야기다.
별사모님이 내 신발을 너무 좋아하셔서 애꿎은 내 발이 긴 시간 고생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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