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 이데올로기
꿈은 이루어졌다.
내가 오래도록 품어온 꿈이 있었다. 그것은 세상의 기준에서 대단한 성취를 이루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나의 자녀들이 자신들의 엄마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아니,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이었다. 자녀들의 눈에 작은 본보기가 되고, 그들의 삶에 따뜻한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 그것이 내가 바라는 전부였다.
그리고 그 꿈이 뜻밖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내가 '브런치'에 발행한 '모성 이데올로기'라는 글을 딸이 본인의 모교인 이화여자대학 커뮤니티(에타) 에 올려 소개한 것이다. 딸이 내 글을 자신의 공간에 올렸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깊이 울렸다. 그것은 단순한 공유가 아니었다. 엄마의 글을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을 만큼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그 글에는 좋은 댓글들이 달렸고, '좋아요'도 이어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 딸의 마음이었다. 아이가 나를 자랑스러운 존재로 여기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가 내게는 세상 그 어떤 칭찬과 상보다 귀했다.
나는 이제 말할 수 있다.
'나의 꿈은 이루어졌다'라고.
더 큰 무언가를 바라지 않는다. 이미 내 삶은 내가 원한 자리, 내가 원한 의미 안에 도착했으니까.
돌이켜보면, 꿈이란 늘 먼 곳에 있지 않았다. 그것은 늘 곁에 있었고, 다만 내가 스스로를 믿고 묵묵히 걸어가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다.
나의 꿈은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더없이 고요하고, 더없이 충만한 성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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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성 이데올로기]
"여자는 약하다. 하지만 엄마는 강하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묘하게 불편하다. 처음엔 그게 왜 그런지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웠다. 누구도 이 말을 악의로 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칭찬처럼 감탄처럼 들리도록 애써 포장된 문장이었다. 하지만 나는 점점 이 말이 만들어내는 '그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이 문장은 여자라는 존재를 처음부터 약자로 규정한다. 그리고 엄마라는 역할이 들어가는 순간에만 강인함이 부여된다. 그러니까 여성이 강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머니'라는 타이틀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모성이 여성의 가치를 입증하는 증거처럼 제시된다. 그것이 내가 불편함을 느끼는 지점이다.
나는 여성이기에 앞서 인간이기에, 때로 약할 수도 있고 강할 수도 있다. 어떤 순간엔 두려워하고 어떤 순간엔 맞서 싸울 힘을 내기도 한다. 그건 내 개인의 성향이기도 하고 내 선택이기도 하다. 하지만 '엄마'라는 정체성을 갖는 순간에만 내가 약자에서 강자로 승격된다는 서사는 너무도 고루하고 폭력적이다. 이 서사는 여성의 가치를 오직 출산과 헌신으로 환원한다.
나는 그런 식의 위로와 찬사를 원치 않는다. 여성이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꼭 아이를 낳아야만 하고, 모성의 신화를 써야만 한다면, 결국 여성은 여전히 조건부로만 존중받는 것이다.
'엄마라서 강하다'라는 말은 '여자로서는 약하다'는 전제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그 말이 온전한 존중으로 들리지 않는 것이다.
아이를 낳지 않으면 약자로 분류되고 혹은 나았어도 모성의 이상에 맞지 않으면 비난받는다. 그런 사회적 시선은 한편으로는 여성 자신에게 죄책감을 심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이를 돌보는 일에 과도한 책임과 희생을 강요한다. 모성은 선택이고 경험이어야지, 여성으로서 강해지기 위한 기준점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여자는 약하다. 하지만 엄마는 강하다." 이 문장은 언뜻 여성을 높이 평가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여성을 또다시 엄마라는 역할로 구속한다.
나는 엄마로서 강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가 없다고 해서 약해지지는 않는다. 나는 그냥 한 사람으로서, 어떤 순간엔 부드럽고 어떤 순간엔 단단하며, 어떤 날엔 흔들리고 어떤 날엔 꿋꿋하다. 그리고 그것은 '엄마'이기 때문이 아니라 '나'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런 말조차 필요 없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여자는 약하다는 선입견도, 엄마라야 강하다는 칭송도, 그 어떤 조건도 없이 여성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존중하는 사회... 그때가 되어야 여성은 진정 자유로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