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군인 가족이 되어 무려 20번 정도를 이사 다녔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구축 12평 빌라부터 신축급 43평 아파트까지...
서울과 철원, 속초, 대전, 계룡, 영천, 홍천, 버지니아와 하와이, 현재 평택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곳에서 살아 봤다.
마냥 힘들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사할 때가 되면 새로운 곳에서의 삶에 대한 기대감과 호기심도 싹텄다.
마냥 좋기만 했던 것도 아니었다.
이사 준비 및 적응 과정에서의 피로감과 불안, 긴장 또한 동반되었다.
위의 거주했던 곳 중 '하와이가 제일 좋았겠네'라고 많이들 생각하겠지만... 아니다. 관광이 아닌 2년 이상 실생활을 해야 한다면 말이 달라진다.
첫 하와이에 도착했을 때 느꼈던 그 뜨거운 태양과 후덥지근한 바람을 잊지 못하겠다. 마치 한국보다 3배는 더 강하게 내리 쪼이는 듯한 햇빛 덕에 아무리 하얗고 뽀얀 피부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몇 개월 만에 다른 인종으로 변신한다. 나 같은 집순이도 예외는 아닌 것이 어쩌다 한 번의 외출 시 선크림 SPF80 (울트라 스포츠 썬 제품)을 수시로 발라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하와이에서의 첫 집은 호놀룰루에 있는 1971년에 지어진 30층 높이의 아파트 Ala wai skyrise였다.
거실의 두 벽면이 통창이었는데, 한쪽으로는 다이아몬드 헤드와 명문 고등학교인 이올라니가, 다른 한쪽으로는 알라와이 커널이 보였다.
와~ 멋지다는 감탄사가 나왔던 건 딱 첫날뿐.
통창으로 하루 종일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덕에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커튼을 치는 것이었다.
1970년도~1990년도까지의 하와이는 정말 핫한 장소였을 것 같다. 아마도 현재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하와이에 대한 환상은 모두 이 시기에 다 만들어졌을 것이다. 50년 전 그 옛날에 30층 이상의 타워형 아파트라니...
게다가 그림엽서 같은 와이키키 해변의 모습들...
에메랄드빛 바다,
그 위로 유유히 물결을 타 넘는 서퍼들,
고운 모래의 백사장,
그 위에 여유롭게 누워 햇살을 즐기는 사람들,
멀리 보이는 다이아몬드 헤드,
바람에 흔들리는 야자수...
관광객의 시선으론 분명 아름다운 풍경이 분명하다.
하지만 생활인이 느끼는 일상의 불편함은 이 모든 낭만을 덮기에 충분했다.
덥고 후덥지근한 날씨로 인해 불쾌지수는 높고
아파트 안팎으로 아니, 섬 전체에 가득한 바퀴벌레들.
아름다운 공원이나 그늘진 다리밑에는
어김없이 약에 취한 노숙자들이 자리하고 있다.
비싼 물가에 외식 한 번 하기 힘들다.
'이레'라는 한국 분식점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떡볶이 1인분이 팁포함 무려 20달러 (2만 5천 원)였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모든 쓰레기. 음식물 쓰레기부터 일반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 일체를 그냥 한 곳, 트래쉬 슈트(Trash chute)에 던져 버린다는 것이다. 트래쉬 슈트는 아파트 각 층 복도 끝이나 중앙에 자리한 작은 철문으로 손잡이를 잡고 열면, 그 안에는 어둡고 깊숙한 금속 관이 아래로 뻗어 있다. 쓰레기를 던져 넣고 문을 닫으면 '쿵 '소리와 함께 저 밑 수거실로 떨어지는 쓰레기. 동시에 나의 양심도 떨어지는 듯했다. 작은 철문 하나가 거대한 쓰레기 시스템으로 연결되는데... 철문을 열 때는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고약한 악취와 함께 친숙해지기 어려운 그분들, 바로 바퀴벌레와 조우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필 하와이에 거주할 당시 나는 갱년기에 접어들었음이 분명하다. 더위를 참을 수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흘렀다. 아파트 안에 에어컨이 있긴 있었다. 창문형 에어컨이 거실에 한 대, 침실에 한 대.
최고로 세게 틀어도 소음만 커질 뿐 절대 시원해지지 않을뿐더러 먼지까지 풀풀 날리던 에어컨.
(에어컨이라 쓰고 선풍기라 읽는다.)
그래서일까. 난 한국의 쌀쌀한 듯한 봄바람과 선선한 가을바람을 사랑하게 되었다.
요즘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 때면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창문 앞에 서서 두 팔 벌려 바람을 맞이한다.
너무나 그리웠다. 이 바람 바람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