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그 불편한 무대
명절이 다가오면 마음이 먼저 긴장한다.
그 이유를 한참 뒤에야 깨닫는다.
그건 음식 준비나 이동의 피로 때문이 아니라, 정상적인 가족으로 살아야 한다는 연극에 참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명절은 언제부턴가 가족의 축제가 아니라 '정상성을 확인하는 의식'이 되어 버렸다. 서로가 진심으로 만나기보다, 가족이라는 제도를 수행하기 위해 모인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지만, 그 자리를 비우면 무언가 결함이 있는 사람처럼 여겨진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모인다.
사랑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척하기 위해서.
이 의식은 유독 누군가에게 더 무겁게 작용한다. 명절은 여전히 가족 내의 서열을 복원하는 날이다. 그 질서의 가장 아래에는 늘 약자가 있다.
그중에서도 여성, 특히 며느리는 눈치와 헌신으로 구성된 침묵의 의무를 감당한다.
명절에 되면, 가정의 평화는 종종 누군가의 침묵 위에 세워진다.
그 침묵이 깨지는 순간, 평화는 곧장 '불화'로 명명된다. 문제는 불평등이 아니라, 그 불평등을 말하는 사람에게 돌아간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우리가 명절마다 지키려는 건 정말 '가족의 의미'일까, 아니면 '가족의 모양'일까?
진심보다는 격식이, 존중보다는 체면이 앞서는 자리에서 우린 점점 더 낯선 얼굴로 서로를 마주한다.
이 이상한 연극 속에서 가장 큰 고통은 연기 자체보다, 그 연기를 ' 기꺼이, 자연스럽게 해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에 있다.
명절은 어쩌면 우리 사회의 축소판인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따뜻한 연대의 이름을 걸고 있지만, 그 안에서는 누군가의 노동과 감정이 조용히 소모된다. 그래서 명절이 끝난 뒤 남는 건 평화의 기억이 아니라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피로감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모인다.
그 이유를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아마도 사람들은 아직 희미하게 믿고 있는 것 같다.
언젠가는 이 모임이 진짜 가족의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고...
억압이 아니라 이해로, 의무가 아니라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명절은 우리에게 여전히 묻는다.
"너는 지금 진심으로 만나고 있는가, 아니면 관계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비로소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