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타호호수에서
최근 미국의 롱 위켄드(미국 내, 월요일 휴일로 금, 토, 일, 월요일을 쉴 수 있는 기간)를 맞아 이틀 정도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주 경계에 위치한 타호 호수(Tahoe Lake)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처음 방문하는 타호 호수에 대해 유튜브와 블로그를 통해 사전 조사를 했지만, 실제로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많은 여행자들이 추천하는 사우스 타호(South Tahoe) 지역에 숙소를 잡고, 이른 새벽부터 서로 운전을 번갈아 가며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타호 호수를 처음 마주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물결이었다. 우리는 먼저 타호 호수의 가장 북쪽 킹스비치(Kings Beach)로 향했는데,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도로에서도 호수의 맑은 물이 잘 보였다. 특히 바람에 일렁이는 잔잔한 물결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맑고 투명한 물이 바람에 살짝 흔들리며 만들어내는 잔물결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을 자아냈다. 마치 어떤 소음도 다 삼켜버릴 것 같은 거대한 호수 앞에서 우리는 잠시 말을 잃었다.
너무 아름답다.
푸른 물결은 마치 자석처럼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푸른 물결을 보며 호수에 한 발짝 더 다가가고, 그리고 그 물결을 직접 만져보고 싶다는 충동이 든다. 손을 뻗어서 물결을 만지면, 얼음같이 차가운 수온이 느껴진다. 높은 고도에 산에 쌓인 눈들이 녹아 흘러들어온다는 타호 호수는 연간 낮은 수온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어쩌면 이 차가움으로 그렇게 고요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지도 모른다. 타호 호수 물에 손을 담그며, 차가운 물결을 만지며 문득 여름의 타호를 상상했다. 따뜻한 햇살 아래 카약이나 패들보드를 타고 잔잔한 물결 위에 몸을 맡긴 채 하늘을 바라보는 순간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설렜다.
겨울의 타호는 위치를 잘 선택한다면 적막함 속에서 타호 호수를 즐길 수 있다. 우리는 아침 일찍 우리는 에메랄드 베이 주립공원(Emerald Bay State Park)으로 향했다. 주립공원 주차장에 도착해 주차비를 정산하고 영수증을 대시보드에 놓았는데, 이는 매우 중요한 절차다. 나중에 올라오는 길에 보니 주립공원 관리인이 이를 지키지 않은 차량들에 과태료를 부과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주차장에서부터 천천히 걸어 내려가면 타호 호숫가에 닿을 수 있는데, 내려가는 길은 소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져 있다. 숲 속의 소나무 사이를 걸으며 호수로 내려가면,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이 호수 위로 내려앉아 반짝이는 물결을 볼 수 있다.
우리는 호수가 잘 보이는 피크닉 테이블에 앉아 준비해 간 샌드위치를 나눠먹었다. 이런 곳을 방문할 때마다 늘 남편에게 하는 말이지만, 타호 호수 근처에서 살면서 사계절을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얘기도 나눴다. 이곳에서 살아보는 것은 어렵겠지만 여름엔 꼭 카약이나 패들보트를 타러 와보자는 약속을 했다. 타호 호수에 가까운 캠핑장을 예약해, 패들보트에 올라 하루 종일 타호 호수에 누워있어도 지루할 것 같지 않은 넓고 푸르른 호수였다.
하지만 호수의 고요함을 뒤로하고 숙소가 있는 사우스 타호로 향하자,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겨울 스포츠 시즌을 맞아 스키를 즐기러 온 관광객들로 거리는 북적였고, 호텔 지역과 직접 연결된 스키 리프트는 이곳의 인기를 실감케 했습니다. 숙소 ($35 + $15 정도의 팁) 주차를 위해서는 발레 서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팁을 포함해 50달러에 가까운 비용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근처 식당에서 만두 여섯 개에 18달러를 지불한 것처럼, 이곳의 물가는 관광지답게 매우 높았다..
카지노 호텔들의 화려한 네온사인과 끊임없이 몰려드는 관광객들, 그리고 높은 물가는 이곳이 얼마나 상업화된 관광지인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저녁식사를 위해 주문한 피자를 받기까지 두 시간 반이나 기다려야 했던 경험은, 이곳의 북적거림을 더욱 실감케 했다. 한적한 호숫가에서 느낀 고요함과 이곳의 번잡함은 마치 다른 세계처럼 느껴졌습니다.
호수의 고요한 물결이 주는 평화로움과 상업 시설이 가득한 번화가의 소란스러움을 모두 경험하면서, 타호를 즐기는 방식에 대한 혼란이 찾아왔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니, 이런 이중적인 모습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가장 잘 반영하는 것이 아닐까, 현실적인 욕망과 자연이 교차하는 지점 안에서 타호 호수가 있다.
고요한 물결과 상업화된 번잡함이 어우러져 타호 호수는 그 자체로 모순적이고도 공간으로 느껴졌다. 짧은 타호 방문을 뒤로하고 또 긴 시간 운전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타호의 모습이 오랫동안 기억이 남았다.
고요함과 소란스러움,
고요함을 추구하지만, 언제나 너무나 쉽게 일상의 유혹에 흔들리는 나는 어떠한가,
타호 호수의 잔잔한 물결처럼 깊이 있는 마음으로 일상에 발생하는 작은 소란들을 잠재워두고 싶지만, 아직은 미숙한 내 마음은 사소한 상처에도 쉽게 동요하고 때로는 불같이 화를 내지 않나,
이러한 고뇌는 시간이 흐르면서 내 마음을 더욱 깊어지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어쩌면 조금씩 더 타호 호수의 모습을 닮아있을 수 있을까. 부디, 여름에 타호를 방문하기 전엔 조금이라도 더 깊은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