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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먼지뿐인 나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다

by Joyce

우리 부부는 미국의 국립공원이나 한적한 캠핑장에서 늦은 밤, 쏟아질 듯한 별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미국의 국립공원들은 빛 공해(light pollution)가 적어, 밤이 깊어질수록 캠핑 사이트의 작은 불빛 조차 어둠 속으로 스며든다. 고양이 집사인지라 외박을 신중하게 계획하는 우리지만, 밤하늘을 볼 기회가 생기면 절대 놓치지 않는다. 캠핑 의자에 앉아 주변에 작은 불빛조차 없는 곳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은하수도, 북극성도 마치 우리 위로 쏟아지는 것 같다.

IMG_4957.JPG 그랜드티톤에서의 별하늘

돌이켜보면, 별에 대한 내 사랑은 어린 시절부터 깊었다. 도서관에 가면 큼직한 우주 책을 펼쳐 놓고 형형색색의 별과 은하 사진을 보며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우주를 좋아했던 것과 달리, 물리는 그리 잘하지 못했다. 결국 나는 우주와 관련된 전공을 택하지도, 그와 관련된 일을 하지도 않는 어른이 되었다.


나는 학구열이 높은 부모님과 영재 소리를 듣던 언니 밑에서 자라며,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어린 시절 산만했던 나는 ‘공부를 잘하려면 좋아하는 것보다 해야 하는 것을 먼저 해야 한다’는 논리에 익숙해졌다. 선택권이 주어지면, 흥미보다는 잘할 수 있는 과목을 골랐다. 그래서 고등학교 내내 물리는 피해 다니고, 생물과 화학에만 집중했다. 그러다 보니 우주 사진을 들여다볼 시간조차 없었다. 실제로 그렇게 공부했고, 성적도 좋았다. 하지만 공부를 잘할수록 부모님의 기대는 커졌고, 나는 결국 우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고등학생 때는 건축학과를 꿈꿨지만, 결국 미국에서 의학전문대학원 진학에 유리한 대학을 선택했다. 대학에서도 해야 하는 공부를 했다. 그것이 나를 위해 희생하는 가족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졸업 후 결국 의전 진학을 포기했을 때, 부모님과 나는 깊은 혼란에 빠졌다. 몇 년을 목표로 세운 일을 하지 않는다니, 아니면 하지 못한다니, 나에게 나는 스스로 목표를 성취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공부에 소진된 10대와 20대 초반이 다 지나고 나서, 뒤늦게 사춘기가 찾아왔다.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을 해보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뜻밖에도 컴퓨터였다. 대학 시절 실험을 돌리기 위해 잠깐 코드를 짜본 적은 있지만, ‘하고 싶은 것’을 고민했을 때 컴퓨터가 떠오른 건 신기한 일이었다. 그래서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가 종로에서 컴퓨터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나중에 한국 회사에서 제공하는 코딩 교육을 수료한 후, 결국 개발자로 취업했다.

처음 코딩은 암기 과목과 같았다. 이해되지 않으니 그냥 코드를 통째로 외웠다. 당시 강사님은 "외워도 괜찮다. 시간이 지나면 결국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고, 몇 개월 후 나는 그 뜻을 비로소 깨달았다. 주변 동기들이 별다른 암기 없이 자연스럽게 코딩을 익혀가는 모습을 보며, 혹시 내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도 했다. 하지만 코딩은 내가 스스로 선택한 공부였고,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잘하든 못하든, 성실하기만 하면 어제의 나보다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확신으로 공부했다.


코딩이 재미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실수와 시도가 반복된다는 점이었다. 이전까지 내 공부 방식은 한 번의 시험, 한 번의 입학 전형, 마치 단 한 방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듯한 과정이었다. 암기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시험을 완벽히 치르는 것, 그것이 내 삶의 방식이었다. 그래서 단 한 번의 실수조차 용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코딩은 달랐다. 코드를 작성하고, 테스트하고, 버그를 잡고, 다시 작성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작은 실수를 하나씩 수정하며 쌓아가는 즐거움이 있었다.


회사에 들어간 후에는 저녁에는 온라인 학사 전공 수업을 들으며 부족한 지식을 채웠다. 개발자로 살아가려면 놓치는 것이 없도록 따로 시간을 내어 공부해야만 했다. 회사 생활 초기, 저무는 프로젝트에 투입돼 혹독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 시간을 제외하면 개발자로서의 회사 생활은 즐거웠다. 선배들은 멘토였고, 회사는 공부하고 습득하면 그 이상을 가르쳐주는 선배들을 품고 있는 곳이었다. 멘토인 선배들을 보며 그들을 따라가려고 열심히 일하고 공부했다. 선배들은 자신의 시간까지 쪼개가며 내가 궁금해하는 것들을 답해주고 공부시켜 줬다.

넓디넓은 개발의 세계에서 선배들은 나를 조급해하지 않고 가르쳐주었다. "가르쳐서 부려먹으려고 하는 거야"라는 농담을 하면서도, 내 실력을 후하게 평가해 주고 인내심을 가지고 이끌어주었다. 그리고 내가 더 공부하겠다고 했을 때, 회사를 떠나는 나를 진심으로 응원해 주었다.


개발자로 일하면서, 나는 실수에 대해 조금씩 너그러워졌다. 실수를 해도 괜찮다는 걸 배웠다. 그리고 탄력 회복성이 좋은 남편(당시의 남자친구)과 연애하며, 실패에 대한 태도도 조금 더 유연해졌다. 모든 걸 계획대로 하지 않아도, 계획이 틀어져도, 목표를 성취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걸 선배들과 남편을 통해 배웠다.


회사를 떠나 석사 과정 중 짧은 아르바이트로 어린이 우주캠프에서 미국에서 온 우주공학자의 통역을 맡았다. 캠프 일정 중 인근 천문대에서 별을 관측하고, 참가한 아이들에게 관련 영상을 통역하는 일이 있었다. 영상 속 내레이션이 이렇게 말했다.


"이 광대한 우주에서 우리는 너무나 작은 존재라, 마치 우주의 먼지와 같습니다."

IMG_4968.JPG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내 인생의 성공과 실패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계획적인 삶을 좋아하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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