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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의 루틴, 영화 데이트

미국에서의 반값 영화

by Joyce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화요일 저녁에 집에서 가까운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본다. 특별한 날도 아니고, 기념일도 아닌, 평범한 주중의 하루지만 우리 부부에게 이 시간은 꽤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남편과 나는 원래부터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한국에서 연애를 하던 시절에도 주말이면 자연스럽게 영화관 향하거나, 보고 싶은 영화과 있다면 퇴근 후에서 근처 영화관에서 스크린 속 이야기에 빠져들곤 했다. 같은 영화를 보았지만 서로 완전히 다른 포인트에 집중하고, 각자의 시선으로 해석한 장면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우리에겐 큰 즐거움이다. 그 다름 속에서의 공감이, 서로 조금 더 이해하고 맞춰가는 과정을 만들어 주기를 희망하면서,


그런 우리가 미국에 와서 화요일마다 영화를 보기 시작한 건, 미국 영화관에서 많이들 진행하는 화요일 프로모션 덕분이다. 미국에는 AMC, REGAL 등등 대형 영화관 체인들이 있는데, 보편적으로 화요일에는 ‘반값’에 가까운 티켓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할인 없이 영화를 보려면 두 명에 보통 $30-40 정도 필요한데, 화요일 혜택을 보면 절반 가격으로 $10-20 정도 되는 가격에 영화를 즐길 수 있다.

어찌 보면 소소한 혜택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작은 데이트’가 정기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그래서 화요일에는 야근을 피하려 하고, 오전에는 미리 영화 예매 앱을 열어 마음에 드는 시간과 자리를 고른다. 저녁 무렵이면 얇은 외투를 걸치고, 영화 시작 시간에 맞춰 극장으로 향한다.


오렌지카운티에 살던 시절엔 AMC가 가까워서 단골처럼 자주 찾았고, 가끔 부에나파크의 CGV까지 들러 한국 영화를 보기도 했다. 부에나파크에 다녀올 때는, 상영 전이나 후에 같은 건물 안에 있는 한식 푸드코트에서 간단한 저녁을 먹곤 했다. 지금 라스베이거스에서는 AMC보다는 REGAL 체인이 더 가까워 새로운 공간, 새로운 관람 환경 속에서 우리의 영화 관람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우리는 장르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영화를 본다. 다만 나는 호러 장르는 잘 보지 못해 피하고, 대신 로맨스, 액션, 드라마, 애니메이션까지 다양하게 골고루 본다. 어두운 극장, 커다란 스크린, 웅장한 사운드, 영화를 보는 세팅에서부터 몰입을 통해서, 나에게 영화는 현실의 걱정과 생각들을 잠시 내려놓게 하고, 완전히 다른 세계로 데려가 주는 장치이다. 나와는 전혀 다른 배경, 인종, 성별, 시대, 세계관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혀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시각을 얻기도 한다. 그리고 그 세상이 좀 더 강렬하게 다가오도록 해주는 것 같다. 또는 다른 누군가의 인생 이야기에 공감하며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는 위안을 받기도 한다.


때로는 큰 기대 없이 예매한 영화가 뜻밖의 감동을 주고, 또 어떤 날은 영화보다 서로의 반응을 관찰하는 게 더 재미있기도 하다. 손을 맞잡고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길, “예상하지 못한 엔딩이었어.” “근데 저 장면 진짜 좋지 않았어?” 같은 대화가 이어진다. 영화가 만들어준 여운은, 그렇게 우리 대화의 빌미가 된다. 영화가 우리 대화의 시작이 되고, 그 대화는 우리가 지금 어디에 마음을 두고 있는지, 무엇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해 준다. 언제는 영화 속 누군가의 선택을 두고 논쟁을 벌이고, 또 언제는 오래전 잊고 있던 기억이 불쑥 떠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화요일에 일어난다.


게다가 화요일은 주중의 가운데쯤에 자리한 날이다. 월요일의 피로가 아직 남아 있고, 주말은 멀게만 느껴지는 어정쩡한 시간. 그 애매함 속에서 우리는 극장으로 향한다. 팝콘 냄새가 살짝 배인 복도, 어두운 관람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스르르 꺼지는 불빛. 별다를 것 없는 장면들이지만, 이 모든 것을 같이 경험할 수 있어서 좋다.


무엇보다 좋은 건, 이 짧은 루틴이 주말까지 가기 전 우리에게 이 화요일은 작은 숨 고르기, 짧은 휴식이 된다는 것이다. 기다릴 필요 없이, ‘지금’ 이 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매일 반복되는 출근과 집안일, 식사 준비와 업무 회의 사이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는 짧은 쉼표 같은 시간이다. 큰 이벤트는 아니지만, 그래서 더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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