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함과 성실함으로
몇 달 만에 주말을 끼고 라스베가스에서 LA까지 차를 타고 내려왔다. 오렌지카운티에 살던 시절 교회에서 만나 친하게 지내던 부부들이 LA 다운타운 근처에 가게를 오픈했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도 할 겸 남편과 함께 들뜬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이른 아침, LA에는 빗줄기가 쏟아졌지만 카페에 도착할 즈음엔 햇살이 반짝이는 맑은 하늘로 바뀌어 있었다. 덕분에 카페로 향하는 길은 한층 더 환하고 기분 좋았다. 커피숍은 다운타운 LA, DTLA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고, 우리는 몇 년 전 아파트를 알아보러 다녔던 익숙한 거리 풍경에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다운타운 쪽은 언제나 파킹이 제약적인데, 다행히 이 커피숍은 지하 주차장을 갖춘 건물에 있어 여유롭게 주차할 수 있었다. 커피숍 건물 주차장에서 친구 부부 와이프들을 만나 함께 카페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반겨온 건, 갓 볶은 원두 향 같은 고소하고 부드러운 커피 향기였다. 코끝을 스치는 진한 향이 마음까지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카페는 실내 자리와 바깥 테라스 자리가 모두 준비되어 있었고, 우리는 화창한 햇살과 살랑이는 바람을 즐기며 페티오에 자리를 잡았다.
페티오에 앉아서 통유리 너머의 실내를 바라보니, 깔끔하게 정돈된 블랙과 화이트톤의 가구, 세련된 커피 머신들, 그리고 그 너머로 바쁘게 움직이는 지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테이블 하나, 의자 하나에도 수많은 고민과 준비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는 듯했다.
우리가 보는 건 단지 가게를 오픈한 ‘결과’ 일뿐이지만 그 이면의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공간 곳곳에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와줘서 고맙다며 커피숍에서 판매하고 있는 음식들을 대접해 줬는데, 우동면을 활용한 매콤한 까르보나라 파스타는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미니 햄버거나 메밀 비빔면에도 세심하게 더해진 고명과 간은 오랜 시간 고민하며 다듬었을 그들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창업이란 결국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가족 모두가 함께 짊어지고 걸어가는 긴 여정이다. 이 커피숍을 초기 기간 동안 수입이 불안정해지자, 한 부부는 아내가 외벌이를 감당하기로 결심했다. 남편의 꿈을 묵묵히 응원하며, 아내는 가정의 생계를 든든히 책임지고 있다. 또 다른 부부는 하루를 두 개로 나누어 살아가고 있었다. 남편은 새벽이면 본업에 출근하고, 오후에는 카페로 달려와 일을 돕는다. 주중에는 맞벌이로 함께 일하고, 주말이면 남편은 카페에서 풀타임으로 근무하며, 아내는 홀로 아이를 돌보고 집을 지킨다. 그들은 말 그대로 일주일 내내 쉼 없이 움직이며,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를 지탱하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그저 대단하다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얼굴은 땀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지만 “재미있게하고 있다”라고 웃으며 말하는 그 모습이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이곳은 단순히 커피를 파는 장소가 아니라, 그들의 오랜 성실함과 포기하지 않는 꾸준함이 모여 이루어진 공간이라는 것을. 조용히, 묵묵히, 하지만 단단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온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곳이었다.
늘 본받고 싶다고 생각해 온 부부들이지만, 이렇게 노력의 결실을 직접 보고 나니 그 감동은 더 깊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앞으로도 이들과 인연을 이어갈 수 있기를,
커피와 점심 메뉴를 맛있게 즐긴 뒤, 주말 풀타임으로 근무해야 하는 남편들을 카페에 남겨두고 우리는 한 부부의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였기에, 각자의 근황은 물론 커피숍 준비 과정까지 할 이야기가 참 많았다. 우리 모두는 오렌지카운티의 한 교회 신혼부부 셀에서 처음 만났던 인연이다. 당시만 해도 결혼 1~3년 차의 초보 부부들이었지만, 한 부부는 이제 아이를 키우며 삶을 꾸려가는 부모가 되어 있다.
나는 그저 손님으로 잠시 다녀온 것 뿐이지만, 그날의 시간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을 것 같다.
나도 나의 삶에서, 나만의 리듬으로, 좋아하는 것에 대해 성실하고 꾸준하게 한 걸음씩 나아가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