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쳇바퀴여도 지금 내려올 순 없어요
오렌지카운티에 살던 시절, 교회에서 친하게 지내던 부부가 LA 다운타운 쪽에 가게를 오픈했다. 축하도 할 겸, 놀러도 갈 겸 해서 오랜만에 LA로 향했다. 차가 덜 막히는 새벽 시간에 출발해 도착한 LA. 이번엔 기회 삼아 오랜만에 산타모니카(Santa Monica)와 베니스비치(Venice Beach)를 둘러봤다.
산타모니카는 우리가 처음 미국에 와서 LA의 기숙사에 살던 시절, 가까운 곳이라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었던 동네였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엔 자유롭게 나다닐 수 없었고, 몇 번 못 가본 채 그 시절은 지나가버렸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오히려 이렇게 기회가 날 때 더 소중하게 즐기고 싶어진다.
특히나 베니스비치 근처에는 베니스카날(Venice Canal)이라는 수로가 어우러진 동네가 있다. 아기자기한 주택과 조용한 수로, 아치형 다리가 어우러진 산책길은 늘 색다른 감흥을 준다. 1900년대 초, 한 부동산 개발업자가 이곳을 ‘미국의 베네치아’로 만들고자 실제로 운하를 파고 곤돌라까지 띄웠다고 한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훨씬 넓고 복잡한 수로망이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대부분 매립되고 현재는 일부만 남아 있다.
이곳의 집값은 상상을 초월한다. 예전에는 이 동네를 거닐며 ‘얼마나 열심히 벌어야 이곳에서 살아볼 수 있을까’라는 꿈같은 대화를 나누곤 했다.
그 시절, 남편은 다행히도 한국 회사에서 휴직을 하고, 나는 박사 과정을 막 시작한 상태였다. 한국에서 가져온 소소한 비상금을 야금야금 써가며 근근이 살아가던 때였다. 타이밍이란 게 참 중요한 게, 같은 회사에서 일하던 나는 남편보다 먼저 석사를 위해 휴직을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결국 퇴사했다. 휴직이 받아들여졌다면 우리 삶도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지 모른다.
박사 생활 당시, 학교 연구장학금을 받아 기숙사 비용을 내고 나면, 간신히 한 달 장을 볼 수 있는 돈이 떨어졌다. 그 외 차 보험료나 건강보험료 같은 다달이 빠져나가야 하는 돈은 한국에서 가지고 온 비상금으로 깎아먹으면서 지내고 있어서, 맥도날드 말고는 식당에도 가지 않고 긴축하는 나날들이었다. 가계부를 담당하는 남편은 그때는 마트 소식지를 뒤지며 장을 어디서 어떻게 볼지 장바구니 계획도 세웠다. 나는 기숙사에서 무료로 근방 식당이나 마트에서 유통기한에 가까운 음식/재료를 나눠주는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이 프로그램은 나눠주는 재료가 좋은 날도 그렇지 않은 날도 있었지만, 비슷한 처지의 대학생/대학원생 가족들에게는 감사히 활용할 수 있는 일용할 양식이 되어주었다.
코로나로 답답한 날들이 이어지던 어느 새벽, 우리는 어찌하지 못하고 쌓이는 스트레스로 처음으로 말리부로 향했다. 집에서 커피를 내려 담아 들고나가, 조용한 새벽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기숙사 근처에 있는 프리모 도너츠(Primo's Donuts)에 들러 폭신폭신한 도너츠를 하나씩 물고 걸어오면 지친 어제도 조금 괜찮게 기억되고 힘이 없는 그날도 그래도 시작할 만했다. 기억이 맛있어서 인지, 우리에겐 LA에서 가장 맛있는 도너츠 집이다.
미국에서 취업을 준비하던 남편은 우스개 소리로 나에게 매번 '가장, 열심히 공부해'라고 하며 집안 살림을 담당하며, 온라인 영어수업을 듣고, 이력서를 고쳐가며, 지원하고, 인터뷰를 보며 생활하고 있었다. 만약 일 년의 휴직기간이 지나는데도 남편이 미국에 취업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한국에서 직장을 두고 언제까지 여기서 맨땅에 헤딩을 해야 하나 고민이 이어지던 날들이었다. 나에게 다 털어놓지 못했겠지만, 남편도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감사하게도, 맨땅에 헤딩을 하던 7개월 정도 흘러, 남편은 LA 쪽에 있는 회사에 데이터엔지니어로 재택으로 채용되었다. 나와 같이 풀스택개발자로 시작한 남편은 한국회사에서는 데이터사이언티스트로 전환해 일을 하고 있었다. 미국에선 발표나 설득보다는 더 많은 개발 역량이 필요한 데이터 엔지니어로 전환한 셈이다. 덕분에 마이너스이던 가계부가 처음으로 플러스로 전환되었고, 긴축하던 생활을 조금씩 풀 수 있게 되었다.
긴축 계획을 빨리 접을 수 있어서였을까. 감사하게도 그 시절의 기억은 지금 생각하면 따뜻하다. 남편은 참 인내심이 많은 사람이구나 싶었고, 내가 흔들릴 때마다 괜찮다고 해준 남편 덕에 고비를 잘 넘겼다. 남편이 없었다면, 아마도 박사 생활 1년 차에 멘탈이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남편이 취업하고 몇 달 후, 나 역시 박사 과정을 그만두고 취업해 원격으로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기숙사를 떠나, LA도 떠났다. LA에서는 많이 아끼며 살았기에 그때는 커피숍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다시 오게 되면, 걸으며 사진을 찍고, 그 시간을 감사히 음미한다.
베니스비치를 둘러보는 중에 아침부터 쏟아지던 비가 그치지 않아, 우리는 베니스비치에서 컬버시티 다운타운으로 이동했다. ‘영화의 도시’였던 컬버시티에는 소니 스튜디오가 자리해 있고, 주변엔 커피숍과 레스토랑들이 아기자기하게 모여 있다.
이제는 커피 한 잔은 아끼지 않아도 된다. 이번엔 컬버시티의 독립서점 ‘Village Well Books & Coffee’에서 커피를 마셨다. 커피 한 모금에 주중에 가득 안고 있던 한숨을 한 번씩 내쉬는 기분이다. 이 아낌없는 커피 한잔에 지겨운 회사 생활을 삼킬 수 있는 것 같다. 분명 LA를 떠날 때는 우리 둘의 취업에 감사한 마음이었는데, 이제 회사 생활이 지겹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뭘까 생각을 해봤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출발할 때, 정말 재미있게 일했던 한국회사를 정리할 때, 우리는 미국에 정착하려고 온다고 생각했다. 5년이 흐른 지금, 그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않아도 될까라는 기대와 두려움을 나는 동시에 가지고 있다.
정착에 대한 생각이 멀어진 건, 인생이 계획하는 대로 되지 않는 거라는 걸 체험하는 횟수가 많아짐도 있지만, 꼭 장기적인 인생을 계획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라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55세가 될 때까지 연금을 쌓고, 은퇴자금을 모으고, 집값이 오를만한 동네에서 집을 사서 꾸역꾸역 대출을 갚아나가고,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
결국 일이라는 건, 시간과 돈을 맞바꾸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는 재택근무를 하고 있지만, 주중엔 야근이 일상이 됐다. 재택인데 무슨 야근이 있나 싶지만, 나는 스타트업 특성상 당장 내일 아침까지 필요하다고 하는 일은 새벽까지라도 마무리해서 전달해줘야 하고, 남편은 회사에서 두 번의 레이오프를 거쳐 줄어든 인원의 일을 다 도맡아 해야 한다. 그렇게 일을 하기 때문에 레이오프를 살아남았는지도 모른다... 이런 생활을 55세까지 해야 한다니, 그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이라는 게 싫다.
멋지게 들리는 머신러닝 엔지니어라는 직함. 하지만 실제로는 하루 종일 쿼리(데이터베이스에서 필요한 데이터를 꺼내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만 짜거나, 머신러닝 모델을 돌리고, 대시보드를 만들고, 웹도 만드는—그야말로 잡다한 일을 하는 직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루는 데이터도 어쩌면 혐오 발언의 집합이고, 그런 걸 바탕으로 만든 모델이 정말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걸까 싶을 때도 있다.
컬버시티에서 커피를 마시며 잠시 비를 피하고, 다시 산타모니카로 올라왔다. 예보대로 비가 그치고,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햇살과 구름이 어우러진 산타모니카의 풍경은 정말 캘리포니아 답다. 하지만 그런 풍경 속에서도 마음은 무겁다.
하는 일에 회의감이 들고 번아웃이 꼭대기까지 차올랐어도, 지금 당장 일을 그만둘 수는 없다. 이것이 착각일 수도 있고, 혹은 가족의 경제를 감당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현실일지도 모른다.
어릴 적엔 이 나이쯤 되면 뭐든 분명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어떤 길도 확실치 않고, 어떤 삶이 진짜 원하는 삶인지도 알 수 없다. 시간이 흐르고, 고민이 쌓여가도 우리는 여전히 방향을 모른다.
성실하게 살고 싶다. 하지만 내 성실함을 어디로 쏟아야 할지 모르겠다. 버킷리스트 꼭대기에 담겨있는 캠핑벤을 만들어 세계를 여행하는 것을 가장 먼저 실행해야 하는 걸까, 우리가 경제적으로 좀 더 안정되어 있는 시점까지, 인내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걸까, 그 안정이라는 것이 대체 얼마쯤을 의미하는지도 모른 채, 우리는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다. 아직 결정 내리지 못한 채, 어쩌면 계속 이렇게 쳇바퀴를 돌듯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는 오늘도 고민하고 있지만 시간에 이끌려, 결정 내리지 못한 채, 다시 내일로 흘러간다.
그리고 여전히 돌아가는 이 쳇바퀴 속에서, 아는 쳇바퀴여도 지금은, 내려올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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