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슈아트리 국립공원에서
본의 아니게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어떻게 보면 '미국 국립공원'여행기를 여러 차례 쓰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남편과 미국 생활 중 버킷리스트로 세운 것이 미국 국립공원 전체를 방문해 보는 것인데, 현재 63곳 정도 된다고 하니, 아직 갈 길이 멀다. 브런치 시리즈로 써보면 좋을 것 같아서, 국립공원들을 방문하면서의 그 여정의 추억들을 글로 남겨보고자 한다.
이번에 소개할 곳은 LA에서 내륙 사막 지형으로 향하는 길목에 만날 수 있는, 우리가 이미 다섯 번도 넘게 찾은 죠슈아트리 국립공원(Joshua Tree National Park). 우리 부부에게 이곳은 무엇보다도 별 사진을 찍기 위한 국립공원으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인공조명이 엄격히 제한된 이 지역은 밤이 되면 하늘 가득 별이 쏟아진다. 그 아래서, 죠슈아트리와 거대한 바위들을 배경으로 셔터를 누르고 있노라면, 지금의 삶이 그래도 괜찮은 것 같다는 안도감이 스며든다.
죠슈아트리 국립공원을 채우고 있는 거대한 바위들은 사실 1억 년 전 중생대에 형성된 화강암(granite)이다. 시간이 흐르며 풍화와 침식을 겪고, 지금처럼 둥글둥글하고 균열 많은 모습이 되었다. 거대한 바위들과 다양한 선인장들, 그리고 기묘한 생김새의 죠슈아트리를 볼 수 있는 수많은 트레일들 중에서, 우리가 특히 좋아하는 코스는 아치록(Arch Rock)과 하트록(Heart Rock)으로 향하는 길이다. 그 길에는 그늘 하나 없기에 짧은 거리에도 물과 모자는 필수다.
모래 위 트레일을 걷다 보면, 바닥 가까이 웅크리고 있는 치올라 선인장들과 크고 작은 바위들이 펼쳐진다. 그 풍경은 마치 디즈니 겨울왕국에 나오는 작은 트롤들이 뿅 하고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 그중에서도 하트록을 처음 본 순간, 이런 모양이 자연적으로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푸른 하늘 아래, 꼭 누군가 조각해 둔 것 같은 바위의 곡선은 지금도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
죠슈아트리에서의 수많은 추억 중 가장 마음에 남는 건 H 이모와 함께한 시간이다. 혈연은 아니지만, 엄마가 내게 “지금도, 늙고 아플 수 있는 나중에도 네가 잘해야 하는 사람”이라 할 만큼, 나에겐 둘째 엄마 같은 존재다. 우리가 미국에서 응급 상황에 연락할 수 있는 유일한 가족도 바로 이모네다. 이제 이모는 은퇴를 맞이에 멕시코로, 포르투갈로 쉴 새 없이 여행을 다니지만, 미국에서 지내고 있던 몇 해 전, 추수감사절에 죠슈아트리 근처 에어비앤비에서 가족 모임을 가지며 우리 부부를 초대해 줬다.
가족관계증명서 어디에도 그녀의 이름은 없지만, 마음속에선 둘째 엄마처럼 존재하는 사람. '이모'라고 부르지만, 사회적으로는 나와 아무런 혈연도 없는 관계다. 이모는 나의 엄마의 대학교 후배이자, 아빠의 대학원 후배다. 어릴 적부터 자연스레 우리 집을 드나들며 친해졌고, 유치원 시절엔 유행하던 동물 가방을 사주며 “초등학교 가면 돌아올게”라던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하지만 이모는 미국에서 가난한 박사 생활을 이어가느라 내가 초등학생이 되어 미국에 오기 전까지 다시 만나지 못했다.
첫 홈스테이에서 적응하지 못해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떼를 쓰던 내게, 이모는 부모님을 설득해 자신이 직접 나를 돌보겠다고 했다. 이모는 박사 과정을 하면서도 새벽엔 도넛가게, 오후엔 세탁소에서 일했다. 나도 이모를 따라다니며 세탁소에서 번호표를 받아 세탁물을 찾아주는 일을 도우며, 어린 마음에 그것이 하나의 놀이처럼 느껴지곤 했다. 박사를 마친 뒤에도, 그녀는 두 개의 석사를 더 따며 끊임없이 노력했다. 새벽에도, 늦은 밤에도, 늘 공부하고 글을 쓰던 삶.
결혼 후 남편이 이모를 처음 만났을 때, “장모님보다 이모님을 더 닮은 것 같다”라고 말할 정도로, 이모는 나에게 엄마 같고 언니 같은 존재였다. 인생의 큰 갈림길에서 고민할 때마다, 이모는 어떤 선택이 더 낫다고 말하진 않았지만 늘 따뜻한 위로를 건네줬다. 내가 박사 과정을 그만두려 할 때에도, “박사 하나보다 석사 세 개가 나을 수도 있다니까, 아니면 일하면서 돈 버는 게 낫지, 사는 방법이 하나뿐이니,” 하며 나를 위로했다.
그날 이모부 가족과의 땡스기빙 모임에 초대되어, 나는 내가 가장 자신 있는 딸기 타르트를 대형 사이즈로 두 판 구워서 들고 갔다. 국립공원 근처에 위치한 에어비앤비에 도착하자 어느덧 해는 저물고, 별들이 하나둘 머리를 내밀기 시작했다.
저녁 식사 후, 우리는 백 야드에 삼각대를 세우고 별 사진을 찍을 수 있게 카메라를 세팅하고는 의자에 나란히 앉아 조용히 이야기를 나눴다. 나에게 생활은 애매한 일상을 살아가는 방법은 배워가고 있는 단계 같은데, 나이를 더 먹어도 배움은 끝이 없다. 이모는 훨씬 더 많은 경험과 노력을 쌓아왔지만, 아직도 어떤 게 맞는 건지는 모르겠다고 한다. 그렇지만 어떤 길이든 어떠하냐고, 어떤 삶이든 어떠하냐, 그 작은 선택들을 맘에 들어하면 되는 게 아니냐고 한다.
그 말은, 마치 죠슈아트리의 모습과 겹쳐졌다. 선인장 같기도 하고, 나무 같기도 한데, 사실은 그 어느 쪽도 아니다. 하지만 그 모습 그대로 완전하게 자연 속에 존재하는 나무. 정의 내리기 어려운 형태임에도 수백 년을 버티며 살아온 그 나무는, 그 모양 그대로 자연의 일부로 완벽히 자리 잡은 존재. 문득, 그런 죠슈아 트리가 너무도 우리의 삶에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존재를 정의하자면, 나도 어쩌면 그런 존재일지도 모른다. 인공지능 개발자라고 말은 하지만, 어딘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머신러닝 모델을 다루고, 파이프라인을 구축하지만, 그 어느 분야에서도 완전히 '전문가'로 느껴지지 않는다. 코드도, 연구도, 어느 것 하나 스스로를 대표하지 못하는 듯한 불안함. 어중간한 위치에 있는 것만 같고, 뚜렷한 궤도 없이 흘러가는 커리어에 불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다고 또 다른 개발자들처럼 커리어의 궤를 정확히 밟아가고 있는 것도 아니다. 어중간한 사람. 애매한 실력. 눈에 띄는 무언가도 없는 존재.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나는 점점 나 자신이 점으로도, 선으로도 연결되지 못한 채 허공에 뜬 파편처럼 느껴지곤 했다.
하지만… 죠슈아트리처럼 애매한 생김새로도 존재할 수 있다면, 나도 괜찮을지 모른다. 명확히 정의되지 않아도, 누구와도 닮지 않아도, 세상의 한 부분으로서 충분한 존재라는 것을, 나는 그날 별이 쏟아지던 밤 이모와 나눈 대화 속에서 조금은 배운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나를 알아봐 주고, 오래도록 곁에 있어준 이모 같은 존재가 있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애매한 삶은 꽤 근사하게 빛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