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시간을 먹고 자라, 엄마가 된다니
임신 안정기에 들어서자마자 비행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로 여행을 다녀왔다. 샌프란 여행은 사실 자이언츠의 이정후 선수 경기를 보고 싶어서 이미 정해놓은 일정이었고, 무리만 하지 않는다면, 라스베가스 사막에서 잠시 벗어서 안개가 낀 샌프란시스코 서늘한 여름을 조금 즐겨보고 싶었다.
여행 중 하루, 샌프란에서 배를 타고 갈 수 있는 소살리토(Sausalito)에 갔다. 하루에도 여러 대가 있는 페리(출발지는 1 Ferry Building, San Francisco, CA 94105)를 타면 소살리토라는 마을로 건너갈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에 다녀가는 여행자들에게는 유명한 곳인데, 지역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차분하면서도, 소박한 타운이 형성되어 있어, 식당에서 맛있는 한 끼를 먹거나, 작은 기념품을 사기에도 좋다.
내가 관광 겸 소살리토를 방문한 날은 토요일이라 그런지 인근에서 자전거를 타고 소살리토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자전거를 잘 즐기지 못하는 나는, 특히나 산 길을 열심히 타고 올라가는 바이커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는데, 그중에서 한 바이커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우리는 바다가 보이는 커피숍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한 여성 바이커가 홀로 라이딩을 하며 우리 앞을 지나쳤다. 그녀는 내리막을 내려오며 속도를 살짝 줄였다. 허리를 곧게 펴고 바람을 맞으며 지나가는 그 한순간이 유독 선명하게 남았다. 힘들이지 않고 가볍게 페달을 밟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수월함은 분명 오랜 시간의 연습 덕분일 것이다.
아마 여성 바이커에게서 오랫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던 건, 엄마가 생각나서였을 것이다. 내게 엄마는 참 재능이 많은 사람인데, 특히나 운동신경이 정말 좋은 사람이다. 아이를 셋이나 낳고도 동네 줄넘기 대회에 나가서 대상을 받아오고, 체육대회 달리기만 나가면 늘 1등이었다. 그런 엄마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는 체육대회 아침이면 스스로 자신감이 넘쳤다. 엄마가 나가면 일등이 될 테니까. 어린 나는, 모든 엄마들이 그렇게 빠르고 강한 줄 알았다.
물론 운동신경이 뛰어난 엄마에게 딸 셋은 모두 운동면으로는 실망스러운 자식들이었을 수 있다. 나의 부모님 두 분 모두 체육계에서 종사하셨기 때문에, 엄마는 혹시나 자식 중 하나라도 특출한 운동신경을 보일까 싶어 자식 모두를 어려서부터 다양한 스포츠를 경험하게 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수영, 스케이트, 배구, 축구에서부터 리듬체조까지 정말 다양한 스포츠를 경험했는데, 대부분 나의 끈기 부족으로 그만두게 되었다. 나는 쉽게 지치고, 쉽게 포기하는 아이였다.
엄마는 나에게 대부분의 코치님들보다 혹독하고 더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물론 공부를 시킬 땐, 운동보다도 더 혹독했다....). 초등학교 시절, 나와 언니를 스케이트 연습에 데려가기 위해 엄마는 도시락을 싸고, 갈아입을 옷을 챙기고 새벽 네 시 반에 깨웠다. 우리는 잠결에 신발을 끌며 차에 올라탔다. 새벽 운동이 끝나면 우리는 엄마가 챙겨준 옷으로 갈아입고, 등교를 위해 학교로 차로 이동하는 동안에 아침 도시락을 챙겨 먹었다.
그 시간들은 이제 돌이켜보면 기적 같지만, 그때의 나는 그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시간이 그렇게 나에게 헌신적으로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을, 너무 일찍부터 당연하게 배웠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미국에서 고등학생 시설 배구팀 트라이 아웃(신입 팀원을 선발하기 위해 실시하는 테스트나 평가 과정)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첫날 나의 형편없는 실력을 밖에서 지켜본 엄마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배구공을 챙겨 동네 공터로 갔다. 그날 스파이크의 기본자세(벽을 이용해 공을 튀겨 올리고, 스텝을 밟고, 점프하며 팔을 휘둘러 공을 타격하는 연습)를 엄마가 원하는 만큼 채우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결국 원하는 팀에는 들지 못했지만, 코치는 놀랄 만큼 짧은 시간에 실력이 늘었다고 했다. 나는 결국 실패했고, 엄마는 여전히 현실적이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내 편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엄마를 통해 어떤 목표를 실제로 어떻게 달성해야 하는지, 그것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연습과 노력을 해야 하는지 배웠던 것 같다.
그렇게 나를 가르치던 엄마는 실제로 내가 예체능 쪽으로 대학에서 전공을 하고 싶다고 할 때는 나를 단호하게 만류했는데, '너는 예체능으로는 재능이 부족하고, 예체능은 재능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너무 가혹한 분야일 수 있다.'라는 게 엄마의 이유였다. 후에도 내가 참여하는 운동 경기를 보러 왔던 엄마는 우리 팀 에이스를 가리키며, '네가 33번 같았다면, 나는 너를 올림픽에 나갈 수 있는 종목에 올인했을 거다.'라고 아주 객관적으로 팀 에이스와 나를 비교했다. 당시에 나는 예체능의 벽이 가혹한 것보다는, 엄마의 말이 더 가혹하다고 느꼈지만, 엄마의 말을 인정했다. 엄마는 늘 현실을 가장 정확한 모양으로 말했으니까.
임신을 하고, 특히 딸을 기다리며 엄마 생각이 더 많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나는 엄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 속에서 다시 꺼내 보고, 나는 어떤 엄마가 될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호랑이 같은 엄마 밑에서 자란 나는, 호랑이 엄마가 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꼭 호랑이 엄마 자식이 호랑이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엄마는 뜨거운 태양 같아서, 나는 엄마를 너무 사랑하지만, 엄마와 너무 가까워진다면 나는 녹아내릴지 모른다.
호랑이 같은 엄마는 무섭기도 하고 자녀의 성장이나 성과에 집요하게 집착하는 편이다. 이것이 꼭 틀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건, 실제로 공부에 재능이 있던 언니는 호랑이 엄마와 엄청난 시너지를 뿜어내며 학창 시절 전교 탑이 되었다. 공부에 대한 집중도가 언니에 비해 한참 떨어졌던 나나 동생이 좋은 학업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도 엄마의 지원과 훈련 덕분이다.
그리고 호랑이 같은 엄마로 산다는 것은 본인의 삶은 한참 뒤로 미뤄두고 자식들의 삶만을 위해서 산다는 것이다. 나의 엄마는 자신의 시간을 자식에게 쏟아부었다. 아침부터 새벽까지, 자식이 자지 않으면 엄마는 같이 잠들지 않았다. 거실에 앉아서 같이 밤을 새우고, 시험 문제를 채점해 주고, 도시락을 쌌다. 원하는 학원이 있다면 몇 시간이고 가서 줄을 서고 상담을 받았으며, 매일매일 학원을 데리다 주고 대기하는 동안 근처를 배회했다.
엄마에게 엄마의 시간은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시간을 먹고 자랐다.
이랬던 엄마도 나이를 먹는지, 자식들이 성인이 되어 각종 시험과 취업에서 좌절을 경험하고, 직장에 다니면서도 갈팡질팡 하는 모습을 보며 조금씩 변해갔다. 어린 시절 내가 부엌에 들어오는 걸 질색팔색 했던 엄마는, 내가 회사를 다니며 힘들어하고 제과제빵에 관심을 갖자, “이제 와 생각하면 왜 그렇게 들볶았는지 모르겠다. 하고 싶은 걸 해도 된다”라고 말했다. 그 말은 오래 듣던 잔소리보다 낯설었다.
밖에서 바람을 누비며 타던 자전거를 이제 엄마는 헬스장이나 집 안에서만 페달을 밟는다.
나에게는 첫 아이이고, 엄마에게는 첫 손주라 임신소식을 처음으로 전할 때, 엄마는 매우 들떴고, 산후조리를 도와주러 오겠다고 약속을 했다. 엄마는 육아에 대해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을 전해줬다. 지금 살고 있는 동네에 사립학교는 어떠하냐, 어릴 때는 뭘 해보면 좋지 않을까, 등등 엄마의 들뜬 마음이 수화기 너머로 전해졌다.
하지만 정작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공부를 꼭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하며 행복하게 산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재미있고 좋아하는 취미 하나쯤 갖는다면 더 좋고,
운동 재능이 있다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억지로 키우고 싶지는 않다.
엄마에게는 전하지 못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육아관은 이렇게 자리 잡고 있다. 한편으로는 엄마만큼 자식에게 최선을 다할 수 없다는 생각도 한다. 엄마의 최선을 가지고 자라난 내가 치사하게도 나의 자식에게는 엄마만큼 모든 것을 바칠 자신이 없다(그게 좀 더 건강한 관계라는 생각도 들고....). 엄마의 시간으로 자란 내가, 내 아이에게는 나의 시간도 지키고 싶다. 내 직업도, 나의 삶도 놓고 싶지 않다. 물론 아이를 안아본 날, 마음이 또 바뀔 수도 있겠지만... 당장은 좋은 회사 좋은 포지션이라면 무조건 간다를 외치지만, 결국 아이의 학원이나 경기를 따라다니면서도 일을 할 수 있게 계속 재택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로 마음이 바뀔지도....
임신 소식을 알리면서도 출산휴가를 걱정하는 딸에게 엄마는 또 너그럽게 엄마의 도움을 제공해 준다. 엄마의 시간은 나를 키웠고, 엄마의 시간을 먹고 자란 나는 또다시 내 자식을 키우기 위해 엄마의 시간을 빌리게 되겠지... 엄마의 희생이 너무 고맙고도 미안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너무나 사랑하던 외할머니도, 나의 엄마를 재능이 넘치고 미래가 빛나는 아이로 키웠겠지. 나는 나의 딸이 나의 엄마를 많이 닮았으면 좋겠다. 활기차고 운동도 잘하고, 자신감 있게 자라면 좋겠다. 내가 자란 것처럼, 할머니의, 엄마의 사랑을 가득 받으며 자라길. 그 사랑으로 두려움도 좌절감도 이겨낼 마음을 키워낼 수 있길.
그리고 엄마가 나의 곁에, 아이의 곁에, 우리의 곁에 오랫동안 행복하게 있어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