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만큼 쌓여간 감사한 기적들
어두운 밤이 지나면 떠오르는 아침해를 만날 수 있음에, 우리는 종종 어두운 시간을 통과하는 의미를 새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어두운 고난이 우리 삶에 빈번히 찾아온다 해도, 분명 그 끝에는 그 시간을 통해 얻은 깨달음과 성장이 기다리고 있음을 나는 믿는다. 그리고 나는, 밤의 어두움이 짙을수록 별빛이 더욱 또렷해지는 것 또한 어둠이 남기는 의미를 더한다 생각한다. 깊은 어두움일수록 빛은 더 선명해지기에, 비록 힘든 때라도 그때 허락되는 희망과 감사는 선명하게 다가온다.
평범한 일상에서 건강에 빨간불이 켜지고 급작스럽게 투병을 하게 된 그해 가을이었지만, 돌아보면 나는 그 짧은 기간 동안 수많은 기적을 경험했다. 고통이 컸기에 나는 삶에 대해 절박했고, 그래서 나에게 허락된 기적도 더 분명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던 듯하다. 비록 내 계획에 없던 병을 앓는 시간이었지만, 내 힘으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닌 크고 작은 기적들이 쌓여갔다. 그때 고통은 힘들었지만, 나는 하나하나 내가 겪은 기적 같은 감사를 마음에 새겼다. 투병 중이었지만, 나는 내가 수많은 기적들을 걸어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그만큼의 기적들이 나에게 허락되었음에, 나는 그저 감사했다.
타이밍 - 수술과 건강보험
11월 6일 흉선종 제거 수술일이 잡힌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 기적 중의 기적이었다. 미국에서는 병원을 가는 것이 한국만큼 쉽지가 않다. 우선 건강보험이 있어야 하고, 주치의 (Primary Care Doctor)가 있어야 병원 방문이 필요할 때 스케쥴링과 각각의 검사들이 원활하게 진행된다. 그해 처음으로 건강보험을 가진 나는 주치의의 필요성을 몰랐고, 그래서 담당 주치의가 없었다. 그렇다 보니 내가 막상 병을 만나 필요한 검사들을 하고 전문의를 만나야 했을 때 그 누구도 빠른 진행을 도와줄 수가 없었다.
이모는 내가 주치의를 찾고 신경과/흉부외과/암전문의등 각 분야의 전문가를 만날 수 있도록, 나를 도울 수 있는 의사들을 찾고자 몇 날 며칠 동안 수백 통의 전화를 수많은 의사들에게 하셨다. 진행속도가 비교적 느리고 몇 달 전 예약이 필수인 미국의 시스템 속에서, 나는 이모의 포기 않는 노력 속에 너무도 극적으로 각 분야의 전문의들을 한분 한분 만날 수 있었다. 미국과 비교를 하면 한국은 치료를 위한 진행절차가 훨씬 빠른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9년 당시 한국에서 이 수술을 스케줄 하려면 최소 6개월에서 1년이 걸린다는 정보를 전달받았었다. 나는 호흡곤란으로 비행기를 탈 수 없어 한국에 가서 치료를 받는 것은 욕심낼 수 없었고 미국에서 치료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랬던 나에게, 9월 중순 병이 드러난 후 2개월도 채 되지 않아 수술이 가능케 되었으니 - 11월 초 수술을 한다는 소식에 모두들 불가능한 일이 일어났다며 놀라워했다.
응급실 방문 및 입원, 수술이 가능하도록 나에게 건강보험이 주어진 것 또한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2018년 H-1B 체류신분을 얻고 난 후 2019년 1월부터 나는 회사의 복지혜택으로 건강보험을 소지하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응급실을 한번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몇만 불까지 지불할 수 있는 상황임을 생각하면 희귀병을 앓는 내가 수술 전까지 지불해야 할 병원비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혈장교환술, IVIG 등은 한번 치료마다 상상할 수 없는 가격이 요구되었다. 수술을 마치고 모든 병원비가 정산되었을 때 내가 받은 치료비용 청구서는 2019년 그 당시 한국 원화로 무려 7억 원이 넘었다. 하지만 나는 건강보험 덕분에 보험약정에 따른 연간 자기부담금 (deductible amount) 7000불만 지불하고 모든 비용은 보험혜택을 받았다. 나는 아픈 동안 마음 놓고 병원을 갈 수 있고 입원할 수 있음에 - 그리고 행여라도 가족들에게 어마어마한 비용의 부담을 떠안게 하지 않아도 되었음에 수백만 번 안도했다.
최적의 조건
병원에 입원 후 흉선종의 수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푸근하고 인자한 인상의 백인 의사 선생님이 나를 찾아오셨다. 흉부외과 의사라고 밝히신 그분은 나의 흉선종 제거 수술을 집도할 거라 하셨다. 그리고 겸손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자신이 로봇수술의 일인자이고 로봇수술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활동하고 있으니 내게 흉선종 제거수술은 걱정 말라고 하셨다. 얼마 후, 나는 그 당시 2019년 한국에서 로봇수술로 흉선을 제거하려면 우선 로봇기계를 찾는 것이 어렵고 로봇수술을 하는 전문의를 만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로봇수술이 불가할 때는 가슴 앞을 길게 절개하여 몸을 열고 갈비뼈를 일부 잘라낸 뒤 흉선을 제거한다는 것을, 그렇게 수술을 마친 후 회복 중이라는 환자의 수기를 읽으며 알게 되었다. 로봇수술이 가능하지 않을 때에 그 정도 규모의 큰 수술이 진행된다는 것을, 다른 환자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된 나는 몸서리치게 놀랐다. 수술날이 다가올수록 두려움과 떨림도 커졌지만 로봇수술 전문가로서 안전한 수술을 약속해 주신 집도의를 만난 기적에 나는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내가 사는 곳의 위치 또한, 꼭 그해 그 병을 치료하라는 듯 준비가 된 곳이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여동생과 단둘이 살던 나는 2019년 일터와 좀 더 가까워지고 삶의 환경을 바꾸기 위해 친척들이 많이 계시는 곳으로 이사를 했었다. 새로운 동네를 늘 다니면서도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몰랐던 나는, 병이 드러나고 나고서야 큰 종합병원과 수많은 전문의들의 오피스들이 우리 집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수술을 하기 전까지 고통스러웠던 2달의 시간 동안 나는 응급실에 여러 차례 달려가야 했는데, 호흡곤란과 같이 긴급한 순간에도 나는 가까운 거리 덕분에 병원에 빠르게 당도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친척분들 또한 내가 이사한 곳에서 15분 거리에 계셨기에 나의 투병기간 동안 모두가 쉽게 달려오시고 나를 돌보아주실 수 있었다.
도움 주시는 마음
투병이 시작되면서 우리 집에는 많은 의료 장비들이 늘어났다. 우선 다리에 힘이 없어 계속 넘어지고 결국 걷지 못하게 되었기에 나를 보조해 주는 walker, cane, wheel chair부터 시작하여 사용의 쓰임새도 이름도 생소했던 각종 medical supplies들이 필요했다. 내 건강보험을 통해 요청해야 하는 물품들은 점점 늘어났는데, 의료 장비 준비에 시간이 걸리다 보니 나빠지는 내 몸의 속도보다 물품준비가 늦은 때가 많았다. 그럴 때면 의료장비를 비즈니스로 다루시는 외삼촌댁에서 내가 필요한 것들을 하나하나 빠짐없이 제공해 주셨다. 위급하고 어렵고 외롭던 순간에도 외삼촌 외숙모의 즉각적인 배려는 그런 부분에서 무지했던 나에게 너무도 현실적인 큰 서포트였다.
회사에서는 내가 마음 편안히 수술을 하고 병을 이길 수 있도록 3개월의 유급휴가를 허락해 주셨다. 취업비자 소지자이자 미국 영주권 신청등이 진행되고 있었던 그 당시 상황에서, 나에게는 미국 이민법 규율에 어긋나지 않도록 회사와 고용상태가 잘 유지됨이 매우 중요했다. 더군다나 앞으로 내 병의 경과가 어떻게 될지 모든 것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병가를 내야 하는 것이 나는 너무 죄송스러웠다. 하지만 회사는 내가 병을 이기고 회사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긴 유급휴가를 허락해 주셨고, 나는 미국에서 안전히 치료받을 수 있도록 기적 같은 선물을 받았다.
그렇게 많은 분들의 도움과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놀라운 보살핌 속에 수술날짜가 다가오고 있었다. 감사함을 숨 가쁘게 내뱉으며 쓴 위의 글이지만 나의 부족한 기억력으로 더 고백하지 못한 기적이 많음에 틀림없다. 오늘 나는 미국 이곳에서 수술 후 6번째의 내 생일을 맞았고, 이런 기적과 누군가의 돌보심을 고백할 수 있음에 또 한 번 더 감사하고 있다. 그리고 11월 6일 수술날에는, 놀랍게도 또 다른 기적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