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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일상으로 돌아올 확률 50%

희망이 있기에 버티는 하루살이

by Joyce 노현정

'다시, 숨쉬고 걷는 기적'을 쓰고자 처음 마음의 결심을 했을 때, 나는 아픈 이야기를 자세히 기술하는 부분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얼마나 상세하게 병의 정보를 전달할지, 얼마나 솔직하게 고통에 대해 쓸 수 있을지, 나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했다. 무엇보다 아픈 이야기를 읽으시는 분들께 괜한 무거움을 드리고 싶지 않았기에, 고통의 기억을 나열하기보다는 그저 내가 느낀 감정과 깨우침들에 집중해서 기록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결국 내 마음은, 아팠을 때 시간순차에 따라 변화한 증상 및 치료과정을 자세히 쓰는 방향으로 향했다. 그 이유는 내가 아팠을 당시, 참고할수 있는 다른분들의 경험을 읽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우선 난치희귀병이기에 병을 앓은 분들이 숫자적으로 적은 것이 사실이었고, 혹 누군가의 투병 기록을 찾게되어도 내 마음에 안정과 안심을 쌓기는 쉽지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흉선종과 중증근무력증으로 투병했던 시간을 조금 더 자세히 기록하려 노력하고 있다. 그때의 나와 같은 마음으로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공감과 위로가 닿기를 한번더 바래본다.




혈장교환술을 4번했을 때도 변화가 없던 내 몸은, 추가로 더해진 3번의 혈장교환술을 통해 아주 조금씩 차도를 보였다. 우선 언제 발생할지 몰라 더 두려웠던 호흡곤란 증세가 나아졌기에, 그로 인한 고통도 줄고 잠도 조금은 더 잘 수 있었다. 물 한 모금 마시기 어려울 만큼 심각했던 연하작용도 조금의 차도를 보여, 엄마가 만들어주시는 죽을 소량이라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혈장교환술을 하는 동안 가장 감사한 소식은, 나의 치료를 위해 너무나도 애를 써주신 이모 덕분에 흉선종 제거 수술날이 11월 6일로 스케줄 된 것이었다.


종양일까, 암일까

흉선종은 비교적 천천히 자라는 비암성 종양과 주변장기 침범과 림프절전이가 활발한 흉선암으로 구분된다고 한다. 나의 경우는 흉선종이 암과 같이 아주 공격적으로 빠르게 자라고 있었다. 내가 아주 짧은 시간 내 중증근무력증 위기에 급격히 치달은 이유도 무섭게 자라나는 흉선종 때문이었을 거라 생각된다. 응급실에서 처음 흉선종이 발견되었을 때, 장기침범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상황상 흉선암으로 의심되는 정황도 있었는지 나는 암 병동에 입원해야 했다. 흉선종의 위치는 가슴 내부이기에 흉부외과의 도움이 필요했으며, 중증근무력증은 신경과 전문의가 필요했다. 그래서 두 번째 입원수속 후에는, 암전문의, 흉부외과 의사, 3명의 신경과의사 등 모두 5명의 의사 선생님들께서 나를 지켜보고 계셨다. 이 병을 앓는 경우가 워낙 흔치 않고 나의 상황이 급격히 변화했다 보니, 의사 선생님들도 내 상황을 예측하기 어려운만큼 늘 예의주시 하셨다.


흉선종은 분명 계속 자라고 있는 듯했다. 폐는 아주 깨끗한데 심각한 기침은 변함이 없었고, 심지어 종양 때문에 딸꾹질까지도 기침처럼 몇 시간을 하며 멈추지 않았다. 10월 중순이 지나며 새로운 증상이 또 나타났는데 그것은 몸의 근육에 제멋대로 경련이 오는 것이었다. 근육경련 또한 호흡곤란과 같이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경련이 오면 반듯했던 내 몸이 침대에서 3-5cm가량 붕 떠올랐다가 다시 침대로 떨어졌는데 십여 분마다 한 번씩 찾아오는 경련에 때때마다 몸에 느껴지는 통증이 상당했다. 여전히 다리에 힘이 없어 걷지를 못하니 서있다가도 뒤로 넘어져서 MRI 찍기를 반복했던 나였는데 - 이제는 잠시 앉아있을 때에도 근육경련때문에 내 몸이 의자에서 붕- 떠오른뒤 튕겨져 나와 머리를 부딪히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그럴때마다 엄마는 달려와 내 머리를 감싸안았다. 근육경련의 증상은 의사들도 예측 못한 부분이었던듯하다.


수술 가능성 여부

7번의 혈장교환술 후 조금씩의 차도에 감사했지만, 흉선종 제거 수술을 집도할 의사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내 몸은 수술을 받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긴 수술과 전신마취를 하기 위해서는 내 몸에 체력과 근력이 필요했는데 중증근무력증 때문에 음식섭취를 못하고 약해진 내 몸의 상태가 상당히 염려스럽다 하셨다. 무엇보다도 전신마취 약물은 중증근무력증 환자의 근육 수축능력을 더욱 저하시킬 수 있어서, 나의 상태로는 수술 후 다시 깨어날 수 있는지 여부가 불투명하다고 하셨다. 수술 후 일시적으로 중증근무력증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 또한 크게 높아지기에, 호흡 부전 위험이 훨씬 증가하는 것 또한 염려사항 중 하나였다.


중증근무력증은 흉선종이 없어도 발생할 수 있는 자가면역질환이다. 피로와 스트레스에 장기간 노출되었을 때 발생한다고 한다. 아주 일부의 중증근무력증 환자 중에는 나와 같이 흉선종이 발견된다. 흉선종의 유무를 떠나 흉선을 제거하는 것은 중증근무력증을 치료하는데 도움이 되기에 수술이 많이 고려되는데, 특히 나는 이미 커다란 흉선종이 발견되었기에 수술은 꼭 필요한 절차였다. 다만 흉선을 제거하여도 중증근무력증이 완전히 치료가 된다고는 볼 수 없기에, 나의 경우에는 흉선종 제거 후 내가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오는 확률이 50%라고 하셨다. 상황을 정리해보면, 암처럼 크고 있는 흉선종은 제거되어야 하고, 흉선종이 제거되어야 중증근무력증 증상도 좀 나아질 수 있을 텐데, 중증근무력증 때문에 흉선종 제거수술이 어렵고, 수술을 해도 나의 회복여부는 불투명한 것이었다.


그 당시 나는 떠지지 않는 눈꺼풀 때문에 실눈을 뜨고서 남들 몰래 혼자서 많은 리서치를 했고, 열손가락 안으로 꼽히도록 유사한 케이스들을 찾았다. 너무 안타깝게도 수술 뒤 예후가 좋지않는 케이스들이 많았다. 하지만 수술 후 정상의 삶을 사시는 두 분의 케이스도 찾았다. 모두가 더 회복한 상황이 되셨길 간절히 바라면서, 나는 긍정적 상황의 두 가지 케이스만 떠올리기로 했다. 생각하는 것들을 내 삶으로 끌어들일수 있다고 믿기에, 부정적인 생각은 머릿속에서 완전히 차단하려고 애썼다. 하루에도 몇 번씩 두려움은 밀려들었다. 하지만 나쁜 상상이 조금이라도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오려 하면 나는 행여 정말 그것이 현실이 될까 머리를 마구 흔들며 떨쳐내려 했다. 내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확률이 50퍼센트. 심지어 수술 직후 내가 깨어날 수 없는 경우의 수도 있었지만, 나는 수술을 꼭 빨리 하고 싶었다, 그래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확률이 50퍼센트나 있으니까 말이다. 수술 후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가 두렵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나는 꼭 깨어날 것이라 그저 무모하게 믿었다. 수술이라는 희망이 없었다면 버티는 나의 하루하루 고통은 더 컸음에 틀림없었다.


중증근무력증의 치료방법 중에는 내가 7번을 했던 혈장교환술과 비슷하게, 혈중의 자가항체를 줄이는 목적으로 건강한 혈장을 집어넣는 정맥 면역글로불린 주사 치료법(IVIG)이 있다. 고민이 많았던 나의 담당의사 선생님들은 IVIG를 추천했고 나는 11월 6일 수술을 꼭 받기 위해 10월 말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아팠던 내 몸은 하루하루를 버티는 하루살이와 다름없었지만, 나는 절박하게, 간절하게, 내 삶의 희망을 놓지않기 위해 11월 6일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고통 속에 잠들어도 나는 다음날 눈을 뜰 수 있는 내 몸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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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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