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2025년이 어느새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올해 나는 아프기 전보다 더 건강해진 모습으로 돌아왔고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 지난봄에는 시부모님께서 미국을 방문하시어 귀한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었다. 미국에 떨어져 있기에 자주 뵙지 못해 늘 죄송한 마음이 큰데, 한 달간 집에서 모시면서 여행도 많이 다니며 나와 남편은 기쁜 봄을 보내었다. 여름에는 나를 병간호하며 많은 수고를 했던 여동생이 결혼을 했고, 그 덕분에 친정가족이 미국을 짧게 방문했다. 나의 수술이 있었던 2019년 이후 부모님의 미국 첫 방문이고 이번에는 막내 남동생도 함께 동행했다. 늦둥이로 태어난 막내 남동생은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리다. 내가 스무 살에 유학을 오는 바람에 지난 20년간 남동생과 함께 한 시간은 정말 손에 꼽을 만큼 짧지만 나에게 남동생은 참 소중한 존재다.
남동생과 오랜만에 귀한 시간을 보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큰누나에겐 글을 쓰고 싶은 꿈이 있다고 말했더니 남동생은 내게 얼른 도전해 보랬다. '준비된 글이라고는 3편 정도밖에 없는데 어떡하지'라고 했을 때, 동생은 '원래 모든 일은 시작 후 계속 꾸준히 만들어가는 것'이라며 3편의 글도 도전에는 충분하다 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열 살이나 어리지만 듬직한 남동생이 채워준 용기 덕분에 나는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을 찾기 시작했고 브런치 작가라는 낯선 기회에 덜컥 신청을 했다. 너무 감사하게도 나는 바로 다음날 작가자격을 얻었는데, 그때 나는 또 하나의 오랜 꿈이 이루어진 듯 행복했다. 모르고 있었을 뿐, 나는 사실 오랜 시간 글이 너무도 쓰고 싶었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픈 후 언젠가 한번, 엄마에게 투병했을 때를 글로 쓰고 싶다고 했을 때, 엄마는 글쓰기야 말로 치유가 될 테니 좋은 생각이라고 하셨었다. 하지만 왜인지 아픈 때를 돌아보는 것이 내겐 쉽지가 않았다. 8화에 나온 것처럼 중증으로 너무 힘들었던 순간을 회상하면 더 이상 그때를 떠올리고 싶지 않아 내 마음은 뱅뱅 맴돌기만 했고 글 쓰는 것은 꾸준하질 못했다. 그 후 몸이 회복하면서, 나는 일상에 가까워질수록 나의 일을 잘 해내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었고 그래서 일에 몰두했다. 특히 지난 1년 안정적인 시간을 보내며 내가 겪은 질병들도 과거 속으로 희미해지는구나 싶었는데, 늘 마음 한켠이 불편했다. 글쓰기라는 해야 할 일을, 하고 싶은 일을 아직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임을 깨닫고서는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브런치로 왔다. 놀랍게도, 브런치에서 연재가 시작되고서는 순식간에 기쁜 마음으로 한 편 한 편을 쓸 수 있었다. 너무 오랜 시간 마음속에 머금고 있던 생각들이어서 그런지 글로 토해내는 순간 쏟아져 나왔다. 애초에 12편으로 계획되었던 연재는, 쳐다보지 못했던 아팠던 시간을 자세히 기술하다 보니 16편으로, 또 18편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브런치북 연재를 시작하려면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라는 설명이 채워져야 할 blank 항목을 만나게 된다. '다시, 숨 쉬고 걷는 기적'을 위해 내가 빈칸에 매워 넣은 설명은 사실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과 다름없었다. '미래만을 생각하며 현재의 행복을 놓쳤던 나', '난치희귀병을 투병을 했던 나', '병을 앓은 후 내 꿈을 위해 다시 일어나지 못할 거 같아 두려웠던 나' - 그런 나에게 쓰는 글이었다. 일상 업무를 하면서 일주일에 2편을 쓰는 것이 내게 쉽지는 않았지만, 나는 지난 2달 동안 글을 쓰며 너무 행복했다. 혼자 글을 쓰며 울기도 했다. 그때의 두려움을 마주했을 때, 또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고마움이 벅차오를 때 눈물이 흘렀다. 나에게 이번 글쓰기는 마치 그동안 들여다보지 못한 채 구겨 던져버린 마음을 하나하나 반듯하게 펴내는 작업이었고, 그래서 마음의 치유 또한 이루어졌다. 뒤엉켜있던 지난 5년의 시간은 이제 언제든 열람할 수 있게 내 안에서 정리정돈 되었다.
미국에 계시는 분들 중에 아직 브런치에 익숙하지 않아 내 글을 찾기 어려워하시는 분들이 계셨고, 나는 그래서 별도로 Link를 많이 보내드렸다. 어려운 시간도 감사로 지내는 법을 배웠다는 분들이 많이 계셨다. 하루하루가 기적이기에 옆에 있는 미운 사람도 더 이상 밉지 않고, 육아로 바쁜 와중에도 아이들에게 더 정성을 다하게 되었다는 지인들의 연락들에도 너무 감사했다. 혹시라도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는 누군가에게라도 내 글이 작은 위로가 되었다면 나는 그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할 따름이다. 정말 우연하게도, 이번 연재의 첫 번째 글은 병이 발병했던 날로부터 정확히 6년째 되던 때 시작되었고 수술 후 퇴원한 즈음으로부터 6년 뒤인 시점에서 마무리되었다. 나의 소소한 고백들을 이어갈 수 있었던 시간이 나에게 허락되었음에, 나는 다시 한번 더 감사하다는 기도를 하게 된다.
이번 '다시, 숨 쉬고 걷는 기적'은 내가 쓰고 싶은 기적 시리즈 3가지 중 첫 번째 내용이다. 구상하고 있는 기적시리즈 두 편을 앞으로도 꾸준히 잘 써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돌아보니 미국에 지내면서 브런치라는 공간은 처음 접하는 낯선 곳이었기에 모든 것에서 나의 미숙함이 묻어 나왔던 듯하다. 나에게 꾸준하게 글을 기록할수 있는 공간을 허락해 준 브런치에 너무 감사하다. 글을 쓸 수 있어서, 올해의 가을은 충분히 넘치게 행복했다.
부족한 글을 한국에서 미국에서 읽어봐 주신 가족, 친척, 친구, 지인, 독자분들과 관심 가져주신 브런치의 작가분들께 감사하다는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그동안 지난 시간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글쓰기에 몰입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독자분들께서 물어봐주신 몇 가지 사항을 담은 [번외 편]을 오는 토요일 마지막으로 올리면서 이번 연재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