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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기적은 매일 일어나고 있습니다.

끝맺는 이야기 - 잊고싶지 않은 깨달음

by Joyce 노현정

고통이 각인된 시간들 때문인지 몰라도, 아픔에서 자유로워져 삶으로 돌아왔다고 느낀 순간순간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물조차 삼키지 못했던 내가 회복 후 출근길 아주 연한 모닝커피를 조심조심 목으로 넘겼을때, 나는 어찌나 행복했던지 하늘을 바라보며 '삶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했다. 아픈 후 4개월 만에 치킨을 한입 베어 물던 순간, 6개월 만에 라면을 한입 가득 넣을 수 있던 때도, 나는 손바닥을 치며 참 신나 했었다. 다시는 평범한 일상을, 그 소중함을 잃고 싶지가 않다.


몸이 다시 좋아지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종종 과거의 내 모습이 튀어나오고 많은 욕심들이 차오른다. '내가 아프지만 않았다면 지난 5년간 나는 얼마나 더 발전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나를 덮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앞만 보고 달리려는 내가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는구나'싶어서 그런 불필요한 생각들을 싹싹 긁어모아 머리밖으로 던진다. 병들과 싸우고 회복해야 했던 시간도 소중한 내 인생의 일부였음을 - 그 이유가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삶에 찾아오는 뜻밖의 순간들은 각각의 의미가 있음을 이제는 안다. 불쑥불쑥 욕심이 올라올 때는, 나는 큰 목소리로 내게 말한다, 6년 전 그때 내가 병마를 이기고 살아난 것이 제일 감사한 일이라고,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잘했다고.




경험하고 있는 변화들은

투병과 회복의 시간 이후, 나는 스스로 느끼기에도 바뀌었다 싶은 몇 가지가 있다. 그중 내가 가장 귀하게 느끼는 것은, 이제는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전의 나는 타인에게는 관대하지만 나에게는 높은 잣대를 들이밀며 나를 아끼지 못했다. 늘 나의 모습이 부족하다 생각되어, 발전하고 바뀌어야 하는 것만 생각하며 나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아픈 뒤로는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 아픈 곳 없이 하루를 온전히 보낸 내가 기특하고, 뚜벅뚜벅 내 두 발로 가고픈 곳을 갈 수 있는 내가 대견하다. 내 몸이 말하는 것에 귀 기울이고 내 마음이 평안한 지를 가장 먼저 들여다본다. 스스로에게 무심했던 내가 나를 1순위로 사랑하는 것은 삶에서 실질적으로 많은 평온함을 가져다주었다.


또 하나 고백하고 싶은 변화는 사소한 것들에도 더 많이 감사하게 된 나의 모습이다. 생각해 보니 과거의 나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늘 하긴 했었지만, 얼마나 일상의 소소한 감사를 마음 깊이 담았었던가 돌아보게 된다. 복시가 아니고 눈꺼풀이 감기는 어려움 없이 모든 사물을 깨끗이 볼 수 있음에 매일매일에 감사한다. 삼킴의 어려움 없이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왁자지껄 웃으며 함께 식사할 수 있는 것은 삶에서 느끼는 참 감사한 행복이다. 7화에서도 썼던 표현이지만, 우리 하루하루에는 누릴 수 있는 행복이 참으로 수만가지 이다.


감사할 일이 더 많아져서 인지 나는 더 표현하는 나로 바뀌고 있다. 호흡곤란이라는 어려움을 겪어서인 듯하다, 나는 생명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강하게 체험하였고 그래서 우리들은 언제든 예상치 못한 순간에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늘 실감하고 있다. 그 깨달음이 삶의 허무함 또는 두려움을 가져다준 것은 절대 아니며, 오히려 내게는 그러한 삶의 섭리가 나의 마음을 표현하게 만들었다. 고마운 것, 기쁜 것, 그리운 것, 행복한 그 감정들을 전달하지 못한 채 마음에 묻어둔 채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기때문에, 전하고 싶은 진심은, 예쁜 말은, 감사와 사랑은, 더 많이 베풀고 싶다.


그리고 나는 내일은 오늘보다 더 좋은 일을 가져올 것임을 믿으며 살게 되었다. 삶은 참 모를 일이다. 그렇게 아플 줄도 몰랐지만 이렇게 회복할 수 있을 줄도 몰랐다. 너무 아팠지만 그 시간을 통해 평생 가슴에 품고 갈 큰 배움이 있다면 나쁜 일이 꼭 그렇게 나쁜 일만은 아님을 배웠다. 그래서 이제는 믿는다, 사소한 것이라도 내일은 나에게 더 좋은 것이 다가올 것이기에 괴로워하거나 슬퍼하는 사이 그 좋은 것을 놓치기 싫다고 스스로 이야기한다.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분명 내일은 시행착오 속에 살아낸 오늘보다 나을 것이고 우리는 더해져 가는 하루하루 속에 궁극적인 삶의 평안을 쌓아갈 것이다.


감사는 하루속의 기적들을

흉선종제거수술 이후 정기적으로 받던 흉선종 추척검사마다 너무 감사하게도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 난치병 중증근무력증도 이제 일상에서 특별한 어려움 없이, 약물치료 없이 지낼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하다. 아프기 전에는 아침에 눈뜨는 것이 싫을 때가 있었다. 해내야 할 일이 많고 해도 해도 변하지 않는 것 같은 현실이 무거워 그냥 계속 눈을 감고 있으면 좋겠다 생각한 적이 사실 많았다. 이제는 절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매일매일 눈을 뜨는 것은 기적이고 온전하게 호흡할 수 있는 것은 축복이다. 너무도 흔한 말 같지만 하루하루가 선물이라는 말을 강렬히 인지한다. 나도 모르게 불안함이 찾아올 때는 그저 조용히 기도한다. 작은 기적들이 모여 내 삶이 영위되고 있기에, 결과만을 바라보기보다는 걸어가는 과정을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


아팠던 시간을 잊고 싶지 않고 그날을 기억하며 삶을 더 감사하고 싶다. 극하게 아팠을 때 기적이 쏟아졌던 것을 생각하면 사실 기적은 우리 일상 곧곧에 보물 찾기처럼 숨어있는 것과 다름없다. 감사할수록 지금의 삶이 이미 기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기적이라는 이 예쁜 단어는 나에게 더 이상 거창한 단어가 아니다, 기적은 매일매일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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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