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 후 5년의 시간
흉선종 제거 수술 후 몸을 회복하면서, 내가 그저 바랐던 것은 내가 부디 “내 몫”을 하고 살 수 있는 것이었다. 거동은 커녕 침대에서 누워만 있어야 했던 시간을 지났기에 나는 내 힘으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참 신기하게도 아팠던 날로부터 100일 즈음이 지난 12월의 어느 날부터, 힘들었던 증상들은 상당히 완화되었다. 숨을 못 쉬는 것, 음식을 못 삼키는 것, 근육발작으로 인한 온몸의 통증 등 이런 중증의 증상들은 그렇게 마법에 풀리듯 스르르 사라졌다. 하지만 수술이 잘되었고 다리에 힘이 차오르고 있음에도 내 몸은 정상이라 말하기가 어려웠다. 일상생활을 해낼 수 있는 힘은 현저하게 떨어졌고, 병원에서는 중증근무력증환자이기에 에너지 아끼기 (Conserving Energy)를 늘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증근무력증 환자로써 살아온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참 많은 사람임을 깨달았다. 그래서였는지, 아침에는 고통 없이 눈을 뜸에 감사해 놓고서도, 일상 속에서는 힘이 부족해 의욕만큼 다 해내지 못하는 내 상황을 원망스러워했다. 100일간 간절히 투병할 때에는 분명 감사 속에 기적이 넘쳤는데, 길어지는 불편한 증상들과 약부작용 속에 나는 긴 터널을 걷는 듯 답답해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아팠던 지난 시간을 그대로 인정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내 모습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 옆에 있는 남편을 통해 몸을 치료받고 온전하게 일상으로 돌아오면서, 나는 그저 내 삶에 더 감사하는 태도가 필요했음을 깨달았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들이 최선의 방법으로 허락되어 준 모든 순간에 감사하는 글을 써보려 한다.
흉선종이 제거된 후, 나는 무서웠던 "중증근무력증 위기" 증상이 사라졌기 때문에 중증근무력증이 깨끗하게 내 몸에서 사라질 거란 희망이 있었다. 그래서 어려움의 시간은 내가 다시 걸음과 함께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아있는 중증근무력증의 증상들이 나의 일상을 방해했고 내가 할 수 있는 행동들에 많은 제약이 생겼다. 심지어 계속 복용하는 약들의 부작용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수술전후 100일의 고통이 꺼져가는 생명에 다시 불을 켜는 강력한 전투처럼 각인되어 있다면, 그 후의 시간들은 나의 인내심과 태도를 바꾸는 장거리 장애물 달리기와 같은 시간으로 기억된다.
중증근무력증 위기는 이겨냈지만
수술 후 나는 매달 피검사를 하며 자가항체 수치를 확인해야 했다. 흉선종 제거 수술 후 그 수치는 물론 크게 줄어들었지만 그 후로는 일정한 수치에서 큰 변동이 없었다. 약이 없는 이 난치병에 나는 스테로이드를 오래 처방받아 복용하다가 그 후에는 중증근무력증이 자가면역질환이라는 이유로 면역억제제를 먹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중증근무력증의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평생 약을 먹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한다. 신경과 선생님도 처음에는 나의 예후가 좋다고 기뻐했지만 중증근무력증이 나아지는 여부에 대해서는 말씀을 아끼셨다. 나는 약을 끊고 싶었고 아직 충분히 회복되지 않은 증상들도 극복하고 싶었다. 숨만 잘 쉴 수 있다면, 걷기만 하면, 음식을 먹을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내 마음이 너무 간사했던 것인지 아프기 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너무 간절했고, 그러지 못하는 현실에 마음에는 괴로움이 쌓여갔다.
그도 그럴 것이, 내 몸은 마치 고장이 나서 충전이 되지 않는 아주 오래된 핸드폰 같았다. 조금만 에너지를 쓰면 에너지가 바닥나버려 호흡이 가빠지고 다리에 힘이 빠졌다. 목소리가 약해지고 늘 어지러움증에 시달리며 특히 눈의 근육이 쉽게 피로해졌다. 그러다 보니 나는 그날 꼭 해야 하는 일에만 나의 에너지를 사용 후 늘 쉬어야만 했다. 외출과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나에게 사치였기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일상생활의 모든 것들을 자제했다. 어느 날 내가 하는 일에 조금 더 욕심을 내고 스트레스지수가 올라갔을 때 몸의 약한 증상이 심각해졌다. Conserving Energy를 실패했던 걸까, 갑자기 중증근무력증 때문에 한 달이 넘는 시간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되었을 때, 다시 올라온 두려움과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나는 회사에 병가를 요청하고 무기한 쉬는 시간을 갖겠다 말씀드렸다.
남편의 환자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한국에 계시는 시아버지의 뒤를 이어 미국에서 한의사가 된 남편이 나에게 이야기했다. 그동안 나는 의사 선생님의 설명대로 잘 행하는 모범적인 환자였고 수술도 잘 되어 너무 기쁘지만 이제는 중증근무력증으로부터 자유로와 질 수 있게 한의학으로 치료를 해보자고 했다. 나는 주치의가 시키는 것을 잘 따라가겠다는 마음만 있었을 뿐 남편이 한의사임에도 한의치료의 특징들을 잘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모두가 난치병이라는 나의 병을 치료해 주겠다는 남편의 말에 희망이 싹틔었다. 또한 남편은 내가 최대한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스스로 변호사 사무실을 꾸리는 것을 제안했다. 욕심을 내어 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건강을 1순위로 두고 자율적으로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남편의 일터옆에 나의 일 공간을 만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 최대한 집중하면서, 일을 마치고 나면 퇴근하기 전에 남편에게 침 치료를 매일매일 받았다. 숨이 얕아서 호흡이 힘들 때는 침치료를 받으면 숨이 잘 쉬어졌다. 남편이 직접 달여주는 한약을 먹었고, 나의 일에 푹 빠져서 한약을 제때 먹지 못할 때는 남편에게 많이 혼나기도 했다. 그렇게 치료를 받다 보니, 3개월, 6개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내가 일상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점점 늘어났다. 숨을 온전히 잘 쉬면서 일을 할 수 있고 사람들을 만나는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을 찾아갔고, 수술 후 장기간 먹고 있던 면역억제제도 끊어낼 수 있었다. 면역억제제를 먹는 동안은 자녀를 가질 수 없었기에 약을 끊는다는 것의 의미는 나에게 무척이나 컸다. 참 신기하게도 내 몸의 에너지가 다시 차오르고 힘이 유지되는 시간도 점점 길어지는 것을 느꼈다.
중증근무력증이 난치병이라며 주변의 많은 분들이 참 많은 염려를 보내주셨지만, 놀랍게도 나는 아프기 전보다 더 건강하다는 자신감이 들만큼 결국 그 병을 이겨냈다. 상상치 못했던 약 부작용들로 인해 남들 모르게 3년 꼬박 마음고생도 크게 했지만 남편의 치료 속에 그 부작용도 극복했다. 그런 5년의 시간이 지나, 어느새 나의 일상으로 온전하게 돌아온 지 1년이 다되었다. 겉으로 드러나 보이지 않는 병과 싸우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자제하고 내 몸에 맞추어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에 나는 참 많이 조바심을 냈다. 이만큼도 감사하다 되뇌면서도 느린 걸음 같아 슬펐던 지난 시간들이었는데, 이제 돌아보니 감사할 일이 더 많았었음을 깨닫는다. 옆에 있는 남편으로부터 바로 치료받을 수 있는 상황에 더 감사하고, 나의 일을 하면서 회복할 수 있었던 시간에 더 감사하는, 범사에 더 감사하는 모습을 지금이라도 내 일상에 더 가득채우고 싶다.
나와 남편은 현실부부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연애할 때도 크게 싸우지 않고 내가 투병할 때도 헤어지지 않았던 우리는 결혼하고서 브런치북 한 권을 써도 될 만큼 투닥투닥 많이 싸웠다. 하지만 결혼 전부터 아팠던 나를 배우자로 맞이하고, 가정을 꾸려가는 동안 남편이 참 많이 애쓰고 수고로왔음에 나는 늘 감사하다. 내가 아팠을 때 내 옆을 지켜준, 그리고 나를 포기하지 않고 내 몸을 치료해 준 남편의 곁을, 나도 건강한 모습으로 앞으로 변함없이 지키고 싶다.